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무의도 하나개 해벽 - 2024년 6월 23일(일)

빌레이 2024. 6. 24. 11:33

어제는 거의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파주의 웅담리 암장에서 등반은 하지 못하고 타프 안에서 악우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빗속의 낭만을 즐긴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오후에 빗속을 뚫고 감악산에 올랐던 것이 큰 위안을 주었다. 오늘은 요세미티 등반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윤길수 선생님팀과 함께 하나개 암장에서 등반하는 날이다. 어제의 피로가 덜 풀린 듯하여 무의도로 가는 길에 영종대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갔다. 살랑살랑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이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순도 높은 그 바람은 오래 전 그리스의 크레타섬 출장길에서 만난 에게해의 바람을 닮아 있었다. 개장을 한 하나개 해수욕장은 아침부터 나들이 인파로 붐볐다.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있는 시간이라서 해변 모래사장을 통해 암장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윤선생님과 기영형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거의 모든 벽에 클라이머들이 진을 치고 있을 정도로 오늘의 하나개 암장은 만원이었다. 우리팀은 오전에 까치놀골과 샛골에서 등반하고, 오후엔 애스트로맨월에 매달렸다. 하나개 암장을 개척하신 윤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까치놀'은 노을의 한 종류를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석양을 받은 먼바다의 수평선에서 번득거리는 노을"이다. 개척 당시에 각 사이트와 루트의 명칭을 정할 때에도 암장을 개척한 자신들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지역사회와 우리의 전통을 존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셨던 윤선생님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먼저 '꽃놀(5.8)' 루트에서 리딩으로 몸을 푼 후에 기영형이 줄을 걸어 준 '붉은놀(5.11b)'을 톱로핑 상태로 등반하면서 낑낑대다가 크럭스에서 잠시 행도깅 중이었는데, 그 순간 왼쪽의 '아침놀(5.10a)'을 선등하던 기영형이 잡은 손홀드가 떨어지면서 제법 커다란 낙석이 발생했다.

 

워낙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라서 전모를 알 수는 없었으나, 위에서 내려다 본 내 시선에서는 큰 바윗덩어리가 빌레이어인 윤선생님 머리 위로 떨어져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다음 순간 동물적인 감각의 순발력으로 윤선생님께서는 낙석을 피해 확보 상태의 로프에 의지하여 벽쪽으로 펜듈럼하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치 헐리우드 액션영화에서 외줄에 의지해 고층빌딩의 유리창을 뚫고 침투하는 특공대원을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 천만다행으로 기영형이 손가락과 무릎에 경미한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은 것 말고는 주변의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내 확보를 보던 은경이의 말을 빌리자면 낙석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폭발할 때 나는 화약 냄새가 맡아질 정도로 큰 낙석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선생님과 기영형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큰 사고를 당했더라면 오늘 등반은 물론이고 요세미티 원정 등반 또한 물거품이 됐을 것이라 생각하니 여러모로 다행이지 싶었다.

 

▲ 영종대교 휴게소에서는 비 온 다음날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 휴게소 야외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던 순간에 불어준 부드러운 해풍은 그리스 크레타섬의 휴양지에서 맞이한 아침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 하나개 해수욕장은 이른 아침부터 피서객들로 붐볐다.
▲ 정오까지는 물이 빠지는 물때라서 해변을 통해 암장으로 갈 수 있었다.
▲ 암장으로 가는 중에 둘러본 동죽골. '동죽'은 조개의 일종이다. 동죽골의 루트 명칭은 모두 조개와 관련이 있다. 윤선생님께서는 개척 당시에 암장의 각 사이트 명칭을 정할 때 지역사회의 특성과 전통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려 노력하셨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 호룡골에도 이미 한 팀이 등반 중에 있었다.
▲ 우리가 도착했을 때 윤선생님께서 운영 중이신 홍대클라이밍센터 회원분들이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있었다.
▲ 인기 있는 사이트들은 이미 다른 팀의 차지가 되어 있어서 우리팀은 까치놀골에서 등반하기로 했다. '까치놀'은 석양의 수평선에 반짝이는 노을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나에게는 까치놀골에서의 등반이 처음이다.
▲ 기영형의 빌레이를 받으며 '꽃놀(5.8)' 루트에서 몸을 풀었다. '꽃놀'은 '꽃노을'의 준말로, 고운 색깔로 붉게 물든 노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 내가 '꽃놀'을 완등하는 순간, 윤선생님께서 '아침놀(5.10a)'을 등반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꽃놀'의 바로 좌측 디에드르형 크랙이 '저녁놀(5.8)' 루트이다.
▲ 맨 안쪽의 윤선생님께서 '아침놀' 루트를 등반하고 하강하실 때까지는 낙석이 발생하지 않았다.
▲ 윤선생님께서 '아침놀' 루트에 이어서 곧바로 '까치놀(5.11d)' 루트를 오르고 계신다.
▲ '까치놀' 루트는 톱로핑 상태로 붙어봤는데도 내게는 모든 구간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 '까치놀'의 마지막 크럭스 구간을 멋진 동작으로 완료하시는 윤선생님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 기영형이 '붉은놀(5.11d)' 루트를 등반 중이다. 형은 '붉은놀'에 줄을 걸어준 후에 '아침놀' 루트에 붙었는데, 등반 중간에 낙석이 발생했다.
▲ 낙석의 잔해들을 큰 것들만 모아봤는데, 그 크기에 다시금 소름이 돋는다.
▲ 낙석은 '아침놀' 루트 중간 부분인 풀이 자라고 있는 구간에서 발생했다. 사진 상의 둘째 퀵드로우 바로 밑 분분에 낙석이 떨어져나간 자리가 선명히 보인다.
▲ 낙석 직후에 아무런 사고가 없음을 확인하고 모두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클라이머로서 위험한 순간들을 수 없이 경험했을 윤선생님께서는 대수롭지 않은듯 말씀하셨지만, 속으로는 많이 놀라셨을 것이다. 낙석 순간을 위에서 목격한 나로서는 여러모로 다행스런 결말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등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빌레이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등반 중에는 항상 시선이 등반자에게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 낙석 사태가 일단락 되고 다시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다.
▲ 낙석이 발생했던 '아침놀' 루트를 나도 조심스레 올라보았다.
▲ 기영형이 서있는 자리로 떨어진 낙석이 바위에 부딪히는 순간 화약 냄새가 났다고 한다.
▲ 다시 평온을 되찾아 등반에 열중했다. 좌측이 까치놀골, 우측이 샛골 사이트이다.
▲ 점심 시간엔 갈매기를 구경하면서 윤선생님의 생생한 등반 관련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아주 유익했다.
▲ 오후엔 애스트로맨월에서 등반했다. '쎄비주(5.10a)' 루트 상단부를 오르는 중이다.
▲ '못살아(5.11a)' 루트를 등반 중이다.
▲ '생공사(5.10b)' 루트를 오르고 있다.
▲ '주목(5.10b)' 루트를 오르는 중이다.
▲ 바닷물이 서서히 차오르는 시간까지 애스트로맨월에서 열클했다. 밀물일 때는 거품이 생기고 바람이 불어온다는 걸 윤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 다른 팀들은 다 철수하고 우리팀이 맨 마지막까지 등반했다.
▲ '새솔(5.10a)' 루트를 마지막으로 장비를 철수했다.
▲ 기영형도 마지막까지 등반하고 장비를 철수했다.
▲ 아무런 사고 없이 열클하고 돌아서는 기분이 개운했다.
▲ 기영형과도 참 오랜만의 등반이었는데, 형이 크게 다치지 않아서 참 다행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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