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대신한다는 명목 하에 K 등산학교에서 7박 8일 일정으로 설악산 일원에서 진행하는 암벽반 교육에 참가하기로 했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전례 없는 온라인 강의를 감당해내느라 지난 학기 전체를 온통 정신 없이 분주하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여름방학 기간 중에도 해외출장을 가지 못한 상태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주말에 악우들과 함께 바윗길을 오르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런 나의 사막 같이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오아시스처럼 시원한 청량감을 안겨 준 것이 바로 이번 설악에서의 암벽반 교육이었다.
국내에서는 알아주는 K 등산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암벽등반에 대해서 새로운 무엇을 더 배우고 싶다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설악산의 바윗길을 여러 날 동안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으리라는 부담 없는 마음가짐으로 참가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일주일 내내 암벽등반을 즐긴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우선은 변덕스런 설악의 여름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었다. 우리보다 앞선 일정으로 진행되었던 H 등산학교의 교육 때는 비 때문에 거의 설악산에 들어가지도 못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우리 조를 이끈 선생님과 같은 조에 편성된 네 학생의 하모니가 완벽에 가까웠다. 선생님을 포함한 5명이 암벽을 오를 땐 거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우리들 스스로를 용맹스런 '독수리 5형제'라 불렀다. 그야말로 설악산 바윗길에서 보낸 지난 일주일은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설악동에 자리한 숙소에서 5시 30분 기상, 6시 조식, 7시 등반지 출발이라는 루틴이 일주일 동안 가동되었다. 암벽반은 경험자와 초보자를 구분하여 6개 조로 편성되었다. 경험자들은 첫날 소토왕골 암장으로 이동하여 오전에 레벨 테스트를 받은 결과에 따라 조를 배정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마음 속으로 원하던 이기범 선생이 이끄는 1조의 4명 속에 포함될 수 있었다. 안양에서 실내암장을 운영하고 있는 인호씨, 부산에서 20년 이상의 등반 경력을 갈고 닦은 치득씨, 구미에서 15년 이상의 요가 강사 경력과 함께 K 등산학교의 정규반 최우수 학생으로 선정된 바 있는 세령씨와 같이 쟁쟁한 실력파 클라이머들이 우리 1조에 배정 되었다. 등반의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난 조원들 틈에서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나이를 핑계 삼아 큰형님 노릇이나 잘 하자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조편성 이후에 '낙화유수'길 두 피치를 5명이 함께 등반하는 것으로 설악에서의 꿀잼 클라이밍의 서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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