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백운대 'SR 형제길' - 2024년 11월 3일(일)

빌레이 2024. 11. 4. 14:42

'SR 형제길'은 백운대 남서벽의 가파른 암릉을 밑단부터 정상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이은 경로를 가진 바윗길이다. 이 바윗길 우측 사면에서 크랙을 따라 이어지는 '시인 신동엽길'과 나란히 진행하는 총 10피치의 'SR 형제길'은 완력을 요하는 오버행 인공등반 구간과 제법 짭짤한 슬랩 위의 크럭스 구간이 쉬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북한산 일대의 다른 어떤 바윗길보다 등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듯하다. 막상 등반을 해보니 인터넷 상에서 검색해 봐도 다수로 구성된 등반팀이 'SR 형제길'을 개운하게 완등했다는 등반기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를 감안하여 우리팀은 도선사주차장을 07시 30분에 출발해서 백운산장과 위문을 통과하여 'SR 형제길' 초입에 09시가 채 지나기 전에 도착했다. 오늘의 등반팀은 기범씨, 김선생님, 은경, 나, 이렇게 4명이다.

 

기범씨가 45미터와 70미터 로프 두 동을 이끌고 선등한 후, 나, 은경, 김선생님 순서로 올랐다. 쎄컨을 맡은 나와 은경이가 거의 동시에 오르는 시스템이므로 2명이 등반하는 속도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재빠른 등반시스템을 구사한 것이다. 선등자인 기범씨가 09시 15분에 첫 피치 등반을 시작했고, 15시 10분에 라스트를 맡은 김선생님이 정상에 도착하셨다. 'SR 형제길' 전체 10피치를 4명으로 구성된 등반팀이 6시간 내에 깨끗이 완등한 건 무척이나 빠른 진행이 아니었나 싶다. 인수봉의 바윗길처럼 자유등반이 가능한 구간들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등반선을 선호하는 기범씨의 눈에는 부자연스런 인공등반 구간이 뒤섞인 'SR 형제길'의 등반 경로가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후등자인 내 입장에서는 백운대 정상을 향하는 직등 루트에 의미를 두고 개척했을 거라 생각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힌다면, 고생스러운 만큼 충분한 재미와 보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바윗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중앙의 파란색 라인이 'SR 형제길'이다. 그림엔 9피치까지 나와 있으나, 우리는 10피치 인공등반 구간을 거쳐 정상에 올랐다. 우측의 빨간색 라인은 '시인 신동엽길'이다.
▲ [07:56] 하루재를 넘어서 바라본 인수봉.
▲ [08:22] 백운산장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사흘 전 숨은벽 등반 때 보았던 화려한 단풍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09:15] 기범씨가 1피치 선등에 나서고... 45미터 거리의 슬랩 구간.
▲ 소나무가 있는 15미터 지점에 쌍볼트 확보점이 있다. 그 이후 구간이 쉽지 않은 슬랩 구간이다. 15m와 30m로 피치를 끊을 수 있지만, 우리는 45m로 이어서 한 피치로 등반했다. 중간 확보점에서 70m 로프를 한 번 내려야 했다.
▲ 1피치 후반부를 나와 은경이가 거의 동시에 등반 중인 모습.
▲ 2피치는 오버행 초입에서 우측의 손홀드를 잡는 게 관건. 나는 빠른 진행을 위해 퀵드로를 잡은 후에 우측으로 붙어서 손홀드를 잡았다.
▲ 확보점에 도착하면 나는 선등자인 기범씨 빌레이를, 은경이는 라스트인 김선생님의 빌레이를 동시에 보는 등반시스템이었다.
▲ 3피치는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어려운 슬랩. 좌측의 크랙으로 돌아서 올라야 했다. 볼트가 이어진 라인은 어딘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4피치는 그런대로 오를만한 슬랩이 이어진다. 밴드를 따르지 않고 볼트를 보고 직선으로 등반하면 까다로울 수도...
▲ 4피치 확보점을 올라서면 서벽을 횡단하는 릿지길의 테라스에서 쉬어갈 수 있다. 우리도 이곳에서 간식을 먹었다.
▲ 서벽밴드길이 지나는 곳에 5피치 출발점이 있다.
▲ 5피치 슬랩은 등반 고수인 기범씨에게도 쉽지 않은 구간이었다. 모카포트까지 들어있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릿지화로 이런 고난도 슬랩을 오르는 기범씨의 등반력은 놀라울 뿐이다. 나는 이 구간에서 암벽화를 신고도 볼트를 밟지 않을 수 없었다.
▲ 막상 붙어보니 홀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 짭짤한 슬랩의 5피치 위로 6피치와 7피치로 이어지는 크랙이 선명하게 보인다.
▲ 6피치는 인공등반 구간이다.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배불뚝이로 경사각이 쎄서 볼트따기도 힘든 구간이었다.
▲ 키 작은 이들은 슬링이나 레더를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구간이다.
▲ 오버행을 올라서는 것으로 시작하는 7피치도 만만치 않았다.
▲ 8피치는 크랙에서 빠져 나와 슬랩으로 올라야 하는 상단부가 크럭스였다.
▲ 9피치 초반부의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데에 선등자인 기범씨가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레더를 가져오지 않은 탓에 슬링으로 간이 레더를 만들어서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턱 너머에 볼트 하나만 있었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는데...
▲ 9피치 확보점에 서있는 모습이다. 9피치도 40m에 달해서 70미터 로프를 중간에 한 번 내려야 했다. 마지막 10피치는 우측 봉우리를 인공등반으로 오르는 경로이다. 확보점에서 좌측으로 가면 걸어서 백운대 정상으로 갈 수 있다.
▲ 인공등반이 귀찮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10피치 오버행 구간을 모두가 오르기로 했다.
▲ 마지막 확보점에서 내가 라스트로 등반 중인 김선생님의 확보를 보는 중이다.
▲ [15:10] 김선생님께서 장비를 회수하면서 마지막 턱을 넘어서기 직전이다.
▲ 모든 팀원들이 'SR 형제길' 정상에 도착하고...
▲ 안전하고 신속한 등반을 이끌어준 기범씨와 함께한 인증사진.
▲ 마지막 확보점에 매달려서 우리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니 까마득했다.
▲ 'SR 형제길' 정상에서 바라본 백운대. 우측엔 '김개남 장군길' 등반팀이 보였다.
▲ 'SR 형제길' 정상에서 클라이밍 다운해서 내려온다.
▲ 등반을 끝내고 장비를 해체하는 순간의 만족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 오후의 햇살이 남아 있는 가운데 'SR 형제길' 완등의 만족감을 안고 간식과 함께 한 기범씨표 커피타임이 행복이었다.
▲ 예전에 있던 철기둥과 쇠줄이 철거된 길을 조심해서 올라오면 드디어 백운대 정상이다.
▲ 일요일이라서 백운대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꽤나 길었다.
▲ 우리팀은 인수봉을 배경으로 백운대 인증사진을 남기고...
▲ 인수봉에서 하강 중인 클라이머들을 보면서 우리도 하산을 서두른다.
▲ 하루재엔 어느새 만추의 쓸쓸함이 찾아들었지만.... 김선생님께서 사주신 능이백숙과 기범씨가 중국에서 사온 명주가 함께 해서 즐겁고 풍성했던 뒷풀이까지.... 마음 맞는 악우들과 함께 청명한 가을날 하루를 알찬 등반으로 온전히 채웠다는 뿌듯함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