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땅끝이 가까운, 서울에서 머나먼곳에 떨어져 있기에 더욱 그리운 것은 아닐까?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에 걸쳐 있는 월출산이건만, 지금은 폐교가 된 나의 모교인 나주시 소재의 초등학교 교가에도 "정기찬 월출산을 바라보면서"라는 가사가 등장했었다. 실제로 시야가 좋은 날에는 다른 산줄기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월출산의 삐쭉빼쭉한 하늘금을 나주의 고향집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친숙한 월출산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자주 올랐었다. 서울에서 거주한 세월이 어언 30년을 훌쩍 넘긴 탓에 이제는 선뜻 찾아가기 버거운 산이 되었지만,여전히 월출산은 내 마음 한구석에 고향집처럼 굳건히 살아 숨쉬고 있는 추억과 그리움의 산이다.
간밤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치고, 새벽 4시에 기범씨와 은경이가 내차에 동승하여 서울을 탈출한다. 어둠을 뚫고 부지런히 달렸더니 08시 30분 즈음에 월출산 천황사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숙소에서 정성민 선생님을 비롯한 바자울산악회 회원분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광주 바자울산악회는 월출산 시루봉, 연실봉, 매봉 암장의 실질적인 터줏대감으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산악회이다. 정선생님과 기범씨의 인연으로 우리팀이 월출산 등반을 올 때마다 바윗길 안내와 함께 아늑한 숙소와 맛난 먹거리로 과분한 대접을 해주시는 바자울산악회 회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오늘은 연실봉을 거쳐 매봉 정상까지 오르기로 한다. 2020년 여름에 유서 깊은 시루봉 암장에서 등반했고, 2022년 11월엔 바자울산악회 주도로 막 재정비를 끝낸 연실봉 암장에서 등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년 전 연실봉 등반 중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오르지 못했던 매봉의 바윗길까지 올라보자는 것이 이번 등반의 목표이다. 연실봉은 '가을소풍' 루트를 통해 세 피치만에 정상에 올랐다. 슬랩에 손가락 한두 개가 들어가는 포켓홀드들이 많아서 즐거웠던 연실봉 정상까지는 바자울산악회팀이 우리팀 우측에서 나란히 등반했다. 두 팀이 정상에서 만나 커피타임을 함께 가졌다. 매봉 바윗길은 우리팀만 '악우길' 루트로 등반하여 세 피치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등반 흔적이 희미하여 크랙 사이에 낀 잡풀과 이끼 무더기, 정상 바로 아래의 산죽과 수풀 때문에 애를 먹어야 했지만, 처음 맛보는 바윗길을 끝까지 안전하게 등반했다는 만족감은 기대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