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786

파주 웅담리 암장 - 2023년 8월 27일(일)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바위를 제대로 만져본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6월 초에 다녀온 포항 내연산 이후로 이렇다 할 암벽등반을 하지 못하고 올 여름 시즌은 훅 지나가 버렸다. 클라이밍 관점에서 보자면 올해 농사는 이미 망친 격이다. 망막 수술의 여파로 봄 시즌을 날려 버리고, 7월엔 크로아티아 출장, 8월엔 스위스 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오느라 클라이밍은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지난 6월 하순에 불의의 갈비뼈 골절상을 당한 기범씨는 두 차례나 큰 수술을 감당하느라 그동안 클라이밍은 고사하고 일상생활도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 함께 등반한 은경이와 은숙씨도 복잡다단한 집안 사정 탓에 녹록치 않은 나날들을 견뎌 오느라 일상에서 등반은 한켠으로 제쳐둔 모양새였다. 네 사람 모두가 자신의 등반 능력을 반신반의 하면..

암빙벽등반 2023.08.28

[2023 스위스 알프스 #7] 수네가(Sunnegga, 2288m) - 8월 12일(토)

'수네가익스프레스(Sunnegga Express)'로 불리는 푸니쿨라(Funicular)는 체르마트 마을에서 수네가 언덕까지 뚫린 터널을 관통하여 순식간에 고원으로 공간이동을 한다. 해발고도 698 미터의 차이를 잊게 해주는 엘리베이터 같다. 푸니쿨라는 등산열차나 케이블카와 달리 외부에 노출되는 시설물이 거의 없이 지하로 연결되는 운송수단이므로 알프스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아서 한결 친환경적인 듯하다. 체르마트에서의 첫 트레킹 일정은 이 푸니쿨라에 탑승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수네가 언덕 주위에 산재하는 5개의 호수인 스텔리제(Stellisee), 그린티제(Grindjisee), 그룬제(Grünsee), 모오스지제(Moosjisee), 레이제(Leisee) 등을 둘러볼 수 있는 '파이브 레이크스 워..

해외트레킹 2023.08.28

[2023 스위스 알프스 #6] Goodbye 사스페, Hello 체르마트 - 8월 11일(금)

사스페(Saas-Fee)에서 체르마트(Zermatt)로 이동하는 날이다. 우리에게는 트레킹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옮기는 이삿날 같은 마음이다. 사스페 숙소에서 일행들과 함께 정오에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조식 직후에 체크아웃 하고 짐을 맡겨 놓은 후 가벼운 차림으로 사스페 마을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사스페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어느새 6일째가 되었지만, 처음 도착한 바로 다음날부터 연속적으로 짜여진 일정의 트레킹을 소화 하느라 정작 마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여유시간을 갖지는 못 했었다. 우리 일행 외에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동양 사람도 보기 드물었던 사스페는 여전히 고요하고 한적한 알프스 산골마을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애완견과 함께 양지바른 언덕길을 느리게 산책하는 현지 어르신들의 ..

해외트레킹 2023.08.25

[2023 스위스 알프스 #5] 브리타니아 산장(Britannia Hütte, 3029m) - 8월 10일(목)

사스페 숙소의 앞마당에서 협곡 건너편에 정면으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는 미타그호른(Mittaghorn, 3143m)이다. 숙소의 방 안에서도 뾰족한 정상 위의 십자가까지 창문 너머로 선명히 보인다. 오늘은 이 산 너머로 이어지는 허리길을 따라서 브리타니아 산장(Britannia Hütte, 3029m)에 다녀오는 코스를 걸었다. 미타그호른의 전위봉으로 보이는 플라티옌(Plattjen, 2570m)까지는 케이블카로 올랐다. 미타그호른 산허리길에서는 하얀색 두 줄 가운데에 빨간색 페인트를 칠한 바위 위의 길 안내 표시가 간헐적으로 보였고, 브리타니아 산장이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길부터는 페인트의 가운데 색깔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비교적 걷기 편한 하이킹 코스는 빨간색, 그 보다 험한 길은 파란색으로 나타낸 것과..

해외트레킹 2023.08.24

[2023 스위스 알프스 #4] 몬테모로 고개(Monte Moro Pass, 2868m) - 8월 9일(수)

사스페 버스터미널에서 사스그룬트 마을을 거쳐 마트마크(Mattmark, 2197m) 댐까지 곧바로 가는 버스를 타고 둑 위의 종점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했다. 스위스와 이태리의 국경선이 지나는 몬테모로 고개(Monte Moro Pass, 2868m)에 다녀오는 것이 오늘의 코스이다. 몬테모로 고개는 황금 성모상이 유명해서 '더 골든 마돈나 패스(The Golden Madonna Pass)'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마돈나(Madonna)는 예수님의 생모인 성모 마리아의 별칭으로 미국 가수 마돈나 등 일반인과 구별하기 위해 정관사 '더(The)'를 붙인다고 한다. 하늘은 청명했지만 바람이 세찬 하루였다. 황금 성모상 주변은 그 유명세에 걸맞게 이태리 방향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섞여 붐비는 탓에 만족스..

해외트레킹 2023.08.23

[2023 스위스 알프스 #3] 호흐사스(Hohsaas, 3200m), 알파인 들꽃길 ~ 사스알마겔 모험길 - 8월 8일(화)

이번 스위스 여행에서는 현지 사정과 지리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거의 준비하지 않았다. 현금도 스위스 프랑으로 환전하지 않고 지난 크로아티아 출장 때 쓰고 남은 유로화만 몇 푼 들고 갔을 뿐이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준비하던 나의 일상적인 태도와는 사뭇 동떨어진 행태이다. 알프스 최고의 가이드인 허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류시화 작가의 글에서 본 소금인형처럼 아무 선입견 없이 스위스와 알프스 속에 녹아들어 보자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사스페에 발을 들여 놓은지 3일째 아침이 밝았다. 이제는 사스페 주변의 지형이 서서히 눈에 익어가서 주변 지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지도에서 고봉들의 명칭과 높이를 찾아 보고, 여러 트레킹 루트를 따라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스(Saas)..

해외트레킹 2023.08.22

[2023 스위스 알프스 #2] 랑플루(Längfluh, 2870m) - 8월 7일(월)

어제 저녁 때 사스페에 도착해서 하룻밤이 지났다. 오늘은 처음으로 트레킹에 나서는 날이다. 새벽에 잠이 깨어 창문 밖을 열어보니 벌써부터 스키를 둘러메고 숙소를 나서는 한 무리의 스키어들이 보인다. 7시 30분부터 제공되는 조식 시간에 앞서 숙소 근처의 사스페 거리를 잠시 둘러 보았다. 만년설에서 스키를 즐기려는 스키어들과 알파인 등반에 나서는 복장의 클라이머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활기찬 발걸음으로 분주하게 골목길을 오가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어 보였다. 다른 한편으론 알프스의 고봉들에 둘러싸인 깊은 산골마을에서는 여명이 밝아올 무렵부터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할 수 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한 농부였던 부모님께서 늘 그랬던 것처럼. 인간들이 약속한 출퇴근 시간이 지정되어 있는 도시와 달리..

해외트레킹 2023.08.20

[2023 스위스 알프스 #1] 사스페(Saas-Fee) 입성 - 8월 6일(일)

기나긴 여정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를 거쳐 스위스 제네바에 이르는 이번 여행에서 나는 처음으로 카타르항공을 이용했다. 비행기는 토요일 자정을 넘긴 8월 6일 01시 30분에 예정대로 출발했다. 중간 기착지인 도하국제공항까지 10시간 15분 동안 깊은 밤을 날아갔다. 도하국제공항은 '2022 FIFA World Cup Qatar'를 성공리에 마무리한 나라의 관문답게 예상보다 화려하고 규모가 거대했다. 환승을 위한 대기 시간은 3시간 10분이었는데, 실내 공원까지 갖춰진 작은 타운 같은 공항 시설 덕택에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도하에서 08시 5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로 갈아타고, 6시간 25분 동안을 날아서 제네바공항에 도착한 때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린 현지 시간으로 오후 2시 20..

해외트레킹 2023.08.19

[2023 스위스 알프스 - 프롤로그] 호모 비아토르 - 2023년 8월 5일(토)

내 서재의 책상 위에는 항상 읽고 싶은 책들 서너 권이 굴러 다닌다. 언젠가부터 짬이 날 때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눈에 들어오는 책을 집어들고 조금씩 읽어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독서에 대한 지구력이 많이 떨어진 탓도 있고, 시력이 안 좋아진 까닭도 한 몫 했다. 요즘엔 선뜻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완독하지 못한 책들이 장기간 동안 책상 위에 방치되고 있는 중인데, 그 중 하나가 이다. 소설가 김영하 씨가 쓴 산문집이다. 밤 비행기에 올라 스위스로 출국하는 오늘 아침에 온라인 체크인을 하고 보니 이 책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 전에 표시해 두었을 책갈피는 란 꼭지의 글을 가리키고 있다. 다음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

해외트레킹 2023.08.05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당일 여행 - 2023년 7월 11일(화)

소련이 해체되기 전 동유럽은 거의 사회주의 국가였다. 어릴 때 사회 교과서에서 유고슬라비아(Jugoslavija)란 국가로 배웠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도 그 중 하나였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15개 국가로 붕괴 되고, 유고연방도 비슷한 시기에 민족 간 대립으로 인해 혹독한 내전을 치르게 된다. 그 결과 1992년에 해체된 '유고연방'은 이제 세계지도 상에서 사라지고 없다. 현재는 세르비아(Serbia), 크로아티아(Croatia), 슬로베니아(Slovenia), 마케도니아(Macedonia), 몬테네그로(Montenegro),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Herzegovina) 등 6개의 공화국으로 분리되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적군과 아군이 ..

해외여행기 2023.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