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이 예정된 날에는 일기예보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예보는 시시각각 변하는 게 날씨 생방송이 따로 없다. 이틀 전에 확인한 바로는 오늘 날씨가 맑음이었는데, 어젯밤에는 오전 한때와 오후 시간에 비가 내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자칫하면 피치 중간에서 비 맞은 생쥐꼴이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안고 아침에 인수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냥 가벼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기범씨가 이끄는 수요등반에 참여하게 된 이번 봄 시즌 내내 변덕스런 주말과 달리 수요일 날씨만은 최고였는데, 그 운도 이제는 다해 가는구나 싶었다. 이럴 땐 그간의 행운에 감사하면서 다가올 현실에 대해 담담히 대처하는 마음 자세가 상책이다.
기범씨는 오늘의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 프로젝트로 계획했던 '청맥' 루트 완등을 다음으로 미루고, 남면의 단피치 루트에서 등반연습을 진행하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세 악우들이 담소를 나누며 커피타임을 즐기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슬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오후에 온다던 비 예보까지 서서히 사라졌다. 더이상 날씨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오롯히 등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써미트 슬랩'과 '영희야 놀자'에서 나의 부족했던 슬랩등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기범씨의 지도로 슬랩에서 안전하게 추락하는 방법과 '알파인 그리그리' 시스템을 익힐 수 있었던 시간이 매우 유익했다.
점심 후에는 '써미트 크랙'에 매달렸다. 슬랩으로 시작해서 이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크랙이 연습등반지로는 최적의 루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부의 사선크랙에선 오른손 썸업과 왼손 썸다운 손가락 재밍을 잘 써야 하고, 비교적 쉬운 중간부의 크랙에선 '여정' 루트에서 연습했던 동작을 제대로 취하면서 힘을 아껴야 했다. 크럭스 구간은 앵커 직전까지 이어진 상단 크랙이다. 벙어리성 크랙이라서 몸을 확실히 누이는 레이백 자세를 과감히 취해야 하고, 개스통 그립으로 양손을 좌우로 찢듯이 돌파해야 하는 구간에서는 완력이 필요했다. 첫째 판에서는 앵커 직전에서 한 번 매달리면서 스미어링과 재밍 기술을 모두 구사해서 오른발로 일어서는 동작을 익혔고, 둘째 판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만족스럽게 완등하는 기쁨을 누렸다. 뒷풀이 때엔 기범씨가 선물로 받은 나크(nak) 치즈와 구선생님이 쏘신 삼겹살을 함께 구워 먹는 풍성한 식탁을 즐길 수 있었다. '야크(yak)'는 수컷을 이르는 말이고, 암컷은 '나크(nak)'라고 부르니, '야크 치즈'는 '수탉 달걀' 같은 어색한 용어가 된다는 깨알 상식도 기범씨로부터 배웠다. 여러모로 감사하고 보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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