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해외등반여행 20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에필로그]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가수 조용필의 11집 앨범(정확히는 10집 Part 2) B면은 19분 56초 분량으로 국내 최장 플레잉타임을 기록 중인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이란 제목의 노래 한 곡으로 채워져 있다. 이 노래는 내가 학부 졸업과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한창 방황하던 시기인 1989년 1월에 발표되었다. 처음 듣던 그 순간부터 내 심금을 울렸던 이 노래는 숙명적으로 주어진 삶을 생이 다하는 날까지 두려움 없는 탐험과 성찰로 혼신의 힘을 다해 헤쳐 나아가고자 절규하는 인간적 고뇌를 그린 대서사시 같은 가사에 화려하고 웅장한 선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명곡이 아닐 수 없다.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의 긴 노랫말을 다 외울 수는 없지만, 이번 미국 등반여행을 다니는 동안 문득문득 이 노..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11] Malibu Creek State Park

이번 등반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로스앤젤레스 동북쪽에 위치한 '말리부 크리크 주립공원(Malibu Creek State Park)' 안에 자리한 '마운트 고저스(Mount Gorgeous' 암장이다. 영어로 '크리크(creek)'가 개울이나 시내를 뜻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말리부 크리크 주립공원엔 계곡물과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주차장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트레일 입구를 지나자마자 개천을 만나게 되고, 절벽 사이에 계곡물이 머물러 연못을 이룬 천연 수영장인 '록풀(Rock Pool)'의 언저리를 조심스레 잘 통과해야만 암장에 닿을 수 있다. 주차장에서 록풀까지는 약 50분 정도가 걸린다. 마운트 고저스 암장은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독특한 암질의 오버행 절벽이다. 밑에서 올려다 본 암벽엔 잡을만한..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10] Riverside Quarry Shadow Rock

페리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캠핑장은 물이 없던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 겪어야 했던 불편함을 말끔히 해소시켜 주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운영하는 주립공원 안에 자리한 캠핑장답게 수세식 화장실에 샤워장까지 제대로 갖춰진 시설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는 이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귀국하는 날인 7월 13일 아침까지 3박 4일을 머물렀다. 7월 11일엔 리버사이드 채석장(Riverside Quarry)에 개척되어 있는 암장에서 등반했다. 지금은 'Shadow Rock Park'라는 명패를 달고 말끔히 정돈되어 있는 채석장 주변은 윤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찾던 시절엔 상당히 지저분했다고 한다. 윤선생님께서는 여기에서 등반하신 후에 채석장에도 좋은 암장을 개척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탄생한 ..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9] Joshua Tree National Park

애초엔 7월 9일 아침에 라스베가스 호텔을 출발하여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중간에 뉴잭시티(New Jack City)에 들러 등반할 예정이었다. 지금은 'Sawtooth Canyon'이라 불리는 뉴잭시티에 우리가 도착한 때는 가장 더운 시간인 정오 무렵이었다. 처음엔 검은 빛깔의 암벽이 다분히 이채로운 모습이어서 등반해보고 싶은 마음이 살짝 동했으나, 캠프그라운드의 그늘막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바위에 붙었다가는 화상이라도 입을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등반은 포기하고 점심으로 짜장라면을 끓여 먹은 후, 뉴잭시티를 떠나서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잠시 들른 등반 장비점은 생각보다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물이 없는 사막 기후인 조슈아트리 국..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8] Red Rock Canyon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빠져나온 7월 7일 오후엔 '오웬스리버 고쥐(Owen's River Gorge)'에서 두 번째로 등반했다. 다음 날인 7월 8일엔 라스베가스로 이동하여 오후 시간에 '레드록 캐니언(Red Rock Canyon)'을 찾았다. 레드록 캐니언은 라스베가스 시가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레드록 캐니언 국가보호구역(National Conservation Area)에 입장하여 처음 접한 풍경은 정말로 이채로웠다. 진한 황토빛깔을 띤 채 나무 한그루 없이 대규모로 펼쳐져 있는 바위산들은 난생 처음 본 놀라운 광경이었다. 우리팀은 '캘리코 힐스(Calico Hills)' 주차장에서 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블랙코리도(Black Corridor)' 사이트에서 등반했다. 한낮..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7] Vernal Falls & Nevada Falls Trail

우리는 캠프4에서 7박 8일을 머물렀다. 체크아웃 전날이자 요세미티 밸리에서 등반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던 7월 6일, 토요일 오전에 '글래이시어 포인트 에이프런(Glacier Point Apron)' 사이트를 찾았으나, 너무 더운 날씨에 바위가 땡볕에 온전히 노출된 상태여서 등반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우리는 어프로치 하던 길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버널(Vernal) 폭포와 네바다(Nevada) 폭포를 다녀오는 트레일을 하이킹하기로 했다. 이 코스를 여러 차례 다녀오신 윤선생님은 밸리에 남아서 개인적인 일정을 갖기로 하시고, 이성인 선배님을 포함한 6명이 함께 하이킹에 나섰다. 버널 폭포를 거쳐 네바다 폭포 정상까지 이어지는 제법 가파른 산길이지만 워낙 유명한 트레일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6] Yosemite Valley Loop & Four Mile Trail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로 공휴일이다. 이 날은 우리팀에게도 휴식일이었다. 이번 요세미티 원정 등반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대망의 엘캐피탄 '이스트 버트레스' 등반을 15시간에 걸친 대장정 끝에 성공리에 완등한 다음날의 피로를 풀기 위함이었다. 다들 평소보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요세미티에 머무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침을 사먹게 되었다. 캠프4에서 가까운 요세미티 밸리 롯지(Yosemite Valley Lodge)에 자리한 카페테리아 식당인 베이스캠프 이터리(Basecamp Eatery)에서 사먹은 호텔식 조식이었다. 어제 하루 등반을 쉬었던 지선씨가 등반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캠프4에 귀환한 5명의 대원들을 위해 정성스레 차려 주었던 김치볶음밥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YB 친구들과 함께..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5] El Capitan, 'East Buttress'

엘캐피탄(El Capitan)은 요세미티 계곡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장엄하고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거벽(big wall)이다. 엘캐피탄 수직 절벽의 높이는 9백 미터가 넘고 정상의 해발고도는 2,308 미터에 이른다. 스페인어 '엘까피딴(El Capitán)'을 영어로 옮기면 'The Captain'이니 우리말로는 '장군봉'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 이름에 걸맞게 엘캐피탄은 현대 암벽등반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거벽등반의 성지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암벽등반 장비가 엘캐피탄을 비롯한 요세미티의 암벽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스티브 로퍼가 쓴 책인 의 내용을 빌리자면, 1958년 11월 12일, 워렌하딩(Warren Har..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4] Church Bowl

요세미티 빌리지와 아와니(Ahwahnee) 호텔 사이에 위치한 처치보울(Church Bowl) 사이트는 요세미티 밸리에서 그 어느 곳보다 접근이 용이한 사이트이다. 드넓은 아와니 초원(Ahwahnee Meadow) 가장자리에 조성되어 있는 소풍 장소(Church Bowl Picnic Area)의 주차장 바로 옆에 암벽이 펼쳐져 있다. 우리팀은 7월 2일과 5일, 두 차례에 걸쳐 처치보울 사이트에서 등반했다. 7월 2일엔 총 3피치인 'Bishop's Terrace (5.8*****)'를 오른 후에 다음 날 도전할 엘캐피탄 이스트버트레스 등반을 준비했다. 7월 5일엔 글래시어포인트 에이프런(Glacier Point Apron) 사이트에서 등반할 계획이었으나, 커리빌리지 입구에서 자동차 진입을 금지시키는 바..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3] Manure Pile Buttress, 'Nutcracker'

요세미티 밸리의 캠프4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한 다음 날은 7월 1일이었다. 우리는 7월의 첫날, 요세미티에서의 첫 번째 등반지로 머뉴어파일버트레스(Manure Pile Buttress) 사이트의 멀티피치 루트인 '너트크랙커(Nutcracker)'를 찾았다. 주차장에서 평지를 걸어 5분 이내에 루트 출발점 앞에 도착할 정도로 짧은 어프로치 덕택인지 '너트크랙커' 루트는 요세미티 밸리에서도 별점 5개의 높은 인기도를 자랑하는 등반지이다. '머뉴어파일(manure pile)'은 '두엄 더미'를 일컫는데, 멀리서 보는 바위의 형태가 어릴적 고향집 담장 앞에 쌓여 있던 퇴비 무더기를 연상시키는 모양새 때문인 듯했다. '버트레스(buttress)'는 성당 건축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벽을 지지해 주는 부벽을 의미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