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791

인수봉 '취나드B-양지'길 - 2020년 9월 5일(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직후인 어제부터 여름철 무더위는 사라지고 바야흐로 등반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연이은 10호 태풍 하이선이 다음 주 월요일 즈음 한반도에 상륙할 것이라고 하니 무작정 초가을의 시원함을 반길 수만은 없는 심정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현재의 답답한 상황 속에서 두 태풍 사이에 낀 주말의 날씨 걱정을 덜었다는 것에 조금은 위안을 삼는다. 우이동에서 아침 8시에 만난 6명의 악우들이 기범씨의 승합차에 타고 도선사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미리 약속이나 된 것처럼 때마침 우리 바로 앞에서 자리를 뜨는 차가 있었다. 공사로 인해 가뜩이나 좁아진 도선사주차장에서 그야말로 재수 좋게 주차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암빙벽등반 2020.09.06

[독후감] 이상무 만화 <달려라 꼴찌>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내가 학창시절에 가장 좋아하던 운동 종목은 야구였다. 대학생 시절에도 같은 학과 친구들과 야구팀을 만들어서 다른 학교 팀들과 친선경기를 자주 가졌을 정도로 많이 좋아했었다. 키는 작았지만 포지션은 투수와 유격수를 오갔고, 3번 타자에 팀의 주장을 맡았었다. 야구를 그런대로 곧잘 해서 친구들은 나를 '독고탁'이라 불렀다. 이른바 대학시절 나의 첫 별명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야구팀 친구들 중에서 제일 키가 작았던 나에 대한 놀림과 보기보다 야구를 꽤 잘 한다는 애정어린 마음이 혼재되어 있었을테지만, 나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었다. 실제 만화 속의 독고탁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키가 유난히 작지만 아주 날쌔서 도루를 잘 하고 자신만이 던질 수 있는 마구를 간직한 투수이다. 당시엔 대학생들..

나의 이야기 2020.08.31

인수봉 '비원'길 - 2020년 8월 23일(일)

토요일인 어제는 오후에 번개와 천둥이 치는 요란스런 비가 내렸다. 북한산 만경대에서 낙뢰로 인한 사망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산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남의 일 같지 않은 사고를 당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으니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자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악우들을 만나기로 한 아침 8시 무렵에 우이동 경전철 입구를 빠져 나오면 눈앞에 보이던 인수봉이 보이지 않는다. 산 중턱까지 내려앉은 구름 속으로 인수봉 일대가 잠긴 것이다. 안개구름 속에서 어프로치를 끝내고 인수봉 '비원'길 출발점에 도착할 때까지도 주변 시야는 열리지 않았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아들녀석이 챙겨준 휴대용 선풍기를 가동시킨 순간 거짓말처럼 서..

암빙벽등반 2020.08.24

[설악산 등반여행 7 : 수바위] - 2020년 8월 19일(수)

K 등산학교 암벽반의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오후 늦게 등산학교 졸업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어서 무리한 등반은 피하기로 한다. 북설악의 화암사에서 가까운 수바위 정상에 올랐다. 수바위 암장은 다른 조들의 암벽반 기초교육이 진행되었던 곳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간의 등반여행을 정리할 수 있는 장소로 택한 곳이 바로 수바위 릿지 등반이다. 뜀바위 구간이 두 군데 있었지만 암벽화도 갈아신지 않고 오를만큼 부담 없는 코스였다. 울산바위가 지척이고 동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수바위 정상에서의 조망은 으뜸이었다. 화암사 경내를 산책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후 마지막 식사로 산채비빔밥을 함께 먹으며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준비했다. 이기범 선생과 나는 서울, 인호씨는 안양, 세령씨는 구미, 치득씨는 부산이..

[설악산 등반여행 6 : 울산바위 '안다미로'길] - 2020년 8월 18일(화)

어제는 울산바위 우벽의 '문리대길' 등반을 마친 후 장비를 좌벽의 '안다미로' 출발점 부근에 데포시켜 놓았다. 오늘은 자일을 메지 않으니 어프로치가 한결 더 가벼웠다. 바윗길 '안다미로'는 크랙 등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루트였다. 총 6피치 중 4피치 초반부의 슬랩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다양한 형태의 크랙들로 이루어져 있다. 2피치의 오버행 크랙은 개념도 상의 난이도인 5.10c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고, 3피치의 크랙도 밸런스 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최고 난이도인 5.11a로 표기되어 있는 5피치의 일자로 뻗어내린 크랙은 후반부가 크럭스였다. 중반부까지는 그런대로 양호한 손홀드 덕에 잘 올랐으나 후반부는 내 실력으로 도저히 돌파할 수 없었다. 우측으로 돌아서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설악산 등반여행 5 : 울산바위 '문리대'길] - 2020년 8월 17일(월)

울산바위는 화강암의 거대한 성채다. 하나의 바위로 불리기엔 너무나 웅장하다. 설악산에서 떼어내어 하나의 독립적인 바위산으로 대우해 주어야만 그 훌륭한 풍모에 어울릴 듯하다. 울산바위에서 가장 고전적인 루트로 알려진 '문리대'길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 흔들바위 위부터는 제법 가파른 산길이어서 비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장비를 착용하는데 주위에 날파리 같은 벌레들이 우리를 귀찮게 한다. 인호씨는 펄쩍펄쩍 뛸 정도로 벌레가 유독 인호씨에게만 몰린다. 개미처럼 따끔거리게 피부를 물어뜯는 벌레들도 젊은 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살짝 놀려준다. 벌레들 때문에라도 빨리 지면을 떠나서 벽에 붙어야 할 지경이다. 이기범 선생의 '문리대'길 등반에 관한 브리핑이 있은 후에 곧바로 출발한다. 내가 쎄컨이고, 치득씨..

[설악산 등반여행 4 : 미륵장군봉 '미륵2009'] - 2020년 8월 16일(일)

외설악에서 3일 연속 등반했으니 오늘은 내설악의 미륵장군봉 암벽을 맛보기로 한다. 설악동 숙소에서 독수리 5형제가 내차에 탑승하여 미시령 터널을 지난다. 내설악 장수대 주차장까지 가는 40여분 동안 마치 가족끼리 짧은 여행을 떠나는 듯한 작은 설레임이 느껴진다. 3일 동안 5명이 계속 붙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형제애 비슷한 연대감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엔 이미 K 등산학교의 다른 조들과 전국에서 모인 클라이머들이 미륵장군봉의 바윗길 곳곳에 붙어 있었다. 우리팀은 맨 우측 벽에 있는 '미륵2009' 루트를 재빠르게 등반한 후 하강하여 시원한 물이 흐르는 석황사 계곡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에는 바로 앞의 신선벽 암장에서 하드프리 루트 두 곳을 등반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용대리에서..

[설악산 등반여행 3 : 장군봉] - 2020년 8월 15일(토)

설악동 숙소에서 아침 7시 즈음 장군봉을 향해 출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밖에는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다. K 등산학교 1반의 다른 조들도 역시나 등반지로 출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내에서 장비 사용법을 교육하는 조들도 있다. 우리보다 이틀 후인 어젯밤에 도착한 2반 35명은 오늘이 첫날이다. 레벨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2반이 먼저 빗속을 뚫고 소토왕골 암장으로 출발한다. 이기범 선생은 2반이 대기 중인 비선대 식당의 상황을 전화로 살펴보는 중이다. 아무래도 등반을 포기해야 할 듯하여 플랜 B에 대해 상의하던 중 빗줄기가 약해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출발을 결정한다. 답답한 실내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는 비를 맞더라도 산에 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예정보..

[설악산 등반여행 2 : 적벽] - 2020년 8월 14일(금)

설악산 적벽은 비선대 계곡에서 올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난다. 나 같은 보통 수준 이하의 클라이머들은 눈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거대한 오버행의 적벽 앞에서 오르고 싶다는 도전 의식보다는 과연 내가 저 벽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게 마련이다. K 등산학교 암벽1반 1조의 첫 등반지로 적벽이 결정되었을 때 적잖은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다. 적벽의 날등을 타고 오르는 삼형제길 릿지를 등반한 경험은 있지만, 오버행 구간이 대부분인 '자유2836'과 '채송화 향기' 루트를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이어지는 일반 등산로를 따라서 적벽에 다가서는 동안 5명이 함께 줄을 묶게 되는 멀티피치 등반에서 최소한 민폐는 끼치지 말자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했다. '자유2836' 루트는..

[설악산 등반여행 1 : 소토왕골 암장] - 2020년 8월 13일

여름휴가를 대신한다는 명목 하에 K 등산학교에서 7박 8일 일정으로 설악산 일원에서 진행하는 암벽반 교육에 참가하기로 했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전례 없는 온라인 강의를 감당해내느라 지난 학기 전체를 온통 정신 없이 분주하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여름방학 기간 중에도 해외출장을 가지 못한 상태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주말에 악우들과 함께 바윗길을 오르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런 나의 사막 같이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오아시스처럼 시원한 청량감을 안겨 준 것이 바로 이번 설악에서의 암벽반 교육이었다. 국내에서는 알아주는 K 등산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암벽등반에 대해서 새로운 무엇을 더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