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499

인수봉 '비원-양지, 모설' - 2025년 6월 22일(일)

장마철인 요즘 날씨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화창한 일요일이다. 도선사광장주차장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린다. 등산로 입구의 데크에도 약속시간이 가까워진 많은 클라이머들이 모여들어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기범씨의 등산학교 동문 산악회 회원분들도 여럿 눈에 띈다. 지석이 형과 동혁씨도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치고 반갑게 인사 나눈다. 우리팀은 은경이가 합류하여 기범씨와 나, 이렇게 셋이서 인수봉 동면의 '비원' 루트에서 출발한다. '의대'길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우측의 '양지' 루트로 꺽어진 후, 다시 '의대'길 마지막 두 피치를 지석이 형네 팀과 나란히 오른다. 안면 있는 여러 사람들이 모이게 된 귀바위 아래의 널찍한 테라스에서 즐거운 커피타임을 갖고 출발점으로 하강한다. 늦은 오후 시간에 그늘지고 한적해진 동..

암빙벽등반 2025.06.23

인수봉 '동양' - 2025년 6월 18일(수)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 프로젝트의 오늘 순서는 '동양'이다. 총 8피치의 바윗길인 이 루트를 부분적으로 등반해본 적은 몇 차례 있으나, 정코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서 등반한 건 오늘이 처음이다. 캐리 프로젝트를 할 때, 기범씨는 모든 루트를 정코스로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오늘같은 평일이 아니면 루트 중간에서 다른 팀들과 엉키는 귀찮은 일이 자주 발생하기 마련이다. 아프리카 코트디브와르 의료봉사를 떠나야 해서 함께하지 못한 구선생님의 빈 자리가 허전했지만, 한적한 인수봉 남면에서 기범씨와 둘이 오롯히 등반에 집중하면서 '동양' 루트를 오르는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했다. 등반 중에 가끔 작업용 헬기가 우리 주변을 지나 백운산장 인근을..

암빙벽등반 2025.06.18

만경대 릿지 - 2025년 6월 13일(금)

작년 가을 숨은벽 릿지에서 처음으로 줄을 묶었던 이신부님과는 두 번째 멀티피치 등반이다. 당시에 특별히 등반하고 싶은 곳이 있냐는 나의 물음에 이신부님은 주저하지 않고 만경대에 올라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이신부님은 나와 동갑내기로 같은 실내암장을 다닌다. 암장에서 안면을 튼 다른 분들과 어울려 종종 등반을 다니셨기에 만경대 정도는 벌써 올랐을 줄 알았는데, 그간 마땅한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때마침 내가 종강을 한 다음 날이라서 이신부님과 함께 시간을 맞출 수가 있었다. 개인적으론 만경대 릿지를 밟아본 지 9년이 지났다. 내 블로그에서 검색해 보니 2016년 6월에 종강 기념으로 동료 교수님 두 분을 이끌고 숨은벽에서 만경대까지 등반했던 기록이 있었다. 그동안 만경대 릿지는 많은 부분이..

암빙벽등반 2025.06.14

인수봉 남면 '동양-청맥-여정' - 2025년 6월 11일(수)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이다. 어프로치를 끝내고 인수봉 남면 '여정'길 앞의 넓은 공터에 도착하여 망중한을 즐기는 순간이 더이상 좋을 수가 없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안에 몸을 숨기고 산 아래를 굽어보는 눈길 속에 저절로 감사함이 묻어난다. 평일 아침 시간의 인수봉 주변을 고요한 평화로움이 감싸고 있다. 암벽등반을 하지 않고 이렇듯 한가로운 휴식만 하고 있어도 세상 근심은 모두 사라질 듯하다. 구선생님이 아프리카 코트디브와르 의료봉사를 떠나는 일로 오늘 등반에 합류하지 못했다. 기범씨와 둘이서 '동양'길 4피치를 두 피치씩 끊어서 오른 후, 고난도인 '청맥' 루트에서 연습했다. 마지막으로 '여정'길 크랙에서 연습 한 판 더하고 하산했다. 피로가 쌓인 몸에도 불구하고 예상과는 달리 크랙등반 자세가 많이..

암빙벽등반 2025.06.12

선인봉 [소나무 없는 '박쥐'] - 2025년 6월 8일(일)

선인봉 암벽을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던 소나무가 사라졌다. 지난 4월 19일, '박쥐' 루트 3피치 확보점에 늠름하게 서있던 노송이 강풍에 넘어져 약 13톤의 낙석이 발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팀이 3월 22일에 박쥐길을 등반할 때만 해도 소나무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낙석 발생지에 대한 안전조치가 완료된 후, 5월 24일부터 재개방한 선인봉 남동벽을 오늘 다시 찾게 되었다. 표범길 아래의 베이스캠프 주변은 여기저기 처참한 낙석의 흔적들이 남았고, 소나무가 사라진 암벽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휑한 느낌이었다. 석굴암 종루의 지붕이 반파된 모습도 위에서 보니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금요일인 현충일부터 이어진 3일 연휴의 마지막 날, 기범씨와 함께 둘이서 선인봉 등반에 나섰다. 낙석 안전조..

암빙벽등반 2025.06.12

용화산 새남·장수바위 - 2025년 6월 6일(금)

현충일인 오늘부터 3일 동안 황금연휴가 이어진다. 기범씨가 내 차에 동승하여 6시 무렵에 서울 탈출을 시도한다. 간선도로 상에 예상보다 많은 차량들이 보인다. 정체된 구간을 피해 남양주시 마석을 경유하는 옛 경춘가도를 타고 대성리의 북한강변까지 빠져나온다. 비로소 도로 사정이 원활해진다. 춘천과 화천의 경계에 걸쳐 있는 용화산 큰고개를 찾아가는 도로는 구불구불 산길이다. 09시 즈음에 도착한 큰고개 주차장엔 벌써부터 많은 산객들과 클라이머들의 차량들로 북적인다. 10분 남짓의 어프로치로 새남바위 아래의 공터에 자리를 잡는다. 평화로운 고요함이 깃든다. 얼마 전 천등산 등반을 함께 했던 유선배님 소속 산악회 회원분들이 우리와 같이 새남바위 아래의 공터에서 베이스캠프를 공유한다. 기범씨와 나는 둘이서 장수바..

암빙벽등반 2025.06.07

파주 웅담리 암장 - 2025년 6월 3일(화)

제 21대 대통령 선거날이다. 이른 아침에 나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파주의 암장으로 향한다. 오랜만의 단피치 암장 나들이가 소풍처럼 느껴진다. 어느새 울창한 숲으로 변한 암장 주변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준다. 익숙한 루트들에서 몸을 풀어보지만 생각만큼 가벼운 몸놀림은 아니다. 스포츠클라이밍 루트에서는 아무래도 팔힘을 많이 쓸 수 밖에 없는데, 왼손 전완근에 펌핑이 자주 오고 오른 쪽 어깨 부위의 통증이 신경쓰인다. 분주한 일정 탓에 실내암장 운동을 한달 이상 쉬었던 댓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그래도 유난히 많은 클라이머들로 붐볐던 암장에서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었다.

암빙벽등반 2025.06.04

인수봉 남면 '써미트 슬랩', '영희야 놀자', '써미트 크랙' - 2025년 5월 28일(수)

암벽등반이 예정된 날에는 일기예보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예보는 시시각각 변하는 게 날씨 생방송이 따로 없다. 이틀 전에 확인한 바로는 오늘 날씨가 맑음이었는데, 어젯밤에는 오전 한때와 오후 시간에 비가 내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자칫하면 피치 중간에서 비 맞은 생쥐꼴이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안고 아침에 인수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냥 가벼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기범씨가 이끄는 수요등반에 참여하게 된 이번 봄 시즌 내내 변덕스런 주말과 달리 수요일 날씨만은 최고였는데, 그 운도 이제는 다해 가는구나 싶었다. 이럴 땐 그간의 행운에 감사하면서 다가올 현실에 대해 담담히 대처하는 마음 자세가 상책이다. 기범씨는 오늘의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

암빙벽등반 2025.05.29

천등산 '어느 등반가의 꿈' - 2025년 5월 24일(토)

'어느 등반가의 꿈' 루트는 천등산의 여러 바윗길 중에서 나의 뇌리에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인공암벽에서 리드 등반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던 시절에 다소 도전적이고 가슴 떨린 선등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해준 루트인 까닭이다. 내 블로그를 검색하여 2015년도 한글날에 올랐던 가슴 벅찬 등반기를 다시 읽어본 감회가 남달랐다. 엊그제처럼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그날의 등반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 돼버렸다. 세월의 무상함을 뒤로 하고, 오늘은 이 바윗길을 선등이 아닌 라스트를 맡으면서 새로운 악우들과 함께 등반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새로운 추억으로 각인될 것이다. 기범씨가 선등하고 승호씨, 현수씨, 나 순서로 등반했다. 등반선이 깔끔하지 못한 1피치는 생략하고, 2피치부터 올랐다. 10년..

암빙벽등반 2025.05.25

천등산 '세월이 가면' - 2025년 5월 23일(금)

동 트기 전 새벽 5시 무렵에 집을 나선다. 원정 등반을 위해 새벽길을 나서는 것이 참 오랜만의 일이다. 약속시간인 08시 30분이 안 되어 천등산 앞의 주차장에 도착한다. 곧이어 기범씨의 차가 오고, 진우씨와 유선배님이 동승한 차도 얼마 후에 도착한다. 네 사람이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괴목동천을 건너 '세월이 가면' 루트 등반에 나선다. 진우씨는 허리 수술을 받은 지 열흘 남짓 밖에 지나지 않은 몸으로 허리보호대를 착용한 상태로 오늘 등반에 합류한다. 아무리 현대 첨단 의학의 혜택으로 최소 절개 수술을 받았다고는 해도 진우씨의 등반 열정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기범씨가 선등으로 팀을 이끌고, 내가 쎄컨을 맡았다. 다음은 유선배님과 진우씨 순서로 총 6피치의 '세월이 가면'을 ..

암빙벽등반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