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59

조령산 새터암장 - 2024년 11월 23일(토)

학기말로 접어드는 11월 하순은 내게 있어 1년 중 여러모로 가장 분주한 시기이다. 일주일에 두어 차례 나가던 실내 암장에서의 운동도 최근에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주말 등반은 가급적이면 거르지 않기로 다짐한다. 가벼울 수 없는 몸상태를 감안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 삼아 떠날 수 있는 등반지를 물색해 본다. 그동안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던 조령산의 새터암장이 떠오른다. 여름철 등반지로 인기 높은 곳이지만, 상대적으로 한가한 늦가을날에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루의 최저 기온이 영상에 머물고 바위에 햇살이 비춰 준다면 요즘처럼 쌀쌀한 날에도 충분히 암벽등반을 즐길 수가 있다. 오늘의 맑은 날씨와 남향의 새터암장은 이러한 등반 조건에 제대로 부합하는 듯 보였다. 아침 ..

영암 월출산 연실봉-매봉 [2024년 11월 9일(토)]

월출산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땅끝이 가까운, 서울에서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기에 더욱 그리운 것은 아닐까?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에 걸쳐 있는 월출산이건만, 지금은 폐교가 된 나의 모교인 나주시 소재의 초등학교 교가에도 "정기찬 월출산을 바라보면서"라는 가사가 등장했었다. 실제로 시야가 좋은 날에는 다른 산줄기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월출산의 삐쭉빼쭉한 하늘금을 나주의 고향집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친숙한 월출산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자주 올랐었다. 서울에서 거주한 세월이 어언 30년을 훌쩍 넘긴 탓에 이제는 선뜻 찾아가기 버거운 산이 되었지만, 여전히 월출산은 내 마음 한구석에 고향집처럼 굳건히 살아 숨쉬고 있는 추억과 그리움의 산이다. 간밤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치고, 새벽 ..

울진 불영계곡 집게바위 - 2024년 8월 16일(금)

간밤엔 불영계곡캠핑장에서 숙박을 했다.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원정 등반을 다니면서 현지의 캠핑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라서 우리나라의 캠핑장 사정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여름 등반여행 기간 동안엔 2박을 모두 불영계곡캠핑장에서 보내기로 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엔 캠핑장에 가랑비가 내렸다. 타프 아래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분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기범씨가 내려준 에스프레소 커피의 그윽한 향기를 즐긴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오전 10시 즈음부터 비가 그쳐서 캠핑장에서 가까운 집게바위 암장을 찾았다. 선유정에서 보이는 집게바위를 찾아가는 길부터가 재미 있었다. 계곡에 인접한 암장의 루트들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서울 홍대클라이밍센터의 윤선생님이 이렇게 외진 곳까지 오셔서 바윗길을 개..

설악산 유선대 '이륙공천' - 2024년 8월 15일(목)

광복절이 목요일인 덕택으로 직장인들은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4일 동안 연휴를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예년 같으면 무더위가 한풀 꺽일 시기지만 올 여름은 유난히 장마와 함께 폭염까지 지리하게 이어지는 형국이다. 수그러들지 않는 열대야와 폭염 탓을 하면서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다시 여름휴가를 떠난다 해도 뭐라 나무랄 수 없는 날씨의 연속인 것이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2학기를 준비해야 하므로 나도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가를 다녀오자는 심산으로 2박 3일 일정의 등반여행을 계획한다. 설악산과 울진에서의 등반이 포함된 이번 여행을 위해 암벽등반과 캠핑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챙겨서 새벽 3시 반에 집을 나섰다. 은숙, 성배, 은경, 이렇게 세 악우들을 픽업하여 속초로 향했다..

설악산 소토왕골 '산빛JK' - 2024년 6월 16일(일)

비가 오락가락 했던 어제 날씨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듯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하기 이를 데 없는 하늘 아래 소토왕골로 향한다. 비교적 이른 아침인 7시 40분 즈음에 암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수십 명이 등반 준비 중이었다. 우리팀은 아무도 없는 골짜기 맨 안쪽으로 이동했다. '산빛JK'와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루트를 등반할 계획이었다. 매 피치가 하드프리 암장의 단피치처럼 등반성 높은 '산빛JK' 루트 세 피치를 완료하고 하강했다. 이때까지는 암벽이 그늘져 있어서 좋았다. 간밤에 과음한 탓에 몸상태는 별로였다. 잠시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한 후에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루트 첫 피치에 붙었으나, 따가운 햇살을 온몸에 받으면서 확보점에 매달려 있다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하강하여..

국립등산학교 인공암벽장 - 2024년 6월 15일(토)

울산바위의 빼어난 절경을 원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북설악 신선대를 다녀온 후, 암벽등반 승인 건에 대한 체크인 요청 문자에 응하기 위해 설악동으로 이동했다. 암벽 이용 당일에 등반 해당 지역에 있어야 체크인 버튼이 활성화 된다는 안내문자 탓이다. 설악산 국립공원 권역 내에서 휴대폰 위치추적 시스템을 활성화 시켜야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할 수 있는데, 이 절차 또한 복잡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산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을 즐기고 오로지 등반에만 집중하기 위하여 휴대폰 전원을 꺼 놓는 습성이 있는 나 같은 부류들에겐 여간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소심한 복수를 하는 셈 치고 전화 상으로 비 때문에 등반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공단 직원들에게 체크인을 요청했다. 오후..

수원 광교호수공원 인공암벽장 - 2024년 4월 21일(일)

대둔산 수락계곡으로 아침 하이킹을 다녀온 후에 수원의 광교호수공원으로 이동했다. 서울로 가는 길 중간에 클라이밍을 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찾아낸 인공암벽장이 광교호수공원 내에 자리한 까닭이다. 진즉부터 한 번은 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이제서야 기회가 닿은 셈이다. 신대호수와 원천호수 사이의 드넓은 공원에 자리한 암장은 멀리서 바라본 모습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다른 인공암벽들과 달리 스피드벽, 직벽, 오버행벽이 세 개의 다른 건물로 분리되어 있어서 그런지 다분히 인상적이었다. 중앙에 자리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타원형 기둥 모양의 건물은 중세시대 성곽의 망루처럼 보였다.  직벽이 설치된 내부는 지붕이 있어서 비 오는 날에도 등반이 가능했다. 돌을 쌓아 축성한 성벽이 연상되는 외부 마감재 또..

대둔산 수락계곡 - 2024년 4월 21일(일)

올해 들어 두 번째로 계획한 등반여행의 애초 계획은 1박 2일 동안 대둔산 '새천년길'과 천등산 '민들레길'을 등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번 주말 날씨는 일주일 전의 예보와 달리 전국에 비가 오는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천등산의 암벽 루트들은 어제 대둔산 관광지구 아래의 숙소로 가는 길에 잠깐 비가 그친 틈을 놓치지 않고 괴목동천에서 먼 발치로나마 구경할 수 있었다. 간밤에도 대둔산 지역은 이슬비가 멈추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대둔산 정상부는 구름에 잠겨 있었다. 암벽등반은 깨끗이 포기하고 대둔산의 논산시 지역에 속하는 수락계곡을 산책하기로 했다. 두어 차례 와본 적이 있는 수락계곡의 산책로는 이번에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선녀폭포와 수락폭포를 품은 계곡은 신록으로 물들어 더없이..

대전 하나클라이밍짐 - 2024년 4월 20일(토)

대둔산 등반을 위해 새벽 5시에 서울의 집을 나섰다. 어제 확인한 일기예보 상으로는 대둔산에 오후 1시 이후부터나 비가 올거라 했다. 원래 계획했던 '새천년길' 멀티피치 등반은 여러모로 무리일 듯하여, 신선바위 암장에서 등반하다가 비가 오면 하산해서 수락계곡을 우중에라도 산책하면 좋겠다는 것이 출발하면서 뇌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일기예보는 달라져 있었다. 오전 9시부터 대둔산 지역에 비가 내린다는 것이었다. 대둔산 등반은 미련 없이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생각해둔 플랜B를 실행에 옮겨보기로 했다. 우선은 유성의 소고기국밥 맛집에서 조식을 해결하고, 근처의 수통골로 이동하여 봄비 속에 신록의 숲길을 걸었다. 근사한 카페에서 달달한 빵을 곁들인 커피타임을 가진 후에 대전 월드컵경기장 안의..

영덕 블루로드 해벽 - 2024년 3월 2일(토)

창밖으로 동해바다가 보이는 경주시 양남면의 숙소에서는 밤새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강풍이 불었다. 세찬 바람과 영하로 떨어진 기온 탓에 계획했던 영덕 블루로드 해벽에서의 등반은 아무래도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차분하게 마음먹기로 하고 숙소에서 아침을 먹은 후 출발하여 기온이 영상으로 오를 때까지 영덕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포항의 내연산 산행을 가볍게 다녀올 심산이었다. 그런데 잠깐 눈요기나 할 요량으로 들렀던 숙소 바로 앞의 주상절리길이 전혀 예상치 못한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해파랑길 10코스 말미에 2km 남짓 이어진 주상절리길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내연산 산행 계획은 저멀리 사라져버렸다. 예정된 계획에서 잠시 벗어나 즉흥적으로 현지의 풍물에 동화되어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느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