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잔뜩 흐린 하늘이었다. 다행히 비 예보는 없어서 등반하는 데엔 별다른 지장이 없을 줄 알았지만,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나의 몸상태도 흐린 날씨 만큼이나 좋지 않았다. 인수봉 동벽을 향해 어프로치 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기만 했다. 인기 있는 루트들은 모두 점령 당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팀은 상대적으로 주변이 한산한 '비원'길을 오르기로 했다. 기범씨의 선등으로 귀바위 아래의 종착점까지 네 마디로 끊어서 올랐다. 내가 쎄컨을 보고, 은경, 해진씨, 김선생님 순으로 등반했다. 5.11대의 고난도 슬랩 구간은 볼트를 밟지 않고는 도저히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지만, 궂은 날씨를 신경쓸 겨를 없이 오롯히 등반에 집중하면서 바윗길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구간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정코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비원'길을 완등했다는 만족감이 남았다. 등반팀 5명 모두가 귀바위 아래의 마지막 확보점에 도착했을 땐 불어오는 찬바람에 잠시 추위에 떨어야만 했으나,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큰 위로가 돼 주었다. 풍미 가득한 기범씨표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의 효용가치가 최상의 정점에 이른 순간이었다. 하강 중에는 역시나 예보에 없던 비를 맞아야 했고, 차분히 이어진 가랑비에 더이상의 등반은 불가했으나 하산하는 데에는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제부터는 흐린 날에 인수봉을 등반할 때는 보온 대책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교훈을 새긴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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