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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 등반여행 - 프롤로그] 카르페 디엠(Carpe diem)

암벽등반이 내 인생에 들어온 이후로 요세미티 원정 등반은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튼 채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소망이었다.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 그날을 상상하면서 미국 서부와 요세미티의 암벽등반지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첫 안식년 기간이던 2010년 6월에 나홀로 유럽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온 직후, 등산학교에서 암벽과 빙벽등반을 배웠다. 하지만 이듬해 등반 중 불의의 발목 골절상을 당하고 말았다. 수술 후 재활에 매진하던 시기인 2011년 8월에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미국 UCSB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는 출장길에 올랐었다. 출장 일정을 마치고 휴가를 내어 동료교수들과 함께 2박 3일 동안 요세미티 국립공원 일대를 자동차로 샅샅이 훑고 다녔다. 요세미티의 절경을 두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충..

무의도 하나개 해벽 - 2024년 6월 23일(일)

어제는 거의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파주의 웅담리 암장에서 등반은 하지 못하고 타프 안에서 악우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빗속의 낭만을 즐긴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오후에 빗속을 뚫고 감악산에 올랐던 것이 큰 위안을 주었다. 오늘은 요세미티 등반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윤길수 선생님팀과 함께 하나개 암장에서 등반하는 날이다. 어제의 피로가 덜 풀린 듯하여 무의도로 가는 길에 영종대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갔다. 살랑살랑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이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순도 높은 그 바람은 오래 전 그리스의 크레타섬 출장길에서 만난 에게해의 바람을 닮아 있었다. 개장을 한 하나개 해수욕장은 아침부터 나들이 인파로 붐볐다.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있는 시간이..

암빙벽등반 2024.06.24

감악산 우중 산행 - 2024년 6월 22일(토)

파주 웅담리 암장에서 한가롭게 단피치 등반을 즐기고 싶었다. 어제의 일기예보와 달리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인지라 베이스캠프를 구축할 때부터 비가림용 천막을 설치한다. 맘 편히 커피 한잔을 마시고, 등반을 시작하기 위해 안전벨트를 착용하려는 순간 후두둑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미리 대비를 잘한 덕택으로 로프를 비롯한 암벽등반 장비들이 비에 젖지 않아 다행이지 싶었다. 나뭇잎과 천막 위로 떨어지는 정겨운 빗소리를 들으며 세 악우들이 오손도손 등반 관련 이바구 나누는 시간이 즐겁다. 요세미티 원정을 준비하면서 요즘 틈틈이 읽고 있는 등반서적인 의 내용을 악우들에게 소개시켜 주면서 일독을 권하자 성배씨는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책을 구매한다. 이번엔 나만 다른 팀에 합류하여 미국 원정 등반을 ..

국내트레킹 2024.06.24

설악산 소토왕골 '산빛JK' - 2024년 6월 16일(일)

비가 오락가락 했던 어제 날씨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듯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하기 이를 데 없는 하늘 아래 소토왕골로 향한다. 비교적 이른 아침인 7시 40분 즈음에 암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수십 명이 등반 준비 중이었다. 우리팀은 아무도 없는 골짜기 맨 안쪽으로 이동했다. '산빛JK'와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루트를 등반할 계획이었다. 매 피치가 하드프리 암장의 단피치처럼 등반성 높은 '산빛JK' 루트 세 피치를 완료하고 하강했다. 이때까지는 암벽이 그늘져 있어서 좋았다. 간밤에 과음한 탓에 몸상태는 별로였다. 잠시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한 후에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루트 첫 피치에 붙었으나, 따가운 햇살을 온몸에 받으면서 확보점에 매달려 있다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하강하여..

국립등산학교 인공암벽장 - 2024년 6월 15일(토)

울산바위의 빼어난 절경을 원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북설악 신선대를 다녀온 후, 암벽등반 승인 건에 대한 체크인 요청 문자에 응하기 위해 설악동으로 이동했다. 암벽 이용 당일에 등반 해당 지역에 있어야 체크인 버튼이 활성화 된다는 안내문자 탓이다. 설악산 국립공원 권역 내에서 휴대폰 위치추적 시스템을 활성화 시켜야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할 수 있는데, 이 절차 또한 복잡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산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을 즐기고 오로지 등반에만 집중하기 위하여 휴대폰 전원을 꺼 놓는 습성이 있는 나 같은 부류들에겐 여간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소심한 복수를 하는 셈 치고 전화 상으로 비 때문에 등반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공단 직원들에게 체크인을 요청했다. 오후..

북설악 신선대(성인대) - 2024년 6월 15일(토)

새벽 4시에 악우들을 픽업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비가 내린다. 설악산 등반을 나서는 첫 발걸음부터 예상치 못한 비를 맞으니 살짝 황당한 기분이 든다. 어제의 일기예보 상으로 백두대간 너머의 설악산 권역엔 비가 오지 않을 거라 했으니 일말의 희망을 품고 악우들과 함께 양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오른다. 하지만 간간히 내리는 세찬 빗줄기에 희망은 여지없이 사라지고 인제내린천휴게소에서 커피와 도너츠로 조식을 대신하는 동안에도 비는 오락가락이다. 악우들과 상의한 끝에 오늘 계획한 설악산 유선대 '이륙공천' 등반은 접기로 한다. 플랜B로 생각해둔 일정 중 하나인 북설악의 신선대를 다녀와서 오후엔 국립등산학교의 인공암벽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화암사 진입로의 노면이 젖어 있으니 암벽등반은 위험할 것이란 생..

국내트레킹 2024.06.18

안성 누나집에서 - 2024년 6월 8일(토)

어머님 생신을 겸한 가족모임을 안성의 큰누나집에서 가졌다. 어머니 슬하의 우리 4형제 부부와 큰누나 아들 가족, 내 아들 부부가 모인 제법 왁자지껄한 모임이었다. 아내와 나는 오전에 일찍 도착하여 소나기가 오락가락 내리는 중간에 누나네 집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안성에서는 제일 큰 호수 인근에 자리한 동네라서 주변 경관이 좋았다. 수도권과 가깝고 제2경부고속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여기저기 파헤쳐진 흔적들이 아쉽기는 했으나, 오랜만에 농촌의 정취를 엿볼 수 있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한 큰누나 부부는 집안 정원 뿐만 아니라 텃밭과 농사 짓는 넓은 밭까지 잘 관리하고 있었다. 밀을 보고 보리와 구별하지 못하는 나를 돌이켜보면서 이제는 한낱 전원생활을 그리워하는 도시인일 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이야기 2024.06.10

노적봉 '님은 먼 곳에' 또는 '아미고스' - 2024년 6월 2일(일)

요세미티 원정 등반을 함께 가게 될 윤선생님 팀에 합류하여 노적봉에 올랐다. 아침 8시를 조금 넘긴 시간, 북한산성 등산로 입구에서 윤선생님, 기영형, 재창씨가 은경이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오늘 함께 등반할 가을씨와 진하씨는 약속장소를 잘못 인지하여 우이동으로 가는 바람에 뒤늦게 합류하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윤선생님은 노적봉 정중앙의 가장 긴 바윗길인 '별이 있던 그 자리(구 경원대길)' 루트를 글루인 볼트로 몸소 리볼팅 하신 분이다. 오늘은 당연히 그 길을 등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먼저 등반 중인 팀의 인원이 너무 많았다. 글루인 볼트로 가장 안전하게 정비된 바윗길인 만큼 노적봉에서 인기가 높을 수 밖에 없고, 이런 사실이 정작 우리팀에게는 좋지 않게 작용한 것이다. 할 수 없이 ..

암빙벽등반 2024.06.03

파주 웅담리 암장 - 2024년 6월 1일(토)

가까운 단피치 암장에서 여유로운 등반을 즐기고 싶었다. 토지 소유 기관의 출입금지 조치로 암장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감악산 등산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파주 웅담리 암장을 찾았다. 운 좋게도 숲이 우거져 그늘지고 고요한 암장이 그 어느 때보다 등반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등반공지를 하지 않았는데도 준수씨와 성배씨가 어젯밤에 따로따로 전화 연락을 주어 오늘 등반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나의 첫 박사 제자인 나영이가 대전의 연구소에서 올라와 참석한 간밤의 회식자리에서 술을 피할 수 없었던 내 몸상태를 걱정했으나 예상보다는 괜찮았다. 벤치에 드러누워 잠시 쉬는 시간이 편안했다. 준수씨가 살뜰히 챙겨온 모기기피제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성배씨는 처음으로 프로젝트 등반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

암빙벽등반 2024.06.03

북한산 칼바위 - 2024년 5월 31일(금)

기상 후에도 누적된 피로가 풀리지 않아 몸이 영 개운치 않다. 이럴 땐 산에 가야한다. 조식 후에 아내와 함께 북한산 칼바위에 올랐다. 5월의 마지막 날 무성한 숲의 모양새는 이미 한여름이다. 후드티셔츠와 색안경이 자외선으로부터 내 몸을 잘 보호해 주는 듯했다. 칼바위 정상에서의 조망은 으뜸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빛나고 있는 삼각산과 도봉산의 잘 생긴 봉우리들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대동문에서 소귀천계곡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탁족하며 쉬어가는 시간이 즐거웠다. 우이동에서 시원한 콩국수를 사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북한산이 곁에 있어 가능했던 치유의 순간들이 감사했다.

국내트레킹 2024.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