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486

영암 월출산 연실봉-매봉 [2024년 11월 9일(토)]

월출산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땅끝이 가까운, 서울에서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기에 더욱 그리운 것은 아닐까?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에 걸쳐 있는 월출산이건만, 지금은 폐교가 된 나의 모교인 나주시 소재의 초등학교 교가에도 "정기찬 월출산을 바라보면서"라는 가사가 등장했었다. 실제로 시야가 좋은 날에는 다른 산줄기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월출산의 삐쭉빼쭉한 하늘금을 나주의 고향집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친숙한 월출산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자주 올랐었다. 서울에서 거주한 세월이 어언 30년을 훌쩍 넘긴 탓에 이제는 선뜻 찾아가기 버거운 산이 되었지만, 여전히 월출산은 내 마음 한구석에 고향집처럼 굳건히 살아 숨쉬고 있는 추억과 그리움의 산이다. 간밤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치고, 새벽 ..

백운대 'SR 형제길' - 2024년 11월 3일(일)

'SR 형제길'은 백운대 남서벽의 가파른 암릉을 밑단부터 정상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이은 경로를 가진 바윗길이다. 이 바윗길 우측 사면에서 크랙을 따라 이어지는 '시인 신동엽길'과 나란히 진행하는 총 10피치의 'SR 형제길'은 완력을 요하는 오버행 인공등반 구간과 제법 짭짤한 슬랩 위의 크럭스 구간이 쉬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북한산 일대의 다른 어떤 바윗길보다 등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듯하다. 막상 등반을 해보니 인터넷 상에서 검색해 봐도 다수로 구성된 등반팀이 'SR 형제길'을 개운하게 완등했다는 등반기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를 감안하여 우리팀은 도선사주차장을 07시 30분에 출발해서 백운산장과 위문을 통과하여 'SR 형제길' 초입에 09시가 채 지나기 전에 도착했다...

암빙벽등반 2024.11.04

강촌 유선대 암장 - 2024년 11월 2일(토)

등반 계획이 제대로 꼬인 하루였다. 기범씨가 '춘클릿지'에서 외국인 2명의 가이드 등반에 나서기로 했었다. 은경이와 내가 동행하기로 하고, 강촌역에서 9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 셋은 7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8시 30분 전에 강촌에 미리 도착하여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평택 미군기지에서 근무한다는 2명의 외국인은 우여곡절 끝에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른바 노쇼(no-show)를 당한 기범씨의 실망감이 가장 컸을 테지만, 곁에서 이를 지켜보는 내 마음도 그리 편할 수는 없었다. 세 사람이 상의한 끝에 '춘클릿지'에 대한 생각은 깨끗이 잊기로 하고, 그 대안으로 '조각상 릿지'를 등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등반 출발점에 도착해 보니 이미 여러 명이 대..

암빙벽등반 2024.11.04

숨은벽 릿지 - 2024년 10월 31일(목)

노란색이나 갈색으로 물든 단풍도 예쁘긴 하지만, 꽃처럼 아름다운 단풍은 뭐니뭐니 해도 빨간색 계열로 물든 게 으뜸이다. 올 가을엔 설악산에 갈 기회가 없었지만, 오늘 북한산에서 만난 선홍빛깔 단풍은 설악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실내 암장에서 운동하다가 알게 된 이신부님과 함께 숨은벽 등반에 나서는 길이었다. 도선사주차장에서 하루재를 향해 올라가는 등로 상에서 정말 멋진 단풍을 만날 수 있었다. 화사한 붉은 빛깔로 물든 단풍나무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는 그 찬란한 자태는 가히 일품이었다. 사람이 만든 아무리 거대한 꽃다발일지라도 이 순간 자연 속의 단풍이 발하는 아름다움을 능가하지는 못 할 것이다. 하루재에서 백운산장까지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에서도 멋진 단풍이 심심찮게 반겨주어..

암빙벽등반 2024.10.31

파주 웅담리 암장 - 2024년 10월 12일(토)

등반하기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파주의 암장으로 향하는 길에 운전을 조심해야 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간간히 시야를 가린다. 적성면소재지의 카페에 들러 모닝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는다. 암장으로 향하는 짧은 오솔길을 걷던 중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운무에 휩싸인 맞은편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가을날의 신선함을 보여주는 아침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익숙한 암장에서의 등반은 여유로워서 좋다. 2암장의 '자유', '수호천사', '자성' 루트에서 몸을 풀고 'JK(5.10d)'를 두 번째 도전만에 만족스럽게 완등한다. 처음부터 퀵드로우세트를 볼트에 클립하면서 완등한 것이니 '핑크포인트'가 아닌 진정한 '레드포인트' 완등이다. 오후엔 3암장에서 등반했다. '선물(5.10c)'을 가볍게 완등하고, '여우비..

암빙벽등반 2024.10.13

인수봉 '인수B' - 2024년 10월 9일(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산인 한글이 창제된 것을 기념하는 한글날이다. 인수봉의 '인수B' 코스를 등반하기로 한다. 지난 9월 28일에 '인수A'와 '인수C' 코스를 모두 하루에 등반한 후, 올가을이 가기 전에 '인수B' 코스까지 올라보리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공휴일인 한글날이 주중 한가운데에 끼어 있으니 멀리 행차하기도 부담스러운 노릇이어서 자연스레 가까운 인수봉으로 등반지를 정하게 되었다. 사흘 전에도 인수봉에서 '비원' 코스를 올랐으니, 너무 자주 인수봉에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내친 김에 염두에 두고 있던 '인수B' 코스까지 등반해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대슬랩 좌측에서 출발하여 용암슬랩을 따라 오르는 것으로 등반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

암빙벽등반 2024.10.09

인수봉 '비원' - 2024년 10월 6일(일)

아침부터 잔뜩 흐린 하늘이었다. 다행히 비 예보는 없어서 등반하는 데엔 별다른 지장이 없을 줄 알았지만,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나의 몸상태도 흐린 날씨 만큼이나 좋지 않았다. 인수봉 동벽을 향해 어프로치 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기만 했다. 인기 있는 루트들은 모두 점령 당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팀은 상대적으로 주변이 한산한 '비원'길을 오르기로 했다. 기범씨의 선등으로 귀바위 아래의 종착점까지 네 마디로 끊어서 올랐다. 내가 쎄컨을 보고, 은경, 해진씨, 김선생님 순으로 등반했다. 5.11대의 고난도 슬랩 구간은 볼트를 밟지 않고는 도저히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지만, 궂은 날씨를 신경쓸 겨를 없이 오롯히 등반에 집중하면서 바윗길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구간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정..

암빙벽등반 2024.10.06

여주 예솔암 - 2024년 10월 4일(금)

아직까지 가보지 않은 새로운 암장을 물색하던 중 눈에 들어온 곳이 여주의 예솔암이다. 지류인 섬강이 본류인 남한강과 만나는 합수 지점에 위치한 예솔암은 일명 뚝바위로도 불리는 강변의 암벽에 개척된 암장이다. 여주시의 대표적인 둘레길인 '여강길' 2코스에 속하는 자산강변길을 따라 30분을 어프로치 하니 암장에 닿을 수 있었다. 소암은 그런대로 등반이 가능한 상태였지만, 중암과 대암 주변은 잡초가 무성하여 현재 상태에서는 도저히 등반할 수 없는 악조건이었다. 제초작업을 하지 않는한 안전하게 빌레이 볼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기가 어려울 듯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강변 풍광은 으뜸이었으나, 암벽등반을 하기 위해서 다시 찾고 싶은 암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암에서 등반이 가능한 4개의 루트를 등반한 후, ..

암빙벽등반 2024.10.05

북한산 노적봉 '반도A' - 2024년 10월 3일(목)

이틀 전,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 '국군의 날'에 영등포에서 대학 동창생들과 부부동반 점심 모임을 가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선한 가을 날씨가 좋아서 아내와 함께 청계천과 성북천을 길게 산책한 후, 신혼살림을 차린 딸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모처럼만에 친구들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감사함이 넘친 하루였으나,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소 쌀쌀한 바람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었던 까닭인지 어제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찾아들었다. 오늘의 등반을 염두에 두고 어젯밤에 초기 감기약을 섭취한 후 숙면을 취했더니 몸상태는 한결 나아졌다. 용암문에서 위문으로 가는 탐방로가 낙석으로 인해 통제된 후 다시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노적봉 등반을 계획했었다. 기범씨가 K등산학교 강사로 활동하면서 '반도A' 코스를 최근에..

암빙벽등반 2024.10.03

인수봉 '인수A변형, 인수C' - 2024년 9월 28일(토)

북한산 등산로가 평소의 주말보다 붐빈다는 건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 도래했다는 방증이다. 평상시에 산을 멀리하던 사람들도 등산객들 틈에 끼고 싶도록 유혹하는 자연 환경이 바로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 가을 하늘, 가을 단풍이다. 오늘 하루 도선사에서 백운대 정상에 이르는 주등산로는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백운대를 오르내리는 일반 산객들 뿐만 아니라 트레일런닝을 즐기는 크루들과 인수봉을 등반하고자 하는 클라이머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등산로를 가득 채웠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어서 아침 7시 30분에 우이동에서 악우를 만나 택시를 타고 도선사주차장에 도착했다. 곧바로 어프로치를 시작하여 8시 30분 즈음에 인수봉 대슬랩 앞에서 부지런히 장비를 착용한 후, 두 피치를 등반하여 재빨리 오아시스에 올랐다. ..

암빙벽등반 2024.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