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대학 현장도 예전의 아카데믹한 분위기는 아련한 향수가 된 지 오래다. 탄탄한 기본기와 꾸준한 훈련이 필요한 기초학문 분야는 이제 찬밥 신세이고, 그저 먹고 사는 일이나 취업에 필요한 교육이라야 통한다. 이러한 세태가 우려스러운 건 소위 깊이(depth)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는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지혜마저도 요즘의 휘황찬란한 문명 속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깊이 있는 것들이 더 좋다. 겉만 화려하고 요란한 것들은 내 눈에 시시하게 보인다. 특히나 요즈음 제작되는 잔인하거나 폭력성 짙은 한국 영화들은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장에 가본 기억도 까마득하다. 그런데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