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501

인수봉 '비원, 심우, 벗길' - 2024년 8월 24일(토)

주초에 대상포진과 파상풍 2차 예방접종을 맞은 후로 몸상태가 몹시 좋지 않은 한주간을 보냈다. 당연히 습도 높은 날씨에 이렇다할 등반욕구가 발동하지 않은 주말이 다가왔다. 때마침 금요일 오후에 기범씨가 인수봉에 함께 가자고 하여 부담 없이 따라 나설 수 있었다. 기범, 은경, 나, 이렇게 셋이서 인수봉에 가면 자연스레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하지만 캐리의 다음 순서인 '봔트'길을 오늘 오를 수는 없다. 기범씨가 손목 부상 중이고, 크랙 루트엔 물이 줄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전엔 동벽의 '비원'길을 3 피치로 끊어서 등반하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 시간엔 '심우'길과 '벗'길에서 등반했다. 은경이가 문상 때문에 일찍 ..

암빙벽등반 2024.08.25

울진 불영계곡 집게바위 - 2024년 8월 16일(금)

간밤엔 불영계곡캠핑장에서 숙박을 했다.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원정 등반을 다니면서 현지의 캠핑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라서 우리나라의 캠핑장 사정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여름 등반여행 기간 동안엔 2박을 모두 불영계곡캠핑장에서 보내기로 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엔 캠핑장에 가랑비가 내렸다. 타프 아래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분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기범씨가 내려준 에스프레소 커피의 그윽한 향기를 즐긴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오전 10시 즈음부터 비가 그쳐서 캠핑장에서 가까운 집게바위 암장을 찾았다. 선유정에서 보이는 집게바위를 찾아가는 길부터가 재미 있었다. 계곡에 인접한 암장의 루트들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서울 홍대클라이밍센터의 윤선생님이 이렇게 외진 곳까지 오셔서 바윗길을 개..

설악산 유선대 '이륙공천' - 2024년 8월 15일(목)

광복절이 목요일인 덕택으로 직장인들은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4일 동안 연휴를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예년 같으면 무더위가 한풀 꺽일 시기지만 올 여름은 유난히 장마와 함께 폭염까지 지리하게 이어지는 형국이다. 수그러들지 않는 열대야와 폭염 탓을 하면서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다시 여름휴가를 떠난다 해도 뭐라 나무랄 수 없는 날씨의 연속인 것이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2학기를 준비해야 하므로 나도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가를 다녀오자는 심산으로 2박 3일 일정의 등반여행을 계획한다. 설악산과 울진에서의 등반이 포함된 이번 여행을 위해 암벽등반과 캠핑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챙겨서 새벽 3시 반에 집을 나섰다. 은숙, 성배, 은경, 이렇게 세 악우들을 픽업하여 속초로 향했다..

파주 웅담리 암장 - 2024년 8월 10일(토)

지난 주에 이어 2주 연속으로 파주 웅담리 암장을 찾았다. 집에서 가깝고 어프로치도 짧은 익숙한 암장에서 맘 편히 놀다 오자는 생각이 강했다. 이번엔 3암장 앞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는데, 무엇보다 하루종일 우리팀이 3암장을 독차지하고 등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무 그늘은 시원했고,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사흘 전이 입추라는 걸 일깨워 주었다. 후텁지근하던 일주일 전과는 확실히 다른 신선함이 깃들어 있는 바람결이었다. 아무리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할지라도 계절의 변화만큼은 거스를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이 지리한 폭염의 횡포도 서서히 누그러질 때가 된 듯하다. 마음 속으론 벌써부터 초가을의 시원함을 기대하게 된다.    '일마(5.10b)' 루트는 첫 판임에도 불구하고 큰 어려움 없이 완등했다. 하..

암빙벽등반 2024.08.11

파주 웅담리 암장 - 2024년 8월 3일(토)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굴할 수 없다는 자세로 성배, 은경, 나, 이렇게 셋이서 파주의 웅담리 암장에서 열클한 날이었다. 간밤에 내린 소나기 탓에 암벽의 하단부가 젖어 있었지만, 손홀드는 그런대로 양호해서 등반의 재미를 느끼는 데엔 부족함이 없었다. 한 루트를 오르내리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연속으로 다음 루트에 붙을 의지는 아예 꿈틀대지도 않았다. 하지만 땀을 흠뻑 내뿜고 난 직후엔 자잘한 불쾌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이상한 후련함마저 느껴졌다. 옆팀에서 계란판을 태워 주변에 연기가 자욱할 정도였지만 모기를 물리치는 데는 꽤나 효과적인 듯했다. 나는 'JK(5.10d)' 루트를 세 차례 도전 끝에 깔끔히 완등할 수 있어서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이열치열의 태도로 이 여름의 무더위를 멋지게 극복할 수 있..

암빙벽등반 2024.08.04

인수봉 - 2024년 7월 28일(일)

오늘 하루 인수봉은 우리팀과 윤선생님팀이 독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클라이머들도 다들 여름 휴가를 떠난 덕택인지 인수봉의 바윗길은 그 어느 때보다 한가했다. 미국 원정 등반을 함께 다녀왔던 윤선생님과 기영형, 가을씨, 아란씨를 인수봉에서 다시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손목 부상 중인 기범씨와 은경, 나 이렇게 셋은 '건양길'로 출발해서 '크로니길', '여정길'의 슬랩이 주를 이루는 구간만을 골라서 정상에 올랐다. 윤선생님팀은 대슬랩에서 시작하여 '크로니길', '하늘길' 등을 거쳐서 정상으로 향했다. 우리팀과 윤선생님팀이 나란히 진행하여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줄 수가 있었다. 구름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 오늘의 인수봉은 최고의 피서지였다.

암빙벽등반 2024.08.04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에필로그]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가수 조용필의 11집 앨범(정확히는 10집 Part 2) B면은 19분 56초 분량으로 국내 최장 플레잉타임을 기록 중인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이란 제목의 노래 한 곡으로 채워져 있다. 이 노래는 내가 학부 졸업과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한창 방황하던 시기인 1989년 1월에 발표되었다. 처음 듣던 그 순간부터 내 심금을 울렸던 이 노래는 숙명적으로 주어진 삶을 생이 다하는 날까지 두려움 없는 탐험과 성찰로 혼신의 힘을 다해 헤쳐 나아가고자 절규하는 인간적 고뇌를 그린 대서사시 같은 가사에 화려하고 웅장한 선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명곡이 아닐 수 없다.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의 긴 노랫말을 다 외울 수는 없지만, 이번 미국 등반여행을 다니는 동안 문득문득 이 노..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11] Malibu Creek State Park

이번 등반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로스앤젤레스 동북쪽에 위치한 '말리부 크리크 주립공원(Malibu Creek State Park)' 안에 자리한 '마운트 고저스(Mount Gorgeous' 암장이다. 영어로 '크리크(creek)'가 개울이나 시내를 뜻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말리부 크리크 주립공원엔 계곡물과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주차장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트레일 입구를 지나자마자 개천을 만나게 되고, 절벽 사이에 계곡물이 머물러 연못을 이룬 천연 수영장인 '록풀(Rock Pool)'의 언저리를 조심스레 잘 통과해야만 암장에 닿을 수 있다. 주차장에서 록풀까지는 약 50분 정도가 걸린다. 마운트 고저스 암장은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독특한 암질의 오버행 절벽이다. 밑에서 올려다 본 암벽엔 잡을만한..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10] Riverside Quarry Shadow Rock

페리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캠핑장은 물이 없던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 겪어야 했던 불편함을 말끔히 해소시켜 주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운영하는 주립공원 안에 자리한 캠핑장답게 수세식 화장실에 샤워장까지 제대로 갖춰진 시설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는 이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귀국하는 날인 7월 13일 아침까지 3박 4일을 머물렀다. 7월 11일엔 리버사이드 채석장(Riverside Quarry)에 개척되어 있는 암장에서 등반했다. 지금은 'Shadow Rock Park'라는 명패를 달고 말끔히 정돈되어 있는 채석장 주변은 윤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찾던 시절엔 상당히 지저분했다고 한다. 윤선생님께서는 여기에서 등반하신 후에 채석장에도 좋은 암장을 개척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탄생한 ..

[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9] Joshua Tree National Park

애초엔 7월 9일 아침에 라스베가스 호텔을 출발하여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중간에 뉴잭시티(New Jack City)에 들러 등반할 예정이었다. 지금은 'Sawtooth Canyon'이라 불리는 뉴잭시티에 우리가 도착한 때는 가장 더운 시간인 정오 무렵이었다. 처음엔 검은 빛깔의 암벽이 다분히 이채로운 모습이어서 등반해보고 싶은 마음이 살짝 동했으나, 캠프그라운드의 그늘막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바위에 붙었다가는 화상이라도 입을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등반은 포기하고 점심으로 짜장라면을 끓여 먹은 후, 뉴잭시티를 떠나서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잠시 들른 등반 장비점은 생각보다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물이 없는 사막 기후인 조슈아트리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