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직후인 어제부터 여름철 무더위는 사라지고 바야흐로 등반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연이은 10호 태풍 하이선이 다음 주 월요일 즈음 한반도에 상륙할 것이라고 하니 무작정 초가을의 시원함을 반길 수만은 없는 심정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현재의 답답한 상황 속에서 두 태풍 사이에 낀 주말의 날씨 걱정을 덜었다는 것에 조금은 위안을 삼는다. 우이동에서 아침 8시에 만난 6명의 악우들이 기범씨의 승합차에 타고 도선사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미리 약속이나 된 것처럼 때마침 우리 바로 앞에서 자리를 뜨는 차가 있었다. 공사로 인해 가뜩이나 좁아진 도선사주차장에서 그야말로 재수 좋게 주차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출발부터 잘 풀렸으니 오늘 등반이 잘 될 듯한 예감이다.
하루재로 향하는 등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산객들로 붐빈다. 거리두기 2.5단계 조치로 인해 갈 곳이 줄어든 사람들이 찾을 곳은 산이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집에서 가까운 북한산에 모여든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인수봉 바윗길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말 많은 클라이머들이 거의 모든 루트에 붙어 있었던 하루였다. 동면의 심우길부터 차례대로 이어오고 있는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의 오늘 순서는 '취나드B'와 '양지'길이다. 인수봉에서 아주 인기 높은 루트 중의 하나인 '취나드B'길은 6년 전 여름철에 선등으로 오른 이후 처음이다. 그리 어렵지 않은 난이도에 크랙이 대부분인 자연스런 등반선이 마음에 드는 루트라서 그런지 오늘은 후등인데도 등반의 묘미를 맛볼 수 있었다. 기범씨, 동혁씨, 은경, 나, 대섭, 정길씨 순서로 등반했다. 점심 이후에 오른 '양지'길 2피치와 3피치의 크럭스는 여전히 버거워서 내가 자유등반 방식으로 깔끔히 오를 수 있는 난이도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었다.
두려움과 설레임의 경계를 생각하게 된 등반이었다. '취나드B'길은 내가 선등으로 오를 수 있는 루트라서 재미는 있었지만 두려움도 없었고, 별다른 설레임 또한 없었다. 한편, '양지'길 2피치의 난이도 5.11a 구간은 난공불락처럼 여겨졌고, 3피치에서는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내 등반 능력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면에 깔린 일종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건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도전의식을 갖고 치밀하게 잘 준비한다면 두려운 것도 어느 순간 가슴 설레이는 대상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인수봉의 모든 바윗길을 대할 때마다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앞서는 순간은 언제 쯤일까? 과연 그날이 오기나 할까?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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