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거의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파주의 웅담리 암장에서 등반은 하지 못하고 타프 안에서 악우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빗속의 낭만을 즐긴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오후에 빗속을 뚫고 감악산에 올랐던 것이 큰 위안을 주었다. 오늘은 요세미티 등반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윤길수 선생님팀과 함께 하나개 암장에서 등반하는 날이다. 어제의 피로가 덜 풀린 듯하여 무의도로 가는 길에 영종대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갔다. 살랑살랑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이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순도 높은 그 바람은 오래 전 그리스의 크레타섬 출장길에서 만난 에게해의 바람을 닮아 있었다. 개장을 한 하나개 해수욕장은 아침부터 나들이 인파로 붐볐다.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있는 시간이라서 해변 모래사장을 통해 암장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윤선생님과 기영형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거의 모든 벽에 클라이머들이 진을 치고 있을 정도로 오늘의 하나개 암장은 만원이었다. 우리팀은 오전에 까치놀골과 샛골에서 등반하고, 오후엔 애스트로맨월에 매달렸다. 하나개 암장을 개척하신 윤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까치놀'은 노을의 한 종류를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석양을 받은 먼바다의 수평선에서 번득거리는 노을"이다. 개척 당시에 각 사이트와 루트의 명칭을 정할 때에도 암장을 개척한 자신들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지역사회와 우리의 전통을 존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셨던 윤선생님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먼저 '꽃놀(5.8)' 루트에서 리딩으로 몸을 푼 후에 기영형이 줄을 걸어 준 '붉은놀(5.11b)'을 톱로핑 상태로 등반하면서 낑낑대다가 크럭스에서 잠시 행도깅 중이었는데, 그 순간 왼쪽의 '아침놀(5.10a)'을 선등하던 기영형이 잡은 손홀드가 떨어지면서 제법 커다란 낙석이 발생했다.
워낙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라서 전모를 알 수는 없었으나, 위에서 내려다 본 내 시선에서는 큰 바윗덩어리가 빌레이어인 윤선생님 머리 위로 떨어져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다음 순간 동물적인 감각의 순발력으로 윤선생님께서는 낙석을 피해 확보 상태의 로프에 의지하여 벽쪽으로 펜듈럼하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치 헐리우드 액션영화에서 외줄에 의지해 고층빌딩의 유리창을 뚫고 침투하는 특공대원을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 천만다행으로 기영형이 손가락과 무릎에 경미한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은 것 말고는 주변의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내 확보를 보던 은경이의 말을 빌리자면 낙석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폭발할 때 나는 화약 냄새가 맡아질 정도로 큰 낙석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선생님과 기영형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큰 사고를 당했더라면 오늘 등반은 물론이고 요세미티 원정 등반 또한 물거품이 됐을 것이라 생각하니 여러모로 다행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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