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475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2] 요세미티 국립공원 입성

오웬스리버고쥐에서 등반을 마치고 크롤리레이크 캠핑장에 돌아와 보니 지선씨와 아란씨가 사용했던 기영형 소유의 MSR 텐트는 바람에 날아가버렸고, 내 텐트도 팩이 뽑힌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텐트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진 탓에 간밤엔 남자들 4명이 윤선생님의 텐트에서 함께 낑겨 자고, 두 여자들은 내 텐트를 이용했다. 일요일인 6월 30일 아침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 중간에 맘모스타운의 장비점에 들러 새 텐트를 구입했다. 기영형을 비롯한 모든 멤버가 텐트 실종 사건을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 것에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모노호수(Mono lake)가 내려다보이는 리바이닝(Lee Vining) 나들목에서 티오가패스(Tioga pass) 입구를 거쳐..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1] Owen's River Gorge

밸리(valley, 계곡)와 캐니언(canyon, 협곡)을 구분짓는 기준은 갈라진 골짜기의 폭(가로 길이)과 깊이(세로 길이) 중 어느 것이 더 큰가에 있다. 깊이보다 폭이 더 크면 밸리, 그 반대인 경우는 캐니언이라 한다. 고쥐(gorge)는 캐니언 중에서도 목구멍(throat)처럼 특별히 폭이 좁은 지형을 일컫는다.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윤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깨알 상식이다. '2024 요세미티 원정대'의 첫 번째 등반지는 오웬스리버고쥐(Owen's river gorge)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지형인 오웬스리버고쥐를 처음 본 순간 비로소 미국땅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 아래에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벌판에 마치 지진으로 땅이 갈라진 것처럼 움푹..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프롤로그] 카르페 디엠(Carpe diem)

암벽등반이 내 인생에 들어온 이후로 요세미티 원정 등반은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튼 채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소망이었다.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 그날을 상상하면서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의 암벽등반지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첫 안식년 기간이던 2010년 6월에 나홀로 유럽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온 직후, 등산학교에서 암벽과 빙벽등반을 배웠다. 하지만 이듬해 등반 중 불의의 발목 골절상을 당하고 말았다. 수술 후 재활에 매진하던 시기인 2011년 8월에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미국 UCSB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는 출장길에 올랐었다. 출장 일정을 마치고 휴가를 내어 동료교수들과 함께 2박 3일 동안 요세미티 국립공원 일대를 자동차로 샅샅이 훑고 다녔다. 요세미티의 절경을 두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충..

무의도 하나개 해벽 - 2024년 6월 23일(일)

어제는 거의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파주의 웅담리 암장에서 등반은 하지 못하고 타프 안에서 악우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빗속의 낭만을 즐긴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오후에 빗속을 뚫고 감악산에 올랐던 것이 큰 위안을 주었다. 오늘은 요세미티 등반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윤길수 선생님팀과 함께 하나개 암장에서 등반하는 날이다. 어제의 피로가 덜 풀린 듯하여 무의도로 가는 길에 영종대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갔다. 살랑살랑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이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순도 높은 그 바람은 오래 전 그리스의 크레타섬 출장길에서 만난 에게해의 바람을 닮아 있었다. 개장을 한 하나개 해수욕장은 아침부터 나들이 인파로 붐볐다.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있는 시간이..

암빙벽등반 2024.06.24

설악산 소토왕골 '산빛JK' - 2024년 6월 16일(일)

비가 오락가락 했던 어제 날씨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듯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하기 이를 데 없는 하늘 아래 소토왕골로 향한다. 비교적 이른 아침인 7시 40분 즈음에 암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수십 명이 등반 준비 중이었다. 우리팀은 아무도 없는 골짜기 맨 안쪽으로 이동했다. '산빛JK'와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루트를 등반할 계획이었다. 매 피치가 하드프리 암장의 단피치처럼 등반성 높은 '산빛JK' 루트 세 피치를 완료하고 하강했다. 이때까지는 암벽이 그늘져 있어서 좋았다. 간밤에 과음한 탓에 몸상태는 별로였다. 잠시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한 후에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루트 첫 피치에 붙었으나, 따가운 햇살을 온몸에 받으면서 확보점에 매달려 있다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하강하여..

국립등산학교 인공암벽장 - 2024년 6월 15일(토)

울산바위의 빼어난 절경을 원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북설악 신선대를 다녀온 후, 암벽등반 승인 건에 대한 체크인 요청 문자에 응하기 위해 설악동으로 이동했다. 암벽 이용 당일에 등반 해당 지역에 있어야 체크인 버튼이 활성화 된다는 안내문자 탓이다. 설악산 국립공원 권역 내에서 휴대폰 위치추적 시스템을 활성화 시켜야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할 수 있는데, 이 절차 또한 복잡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산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을 즐기고 오로지 등반에만 집중하기 위하여 휴대폰 전원을 꺼 놓는 습성이 있는 나 같은 부류들에겐 여간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소심한 복수를 하는 셈 치고 전화 상으로 비 때문에 등반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공단 직원들에게 체크인을 요청했다. 오후..

노적봉 '님은 먼 곳에' 또는 '아미고스' - 2024년 6월 2일(일)

요세미티 원정 등반을 함께 가게 될 윤선생님 팀에 합류하여 노적봉에 올랐다. 아침 8시를 조금 넘긴 시간, 북한산성 등산로 입구에서 윤선생님, 기영형, 재창씨가 은경이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오늘 함께 등반할 가을씨와 진하씨는 약속장소를 잘못 인지하여 우이동으로 가는 바람에 뒤늦게 합류하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윤선생님은 노적봉 정중앙의 가장 긴 바윗길인 '별이 있던 그 자리(구 경원대길)' 루트를 글루인 볼트로 몸소 리볼팅 하신 분이다. 오늘은 당연히 그 길을 등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먼저 등반 중인 팀의 인원이 너무 많았다. 글루인 볼트로 가장 안전하게 정비된 바윗길인 만큼 노적봉에서 인기가 높을 수 밖에 없고, 이런 사실이 정작 우리팀에게는 좋지 않게 작용한 것이다. 할 수 없이 ..

암빙벽등반 2024.06.03

파주 웅담리 암장 - 2024년 6월 1일(토)

가까운 단피치 암장에서 여유로운 등반을 즐기고 싶었다. 토지 소유 기관의 출입금지 조치로 암장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감악산 등산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파주 웅담리 암장을 찾았다. 운 좋게도 숲이 우거져 그늘지고 고요한 암장이 그 어느 때보다 등반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등반공지를 하지 않았는데도 준수씨와 성배씨가 어젯밤에 따로따로 전화 연락을 주어 오늘 등반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나의 첫 박사 제자인 나영이가 대전의 연구소에서 올라와 참석한 간밤의 회식자리에서 술을 피할 수 없었던 내 몸상태를 걱정했으나 예상보다는 괜찮았다. 벤치에 드러누워 잠시 쉬는 시간이 편안했다. 준수씨가 살뜰히 챙겨온 모기기피제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성배씨는 처음으로 프로젝트 등반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

암빙벽등반 2024.06.03

강촌 유선대 암장 - 2024년 5월 25일(토)

이번 학기 들어 가장 빡빡한 일정으로 한 주간을 보낸 탓인지 그제 저녁부터 몸이 물 먹은 솜이불처럼 무거워졌다. 그간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임계점을 넘겨 몸살감기가 찾아든 것이다. 주말 등반을 거를까 싶었지만 집안에 있으면 더욱 늘어질 듯하여 악우와 함께 강촌의 유선대 암장을 가기로 한다. 내게는 굳이 등반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 강촌이다. 때마침 임플란트 시술로 고생 중인 악우도 맘 놓고 운동을 할 처지가 아니어서 등반은 흉내만 내고 철수한다. 남은 오후 시간은 운악산 출렁다리와 현등사를 구경하는 산행을 가기로 한다. 오늘처럼 암벽 앞에서 등반 의욕이 발동하지 않은 건 참 드문 현상이다. 이마저도 물 흐르듯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평온한 마음으로 진중하게 생각하고 현명하게 ..

암빙벽등반 2024.05.26

도봉산 '배추흰나비의 추억' - 2024년 5월 18일(토)

이른 아침 7시부터 도봉산 광륜사 삼거리에서 악우들을 만나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만월암을 거쳐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출발점 아래의 공터에 도착한 시간은 8시 반 무렵이다. 우리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 속에서 산새 소리 들으며 느긋하게 장비를 착용한다. 오늘은 우리팀이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를 독차지 한 듯하여 3피치부터 등반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바꾸어 첫 피치부터 차근차근 올라보기로 한다. 내가 선등하고 은경, 성배 순으로 오른다. 비교적 쉬운 1, 2피치를 재빨리 끝내고 3피치로 옮겨간다. 내심 3피치 후반부의 크럭스인 직상 세로 크랙을 자유등반 방식으로 돌파하고 싶었으나, 선등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인공등반 방식으로 오른 것이 못내 아쉽다.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하일라이트..

암빙벽등반 2024.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