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트레킹 112

[2023 스위스 알프스 - 에필로그] Thanks to Alps

나의 2023년 상반기는 여느 해보다 힘겨운 나날이었다. 작년 하반기에 치른 아들 결혼식과 장인어른 장례식을 비롯한 굵직한 가정사를 단기간 내에 감당해내야 했던 피로감이 뒤늦게 몰려온 듯했다. 내 몸의 취약점 중의 하나인 눈에 문제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실명의 위기에 몰렸을 망막 박리증이 발병한 것이다. 다행히도 발달된 현대 의학의 수혜를 받을 수 있었다. 망막수술 직후에 2주 동안 침대에서 엎드려 지내야 하는 고역을 치른 후에도 수술의 여파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컸다. 평소의 소신은 사라지고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고 우선은 버텨내고 보자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직장일과 클라이밍에서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무심한 시간은 흘러서 ..

해외트레킹 2023.09.06

[2023 스위스 알프스 #11] 알프스를 떠나 제네바로 - 8월 16일(수) ~ 17일(목)

제네바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더웠다. 사스페와 체르마트에서 각각 5일 동안 머물면서 시원한 알프스 산하를 트레킹 했던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기 싫은 탓이었까? 제네바가 깨끗한 도시임에는 분명하지만 대도시의 혼잡함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제네바가 처음인 아내와 함께 레만호 둘레를 산책했다. 제트분수와 꽃시계 정원을 구경하고 루소 동상도 둘러보았다. 제네바는 20년이 넘은 오래 전에 처음 와 본 이후로 한두 차례 지나친 기억은 있는데, 많은 것이 변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내 기억의 부정확성도 한 몫 했을 터이다. 마음 같아선 허선생님이 말씀해 준 반대편 호반에서 볼 수 있다는 몽블랑을 먼 발치에서나마 확인하고 싶었으나, 너무 더운 날씨에 의욕이 꺽이고 말았다. 항공권 일정 때문에 공항 옆의 호텔..

해외트레킹 2023.09.03

[2023 스위스 알프스 #10] 회른리 산장(Hörnlihütte, 3260m) - 8월 15일(화)

마터호른(Matterhorn, 4478m) 초등에 얽힌 이야기는 이 봉우리의 웅장하고 수려한 풍채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체르마트 출신의 저자 트루퍼(Beat P. Truffer)가 쓴 라는 책에 의하면, 에드워드 윔퍼(E. Whymper)가 이끈 영국 등반대는 체르마트를 출발하여 슈바르츠제(Schwarzsee, 2583m) 호수를 지나 지금의 회른리 산장(Hörnlihütte, 3260m) 부근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1865년 7월 14일에 회른리 능선을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마터호른 초등에 성공한다. 윔퍼의 영국 등반대가 등정에 성공한 직후 그들은 정상에서 불과 200미터 아래에서 리온 능선으로 올라오고 있는 카렐의 이탈리아 등반대를 발견한다. 윔퍼의 승리를 확인한 카렐은 그 자리에서 등을 돌려 ..

해외트레킹 2023.08.31

[2023 스위스 알프스 #9] 에델바이스벡(Edelweissweg) - 8월 14일(월)

체르마트 동편 언덕에 자리한 숙소에서 보면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이 맞은편 서쪽 언덕을 밝게 비춘다. 가파른 그 언덕 중앙부의 절벽 위에는 에델바이스 산장이 조그맣고 하얀 상자처럼 얹혀져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올려다 보인다. 오늘은 이 언덕 위의 고원지대인 호흐발믄(Höhbalmen, 2665m)에 올라 마터호른 북벽 아래의 쯔무트빙하(Zmuttgletscher)에서 내려오는 협곡을 따라서 체르마트로 돌아오는 코스의 산길을 걸었다. 이 트레일은 체르마트 하이킹 지도에 '에델바이스벡(Edelweissweg)'이란 트레일로 표기되어 있다. 정코스로 걷는다면 전체 길이가 20km에 이른다고 한다. 독일어로 '벡(weg)'은 길을 의미한다. 체르마트(1620m) 중앙광장에서 에델바이스 산장(Edelweiss A..

해외트레킹 2023.08.30

[2023 스위스 알프스 #8]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3089m) - 8월 13일(일)

체르마트에서 가장 유명한 전망대는 아마도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3089m)일 것이다. 체르마트 기차역 앞에서 출발하는 등산열차에 오르면 해발고도 3천 미터 이상의 이 고지에 쉽게 닿을 수 있다. 체르마트를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누구라도 고르너그라트 등산열차를 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는 체르마트의 상징과도 같은 마터호른(Matterhorn, 4478m)과 알프스 2위봉인 몬테로사(Monte Rosa, 4634m) 뿐만 아니라 여러 빙하를 동시에 관망할 수 있다. 몽블랑(Mont Blanc, 4807m) 다음으로 높은 몬테로사 산군의 최고봉인 두포우르슈피츠(Dufourspitze, 4634m)는 스위스령에 속하여 스위스 알프스 최고봉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오늘의 트레킹..

해외트레킹 2023.08.28

[2023 스위스 알프스 #7] 수네가(Sunnegga, 2288m) - 8월 12일(토)

'수네가익스프레스(Sunnegga Express)'로 불리는 푸니쿨라(Funicular)는 체르마트 마을에서 수네가 언덕까지 뚫린 터널을 관통하여 순식간에 고원으로 공간이동을 한다. 해발고도 698 미터의 차이를 잊게 해주는 엘리베이터 같다. 푸니쿨라는 등산열차나 케이블카와 달리 외부에 노출되는 시설물이 거의 없이 지하로 연결되는 운송수단이므로 알프스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아서 한결 친환경적인 듯하다. 체르마트에서의 첫 트레킹 일정은 이 푸니쿨라에 탑승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수네가 언덕 주위에 산재하는 5개의 호수인 스텔리제(Stellisee), 그린티제(Grindjisee), 그룬제(Grünsee), 모오스지제(Moosjisee), 레이제(Leisee) 등을 둘러볼 수 있는 '파이브 레이크스 워..

해외트레킹 2023.08.28

[2023 스위스 알프스 #6] Goodbye 사스페, Hello 체르마트 - 8월 11일(금)

사스페(Saas-Fee)에서 체르마트(Zermatt)로 이동하는 날이다. 우리에게는 트레킹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옮기는 이삿날 같은 마음이다. 사스페 숙소에서 일행들과 함께 정오에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조식 직후에 체크아웃 하고 짐을 맡겨 놓은 후 가벼운 차림으로 사스페 마을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사스페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어느새 6일째가 되었지만, 처음 도착한 바로 다음날부터 연속적으로 짜여진 일정의 트레킹을 소화 하느라 정작 마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여유시간을 갖지는 못 했었다. 우리 일행 외에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동양 사람도 보기 드물었던 사스페는 여전히 고요하고 한적한 알프스 산골마을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애완견과 함께 양지바른 언덕길을 느리게 산책하는 현지 어르신들의 ..

해외트레킹 2023.08.25

[2023 스위스 알프스 #5] 브리타니아 산장(Britannia Hütte, 3029m) - 8월 10일(목)

사스페 숙소의 앞마당에서 협곡 건너편에 정면으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는 미타그호른(Mittaghorn, 3143m)이다. 숙소의 방 안에서도 뾰족한 정상 위의 십자가까지 창문 너머로 선명히 보인다. 오늘은 이 산 너머로 이어지는 허리길을 따라서 브리타니아 산장(Britannia Hütte, 3029m)에 다녀오는 코스를 걸었다. 미타그호른의 전위봉으로 보이는 플라티옌(Plattjen, 2570m)까지는 케이블카로 올랐다. 미타그호른 산허리길에서는 하얀색 두 줄 가운데에 빨간색 페인트를 칠한 바위 위의 길 안내 표시가 간헐적으로 보였고, 브리타니아 산장이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길부터는 페인트의 가운데 색깔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비교적 걷기 편한 하이킹 코스는 빨간색, 그 보다 험한 길은 파란색으로 나타낸 것과..

해외트레킹 2023.08.24

[2023 스위스 알프스 #4] 몬테모로 고개(Monte Moro Pass, 2868m) - 8월 9일(수)

사스페 버스터미널에서 사스그룬트 마을을 거쳐 마트마크(Mattmark, 2197m) 댐까지 곧바로 가는 버스를 타고 둑 위의 종점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했다. 스위스와 이태리의 국경선이 지나는 몬테모로 고개(Monte Moro Pass, 2868m)에 다녀오는 것이 오늘의 코스이다. 몬테모로 고개는 황금 성모상이 유명해서 '더 골든 마돈나 패스(The Golden Madonna Pass)'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마돈나(Madonna)는 예수님의 생모인 성모 마리아의 별칭으로 미국 가수 마돈나 등 일반인과 구별하기 위해 정관사 '더(The)'를 붙인다고 한다. 하늘은 청명했지만 바람이 세찬 하루였다. 황금 성모상 주변은 그 유명세에 걸맞게 이태리 방향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섞여 붐비는 탓에 만족스..

해외트레킹 2023.08.23

[2023 스위스 알프스 #3] 호흐사스(Hohsaas, 3200m), 알파인 들꽃길 ~ 사스알마겔 모험길 - 8월 8일(화)

이번 스위스 여행에서는 현지 사정과 지리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거의 준비하지 않았다. 현금도 스위스 프랑으로 환전하지 않고 지난 크로아티아 출장 때 쓰고 남은 유로화만 몇 푼 들고 갔을 뿐이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준비하던 나의 일상적인 태도와는 사뭇 동떨어진 행태이다. 알프스 최고의 가이드인 허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류시화 작가의 글에서 본 소금인형처럼 아무 선입견 없이 스위스와 알프스 속에 녹아들어 보자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사스페에 발을 들여 놓은지 3일째 아침이 밝았다. 이제는 사스페 주변의 지형이 서서히 눈에 익어가서 주변 지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지도에서 고봉들의 명칭과 높이를 찾아 보고, 여러 트레킹 루트를 따라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스(Saas)..

해외트레킹 2023.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