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트레킹

[2023 스위스 알프스 #10] 회른리 산장(Hörnlihütte, 3260m) - 8월 15일(화)

빌레이 2023. 8. 31. 12:16

마터호른(Matterhorn, 4478m) 초등에 얽힌 이야기는 이 봉우리의 웅장하고 수려한 풍채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체르마트 출신의 저자 트루퍼(Beat P. Truffer)가 쓴 <마터호른 이야기>라는 책에 의하면, 에드워드 윔퍼(E. Whymper)가 이끈 영국 등반대는 체르마트를 출발하여 슈바르츠제(Schwarzsee, 2583m) 호수를 지나 지금의 회른리 산장(Hörnlihütte, 3260m) 부근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1865년 7월 14일에 회른리 능선을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마터호른 초등에 성공한다. 윔퍼의 영국 등반대가 등정에 성공한 직후 그들은 정상에서 불과 200미터 아래에서 리온 능선으로 올라오고 있는 카렐의 이탈리아 등반대를 발견한다. 윔퍼의 승리를 확인한 카렐은 그 자리에서 등을 돌려 하산해 버렸다고 한다. 초등의 기쁨도 잠시 윔퍼의 등반대는 하산 중 발생한 돌발사고로 일행 7명 중 4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된다. 한편, 카렐의 이탈리아 등반대는 3일 후인 7월 17일에 리온 능선 루트로 마터호른 정상 등정에 성공한다.

 

광복절인 오늘은 체르마트에서 '마터호른 빙하 파라다이스(Matterhorn glacier paradise)'로 불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슈바르츠제(Schwarzsee, 2583m)에서 내려 회른리 산장(Hörnlihütte, 3260m)까지 꽤 가파른 등로를 걸어서 올랐다. 마터호른 초등자들의 숨결이 서려 있는 발자취를 따라서 회른리 산장에 다녀온 것이다. 클라이머라면 누구든 선망하게 되는 마터호른 정상 등정의 꿈을 내 마음 속에서 내려 놓은 지는 오래 되었다. 하지만 산장 위의 등반 출발점에 서서 정상 등정을 마치고 환한 표정으로 귀환 중인 산악가이드와 클라이머들을 보는 순간 한없이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나도 마터호른 정상까지 오르고 싶다는 욕구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차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 보고자 하여 안전장비는 없지만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절벽 위에 보이는 성모상까지 올라가 보았는데, 그 앞에 선 순간의 설레임은 지금까지도 선명히 남아 있다. 체르마트에 나 홀로 처음 트레킹 여행을 왔던 2010년도엔 6월 초순이어서 3천 미터 이상의 높이엔 대부분 눈이 쌓여 있었다. 그땐 눈길을 헤치고 회른리 산장에 오를 수 있는 장비나 마음의 준비가 여러모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까닭에 감히 산장 근처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이번엔 모든 제반 여건이 좋아서 아내를 포함한 일행들 모두가 회른리 산장까지의 여정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음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 우리가 케이블카를 타고 슈바르츠제에서 내려 올려다 본 마터호른은 아침햇살에 밝게 빛나고 있었다.
▲ 슈바르츠제 케이블카역 앞의 전망대에 있는 안내판.
▲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게 설치된 조형물.
▲ 슈바르츠제 호수를 내려다 보면서 회른리 산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시작한다.
▲ 첫 번째 언덕 너머로 마터호른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 두 번째 언덕은 빙하로 이어지는 넓은 길로 돌아갔다.
▲ 마터호른 동벽 아래의 빙하지대를 구경하고...
▲ 다시 언덕을 오른다. 저 멀리 회른리 산장이 능선 위에 작고 하얀 상자처럼 보인다.
▲ 빙하의 모습을 내려다 보면서...
▲ 절벽 위에 안전하게 설치된 등산로를 따라...
▲ 회른리 산장까지 다녀오는 트레커들이 상당히 많은듯... 험한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 가파른 오르막을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산장이 머리 위로 가까워 지고...
▲ 마지막 오르막을 오를 즈음엔 구름이 마터호른 절반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헬멧을 달고 가는 클라이머들이 부럽기만 하고...
▲ 드디어 도착한 회른리 산장의 앞마당에서 한 컷... 회른리 산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 산장 뒤로 돌아 올라가서 클라이머들을 구경한다. 구름으로 가려진 정상부로 이어지는 회른리 릿지가 사뭇 위압적이다.
▲ 클라이머들이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하는 암벽을 구경해 보기로 하고...
▲ 첫 피치에 매달린 클라이머 위로 검은 성모상이 보여서...
▲ 가까이 가서 올려다 보니... 혼자서도 클라이밍 다운이 가능한 수준의 직벽이라는 생각에 성모상 앞까지만 올라가 보았다. 마지막 한두 스텝은 크랙에 재밍을 해서 올라야 했다.
▲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을 바로 앞에서 찍은 컷이다.
▲ 클라이밍 다운으로 내려선 후에 뒤따라 오신 박선생님께서 찍어주신 인증 사진을 남기고...
▲ 우측 직벽에서 자일로 마지막 하강 중인 클라이머들을 구경하고... 그 너머로 북벽 빙하의 세락이 멋졌다.
▲ 클라이머라면 누구든 꿈꾸게 되는 마터호른 정상 등정이지만... 오늘은 구경꾼에 만족해야 한다...
▲ 마터호른 정상에 서지 못하더라도... 광활한 알파인 지대의 풍광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 이제는 산장 귀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내려가야 한다.
▲ 산장 안의 등반가들도 살짝 엿보면서...
▲ 충분히 구경한 후에 하산을 시작한다.
▲ 내려갈 때는 올라올 때 놓쳤던 풍경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다.
▲ 위에서 내려다 보는 빙하의 황량한 모습도 이채롭고...
▲ 숨이 차지 않는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다.
▲ 그래도 가파른 내리막길이 많아서 다리에 힘을 풀어서는 안 된다는...
▲ 어제 걸었던 에델바이스벡 트레일이 반대편에 선명히 보인다.
▲ 늦은 오후에 산장으로 향하는 클라이머들... 산장에서 보통 새벽 3시 정도에 등반을 출발한다고...
▲ 이 갈림길에서 체르마트 방향으로 하산하면 되는데... 아내의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서 우리 부부는 슈바르츠제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기로...
▲ 황량한 고지의 알파인 지대에서도 꽃을 피우는 들꽃의 생명력에 감탄하면서...
▲ 멀리 보이는 케이블카역까지 천천히 내려간다.
▲ 연일 계속된 산행에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아내는 천천히 하산했다.
▲ 벤치가 나타나면 아픈 무릎에 휴식을 줘 가면서...
▲ 슈바르츠제에서는 무인 키오스크에서 표를 사야했고... 케이블카를 타고 편하게 체르마트로 내려왔다.
▲ 체르마트 시내를 잠시 둘러보는데...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성당에서...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오고...
▲ 산행기를 쓰면서 다시 뒤적여 본 산서들. 올해 집안을 리모델링 하면서 많은 책을 버렸었는데, 애착이 가는 산서들은 버리지 않았다. 오래 전에 산 <마터호른 이야기>는 110 페이지로 얇은 편이지만 정말 잘 쓰여진 명저이다. 윔퍼의 일생을 다룬 <마터호른의 그림자>는 최근에 구입한 책으로 요즘 보기 드물게 7백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윔퍼의 고전적인 삽화가 있는 알프스 등반 부분이 특별히 재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