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영암 월출산 연실봉-매봉 [2024년 11월 9일(토)]

빌레이 2024. 11. 11. 11:22

월출산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땅끝이 가까운, 서울에서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기에 더욱 그리운 것은 아닐까?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에 걸쳐 있는 월출산이건만, 지금은 폐교가 된 나의 모교인 나주시 소재의 초등학교 교가에도 "정기찬 월출산을 바라보면서"라는 가사가 등장했었다. 실제로 시야가 좋은 날에는 다른 산줄기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월출산의 삐쭉빼쭉한 하늘금을 나주의 고향집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친숙한 월출산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자주 올랐었다. 서울에서 거주한 세월이 어언 30년을 훌쩍 넘긴 탓에 이제는 선뜻 찾아가기 버거운 산이 되었지만, 여전히 월출산은 내 마음 한구석에 고향집처럼 굳건히 살아 숨쉬고 있는 추억과 그리움의 산이다.

 

간밤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치고, 새벽 4시에 기범씨와 은경이가 내차에 동승하여 서울을 탈출한다. 어둠을 뚫고 부지런히 달렸더니 08시 30분 즈음에 월출산 천황사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숙소에서 정성민 선생님을 비롯한 바자울산악회 회원분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광주 바자울산악회는 월출산 시루봉, 연실봉, 매봉 암장의 실질적인 터줏대감으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산악회이다. 정선생님과 기범씨의 인연으로 우리팀이 월출산 등반을 올 때마다 바윗길 안내와 함께 아늑한 숙소와 맛난 먹거리로 과분한 대접을 해주시는 바자울산악회 회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오늘은 연실봉을 거쳐 매봉 정상까지 오르기로 한다. 2020년 여름에 유서 깊은 시루봉 암장에서 등반했고, 2022년 11월엔 바자울산악회 주도로 막 재정비를 끝낸 연실봉 암장에서 등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년 전 연실봉 등반 중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오르지 못했던 매봉의 바윗길까지 올라보자는 것이 이번 등반의 목표이다. 연실봉은 '가을소풍' 루트를 통해 세 피치만에 정상에 올랐다. 슬랩에 손가락 한두 개가 들어가는 포켓홀드들이 많아서 즐거웠던 연실봉 정상까지는 바자울산악회팀이 우리팀 우측에서 나란히 등반했다. 두 팀이 정상에서 만나 커피타임을 함께 가졌다. 매봉 바윗길은 우리팀만 '악우길' 루트로 등반하여 세 피치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등반 흔적이 희미하여 크랙 사이에 낀 잡풀과 이끼 무더기, 정상 바로 아래의 산죽과 수풀 때문에 애를 먹어야 했지만, 처음 맛보는 바윗길을 끝까지 안전하게 등반했다는 만족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 09시 즈음에 어프로치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아침안개가 자욱해서 조망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 천황사에서 구름다리로 올라가는 등산로에서 좌측에 연실봉이 자리한다.
▲ 좌측으로 '대팻집나무'라는 푯말을 보고 왼쪽 오솔길로 빠지면 연실봉 암장이 나온다. 천황사에서 5~6분 거리이다.
▲ 연실봉 암장에 도착해서 내려다 보니 운해가 펼쳐졌다.
▲ 연실봉 암장 개념도. 우리팀은 우측에 있는 '가을소풍', 바자울팀은 '소나기'루트로 나란히 올랐다.
▲ 기범씨가 '가을소풍' 첫 피치를 선등으로 출발하고 있다.
▲ '가을소풍' 1피치는 70미터 로프가 꽉 차는 길이였다.
▲ 첫 피치 등반 중에도 운해는 걷히지 않았다.
▲ 운해를 내려다 보면서 등반하는 맛이 일품이었다. 슬랩에 포켓홀드가 잘 발달되어 있어 특별한 재미가 있었다.
▲ 2피치는 긴 슬랩과 오버행 크랙 구간이 이어져서 등반의 묘미가 더욱 컸다.
▲ 우리팀 우측으로 올라오신 바자울산악회팀이 첫 피치 앵커에 모여 있는 모습.
▲ 2피치도 두 팀이 나란히 올랐다.
▲ 앵커에서 두 팀이 만나 정담도 주고 받으면서...
▲ 등반 중에 자꾸 풍경을 보게 된다. 2피치는 언더크랙을 잡고 오버행 구간을 넘어서는 동작이 특히나 재미 있었다.
▲ 2피치 앵커에 도착하니 어느새 운해가 걷히고 평야지대가 드러났다.
▲ 바자울산악회팀의 정선생님께서 등반 중인 모습.
▲ 내가 3피치 초반부를 올라서고 있다.
▲ 정상 바로 아래의 3피치 앵커에 우리팀이 모여 있는 모습.
▲ 연실봉 정상에 모두 모여 커피타임을 함께 가졌다.
▲ 연실봉 정상부를 걸어서 넘어가면 매봉 바윗길 출발점이 나온다.
▲ 연실봉 정상과 매봉 사이의 안부에서는 구름다리가 잘 보인다.
▲ 연실봉 정상부에서 바라본 매봉은 사뭇 위압적이었다. 수직거리 2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암벽이다.
▲ 매봉 우측 라인엔 고난도 루트들이 즐비하다. 연실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 매봉 암장 개념도. 우리는 좌측 하단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한늘색 라인의 '악우길' 루트를 선택했다.
▲ 수직벽과 오버행 구간이 많은 매봉인지라 배낭을 일반 등산로와 가까운 안부에 데포시켜 놓고 등반하기로 했다. 기범씨가 '악우길' 1피치 초반부를 등반 중이다.
▲ 우리가 올랐던 연실봉 정상이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 '악우길' 2피치 초반부를 등반 중이다. '악우길'은 대체로 크랙을 따라 이어지는 자연스런 등반선이 좋았는데, 최근 등반 흔적이 희미한 탓에 크랙에 잡풀과 이끼 무더기가 자라고 있어서 등반이 불편했다.
▲ 만만치 않은 기울기에 불편한 등반 환경의 크랙이었지만 기범씨는 멋진 동작으로 깔끔한 온사이트 완등을 보여주었다.
▲ 크랙의 그립감은 아주 좋았으나, 수직에 가까운 기울기 탓인지 생각보다는 완력이 필요한 구간이었다.
▲ 2피치는 깨끗이 청소만 되어 있었다면 명품 크랙 루트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크랙이 이어져 등반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 사선으로 진행하는 '악우길' 3피치는 여러모로 불편한 구간이었다. 초반부의 오버행 구간을 올라서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 초반부 오버행 턱을 넘어선 이후로도 사선으로 진행한는 루트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 '악우길' 2피치 앵커에서 내려다 보니 시루봉도 아주 작아 보였다. 사진 좌측의 오똑한 봉우리가 시루봉이고, 중앙 하단이 연실봉이다.
▲ 3피치 초반부의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데에 사지를 있는 힘껏 뻗어야 했다.
▲ 산죽숲 속에 있는 마지막 앵커이다. 선등자인 기범씨는 이 체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면 매봉 정상이 나온다.
▲ 매봉 정상에 도착해서 어프로치화로 갈아신는 순간의 기쁨이 컸다.
▲ 기범씨와 함께 매봉 정상에서 인증컷을 남기고.
▲ 셀카로 은경이까지 오늘의 등반팀 기념사진.
▲ 매봉 정상부엔 일반 등산로가 지난다.
▲ 가파른 계단을 따라 구름다리로 하산한다.
▲ 어릴 때 건넜던 옛 구름다리(1978년 건설)는 철거되고, 2006년에 지금의 튼튼한 새 구름다리가 건설되었다. 높이 120m로 국내 최고라는...
▲ 여러 차례 올랐던 월출산이지만 언제 와도 즐겁기만 한 곳이다.
▲ 데포시켜 놓은 배낭을 찾으러...
▲ 내려와서 다시 올려다 본 매봉 수직벽의 위용은 정말 대단하다. 언젠가 이 고난도 루트들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올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