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486

인수봉 '하늘길' - 2025년 5월 6일(화)

나흘 동안 이어진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연휴 전의 일기예보 상으론 비가 올 거라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오늘 서울의 하늘은 맑음이다. 도선사광장주차장에서 기범씨와 10시 10분에 만나기로 한다. 평소보다 여유를 부릴 수 있으니 우이동 지하철역에서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서 도선사광장까지 올라간다. 기범씨가 강사로 봉사하고 있는 K등산학교 동문산악회 분들과 인사를 나눈 후 인수봉으로 향한다. 동문산악회 분들은 두 팀으로 나누어 '동양길'과 '거룡길'을 등반하고, 기범씨와 나는 둘이서 '하늘길'을 오르기로 한다. 대구에서 KTX를 타고 새벽에 올라온 건우씨가 '거룡길'로 등반하면서 우리를 촬영해 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하늘길의 초반 두 피치 크랙은 후등으로 올라도 여간 힘에 부친 게 아니다. 내가 이렇게..

암빙벽등반 2025.05.06

노백인 도전 - 2025년 5월 4일(일)

언젠가부터 너무 편안하고 게으른 등반에 물들어 있었다. 본업이 아닌 취미로 하는 등반이나 산행이 굳이 힘겨울 필요까지 있겠냐 하는 나태한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어프로치 가까운 암장에서 볼트 간격이 촘촘한 단피치를 오르내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의 알파인 등반 능력은 서서히 퇴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허리와 무릎 관절이 아파오고 아랫배는 튀어 나오는 노화의 자연법칙 역시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주변 여건을 더이상 도전적인 등반은 하지 않겠다는 핑계거리로 이용하고 있는 비겁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정신까지 늙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하면서 위대한 등반가들의 모험적인 등반기에 감동하고 그들의 행위를 동경해 마지 않던 젊은 날의 패..

암빙벽등반 2025.05.05

수락산 용현암장 - 2025년 4월 30일(수)

올해 봄철은 수요일의 날씨가 최고다. 이번 학기 일정 상 수요등반이 가능해진 나에겐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지없이 화창한 하늘을 벗삼아 수락산에서 악우들과 함께 즐겁고 평화로운 등반을 즐길 수 있었다. 용현암장은 한국산악회에서 작년 가을에 개척한 암장으로 알려져 있다. 남양주시 청학동계곡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내원암에 이른다. 계곡 중간에서 옥류폭포와 금류폭포를 만날 수 있다. 고즈넉한 암자인 내원암에서 수락산장 방향으로 올려다보면 우측의 하늘금 아래로 펼쳐진 용현암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산악회 소유의 수락산장이 숲 사이로 보이는 등산로 중간에서 우측의 소로로 접어들면 금세 용현암장에 닿을 수 있다. 슬랩 위주의 암장은 아직까지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

암빙벽등반 2025.05.01

북한산 노적봉 '써제이길' - 2025년 4월 26일(토)

노적봉 등반을 위해 택시에서 하차하여 도선사 바로 아래의 데크로 이동한다. 어프로치에 맞게 짐을 다시 꾸리면서 별안간 내 휴대폰이 없어진 걸 확인한다. 우선 도선사 경내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처하자며 마음부터 다잡는다. 악우의 전화기로 내 휴대폰에 계속 연락해 보지만 전혀 응답이 없다. 찬찬히 되짚어 생각해 본다. 우이동에서 도선사주차장을 오가는 택시 안에 떨어뜨린 게 분명하다는 판단이 선다. 도선사주차장의 회차 지점으로 되돌아 가서 올라오는 택시를 차례대로 붙잡고 기사님께 문의해 보기로 한다. 우이동에서 올라오는 택시를 기다리던 중 K등산학교 강사로 봉사 중인 기범씨를 만나 내 휴대폰에 다시 연락해 보지만 여전히 무응답이다. 다행스럽게도 네 번째로 올라오는 택시에서 내 휴..

암빙벽등반 2025.04.27

인수봉 [오이지(O.E.G.)슬랩, 의대길, 영(0)길] - 2025년 4월 23일(수)

어제는 하루종일 적잖은 봄비가 내렸다. 오늘 약속된 수요등반이 취소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날씨였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반가운 햇살을 받으며 도선사주차장에서 일행들을 기다리는 중에도 사방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범씨는 하루재를 넘어가서 인수봉의 상태를 보고 오늘의 등반코스를 결정할 것이라 했다. 암벽의 물길마다 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고 크랙도 젖어 있을 게 뻔해 보였다. 대슬랩 좌측의 '오이지슬랩' 한 피치를 오르는 것으로 오늘 등반을 시작했다. 빤빤하고 짭짤한 슬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평일인데도 많은 클라이머들이 속속 대슬랩으로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오아시스로 이동하여 간단히 챙겨서 '의대길'에 붙었다...

암빙벽등반 2025.04.24

[정우씨 환영등반] 인수봉 - 2025년 4월 16일(수)

이집트 건설현장에서 근무 중인 정우씨가 휴가를 나왔다. 빠듯한 국내 일정 중에 잠시 짬을 내어 인수봉 등반을 함께 하게 되었다. 구선생님은 감기 증세가 심하여 등반할 수 없는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나와서 정우씨를 비롯한 일행들과 잠시나마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도선사주차장 위의 데크는 평소에 민경씨와 함께 등반하는 분들까지 서로 인사가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물들었다. 하루재를 지나 나타난 인수봉의 전경 또한 화창한 날씨에 걸맞게 그 어느 때보다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해외에서 고생하느라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정우씨는 인수봉까지 접근하는 중에도 거친 숨을 몰아 쉴 정도로 힘겨운 모습이었지만,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해맑은 표정만은 여전했다. 정우씨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로..

암빙벽등반 2025.04.17

인수봉 - 2025년 4월 9일(수)

이틀 전인 월요일부터 인수봉 바윗길이 열렸다. 올해 들어 첫 인수봉 등반을 나서는 터라 살짝 설레는 마음이다. 하루재를 향해 오르는 등로에서 진달래, 개나리, 노랑제비꽃이 차례로 반겨준다. 하루재를 넘어서자 나타난 인수봉의 우람한 자태는 여전하다. 크로니길 아래의 베이스캠프에 올라서기까지가 버겁지만 기분만은 상쾌하다. 기범씨의 지도로 구선생님과 나의 장비를 세세히 점검하고 오토블록(Auto-Block) 매듭을 이용한 하강법을 정확히 익히는 것으로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다음으로 인수B길 항아리 크랙 좌측의 스플릿터(Splitter) 크랙까지 등반했다. 마지막으로 베이스캠프 위의 직상 크랙에서 톱로핑으로 크랙등반 자세를 연습했다. 좌측의 슬랩에서 연습하기 위해 기범씨가 두 줄로 구축해 놓은 톱로핑 시스템에서..

암빙벽등반 2025.04.11

수락산 대주암장 - 2025년 4월 6일(일)

금요일인 그저께 점심시간엔 동료 교수들과 캠퍼스를 산책하면서 봄꽃을 구경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어제는 하루종일 봄비가 내렸다. 제법 많이 내린 비는 두세 시간만에 둘레길 우중 산행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오늘은 비가 멎었으나 아침부터 구름 낀 하늘로 시작했다. 수락산 벽운계곡 주변은 진달래꽃이 한창이었다. 지난 겨울에 남양주시 청학리에서 수락산 정상을 찍고 배낭바위 능선으로 하산하면서 둘러본 적이 있는 대주암장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힘겹지만 처음으로 등반할 암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은 설렌다. 발목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동행해준 은경이와 암벽에서는 항상 믿음직한 기범씨가 함께 오붓하게 팀을 이루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대주산악회 회원분들이 우리보다 일찍 오셔서 종일토록 베이스캠프를 정..

암빙벽등반 2025.04.07

수락산 내원암장 - 2025년 4월 2일(수)

이번 학기엔 수요일에 강의와 회의, 세미나 등의 일정이 잡혀있지 않다. 무엇보다 한적한 수요일에 암벽등반을 즐길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다. 그 기대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올해의 첫 수요등반을 수락산 내원암장에서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인수봉과 선인봉 등 북한산 일대의 암벽장들은 봄철 해빙기 이용 금지 기간에 걸려 있는 상태이다. 기범씨, 구선생님, 나, 이렇게 셋이서 오붓하게 팀을 이루었다. 평일이라서 다른 팀들이 안 올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많은 클라이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교 동문산악회에서 단체로 오신 김선생님도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등반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예상보다는 잘 오를 수 있었다. 그만큼 등반이 즐거웠던 하루였다.

암빙벽등반 2025.04.02

선인봉 '박쥐-표범-청악' - 2025년 3월 22일(토)

비로소 기다리던 따스한 봄날이 도래했건만 개강 이후의 과로가 누적된 탓인지 내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다. 오늘 등반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망설이면서 스스로도 반신반의 하게 되는 복잡한 심경이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하니 그저 악우들 얼굴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집을 나선다. 약속 장소인 도봉산 광륜사삼거리에 약속 시간인 08시 직전에 도착한다. 그런데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은경이는 나보다 더 몸이 안 좋아 보인다. 곧이어 기범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정시에 도착하니 반가운 마음에 두 약골들은 잠시나마 생기를 되찾은 듯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한다. 기범씨와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줄을 묶는 날인 만큼 몸이 좋지 않더라도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활력을 되찾아 보자는 다짐을 하면서 어프로치..

암빙벽등반 2025.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