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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 남면 (2020년 6월 6일)

인수봉 남면의 '써미트 슬랩', '영희야 놀자', '철수야 놀자' 루트에서 슬랩 등반을 연습하고, '써미트 크랙'에서 크랙 등반 동작을 익힌 후 점심을 먹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바위에 붙어 있을 때는 더웠으나, 나무 그늘 아래로 내려와서 확보를 볼 때는 더없이 상쾌하고 시원했다. 주변에 피어 있는 라일락꽃의 향기가 그윽했고, 만개한 함박꽃의 단아한 자태가 아름다웠다. 오후엔 '꾸러기들의 합창', '학교B', '하늘' 루트에 매달렸다. 은경, 기범씨, 동혁씨, 정길씨가 함께 등반했다. 내몸은 출장이 낀 바쁜 일정을 보냈던 것과 실내암장에서 운동하지 못했던 티를 여실히 드러냈다. 무거운 몸과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듯한 등반실력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에도 꾸준히 노력..

암빙벽등반 2020.06.07

인수봉 동면 '민남-영(0)-의대-인덕' (2020년 6월 3일)

인수봉 동면의 오아시스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대슬랩을 한 피치로 올라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좌측 상부에서 대슬랩에 진입하여 70미터 자일 한 동으로 기범씨가 선등하고 내가 뒤따랐다. 첫 피치 확보점이 있는 턱을 넘어서서 완만한 부분은 동시등반 방식으로 진행함으로써 중간 피치 없이 빠르고 안전하게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아무리 평일인 수요일이라지만 평상시와 달리 주변에 우리 두 사람 외에는 등반자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서 이상할 정도였다. 어젯밤에 전해들은 지석형의 갑작스런 부상 소식에 황망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으나, 인간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인정하고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지석형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이겨내고 등반에..

암빙벽등반 2020.06.04

선인봉 '경송A-진달래-청암' (2020년 5월 30일)

젊은 친구들이 하는 말 중에 "라임을 잘 맞춘다"라는 표현이 있다. 라임(rhyme)은 원래 힙합 용어로 가사의 전달성을 높이기 위해 운율을 맞추는 것을 일컫는다. 영어에서는 단어 B의 발음을 잘 모르는 경우에 익숙한 A처럼 발음하면 된다는 뜻에서 "rhyme A with B" 형식으로 자주 쓰인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문이 "You can rhyme ‘girl’ with ‘curl’"이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을 재치 있게 짜맞추면 한층 더 즐거울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요즘 라임 맞추는 것에 재미를 붙인 듯하다. 오늘 등반의 뒷풀이 자리에서 오고 간 수많은 대화 중에는 정길씨가 말한 "암벽은 완벽"이 압권이었다. 타이밍과 라임을 제대로 맞춘 걸작이기에 선인봉에서 함께 줄을 묶고..

암빙벽등반 2020.05.31

슬기로운 클라이머 생활

요즘 가끔 보는 드라마 중에 이 있다. IPTV에서 처음으로 정주행 했던 드라마가 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들었던 제작진의 작품이라 하여 더욱 신뢰가 가는 '슬기로운' 시리즈이기에 나의 눈길을 끌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드라마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슬기로운"이라는 단어를 지금의 내 생활에 적용하여 곱씹어 보고 싶을 뿐이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일상의 많은 부분이 변해버린 작금의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풍요로운 삶의 첫걸음이다. 밥벌이의 엄중함 때문에 직장생활은 슬기롭게 감당할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거의 모든 교육활동이 온라인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버헤드로 인하여 내가 일..

나의 이야기 2020.05.27

인수봉 남벽 - 2020년 5월 23일

인수봉 남면의 여정길 앞에 베이스캠프를 차려 놓고 여러 루트에서 하드프리 스타일로 다양한 등반 동작을 익혔다. 짧은 한 피치짜리 루트인 '짬뽕길'에서 오름짓을 시작했다. 다음으로 붙은 '여정길'은 여전히 힘들었다. 지난 목요일에는 몸이 풀린 오후 시간에 붙은 까닭에 '여정길'에서 어느 정도 괜찮은 움직임을 보였었다. 하지만 어프로치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붙은 '여정길'은 또 달랐다. 두 번째 등반에서는 로프 테이크 없이 올랐다는 만족감은 있었으나, 여전히 완벽한 동작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제는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완력을 키우고 등반 자세를 익히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기범씨의 등산학교 애제자인 홍현씨가 처음으로 함께 줄을 묶어서 더욱 뜻깊은 하루였다..

암빙벽등반 2020.05.24

인수봉 서면 '천방지축' - 2020년 5월 21일

지난 2주간의 주말 날씨는 클라이머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주말만 되면 흐리고 비가 내리는 바람에 자연암벽에서 온전한 등반을 즐길 수 없었던 것이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평일인 목요일에 등반 약속이 잡혔다. 아침에 경전철역을 빠져나온 직후에 우이동 도선사 입구에서 올려다 본 인수봉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인수봉의 여러 바윗길들이 확연히 보일 정도로 화창한 날씨가 반겨주었다. 경미한 목디스크 증세로 찌뿌득한 몸이었지만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기범씨와 둘이 만나서 인수봉 남면으로 접근하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평일이라서 등반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제법 많은 클라이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남벽의 '여정길'은 이미 다른 팀이 줄을 걸어놓고 연습 중인 상태였다. 우리는..

암빙벽등반 2020.05.21

불곡산 독립봉 암장 - 2020년 5월 2일

산과 자연은 인간이 정복하거나 통제할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불곡산의 독립봉 암벽에 붙어서 낑낑댈 수 밖에 없었던 순간의 무력감은 자연 암벽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지난 4월 15일의 국회의원 선거날에 처음으로 등반했던 독립봉 암벽을 불과 보름만에 다시 찾았건만 오늘의 바위 상태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처음 왔을 때 톱로핑 방식으로 즐겁게 연습하듯 등반했던 '샘내(5.10a, 18m)' 루트에 줄을 걸기 위해 올라가는 기범씨의 동작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바윗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이 암벽 표면을 적시고 있어서 홀드의 상태가 엉망이라고 했다. 오히려 고난도 루트를 오를 때보다 더 조..

암빙벽등반 2020.05.02

선인봉 '표범-박쥐' (2020년 4월 30일,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 오신 날이다. 예년 같으면 산 입구가 불자들로 넘쳐났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모든 종교행사들이 간소화 되는 것에서 불교가 예외일 수는 없다. 악우들을 만나기로 한 도봉산 입구의 광륜사 부근도 평소의 공휴일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석굴암 뒤로 올라가서 선인봉 표범길 아래에 아지트를 정하고 '푸른길' 첫 피치 슬랩에서 톱로핑 방식으로 몸을 푼 후에 '표범길' 등반에 나섰다. 우리팀은 기범씨가 선등하고 지석형, 동혁씨, 정길씨, 은경 순서로 올랐다. 나는 라스트를 맡았다. 기범씨의 등산학교 연수반 제자인 동혁씨는 오늘 처음으로 같이 줄을 묶었다. 직상과 사선 크랙을 따라 이어지는 고전적인 등반 루트를 보이는 표범길은 보기보다 힘들었다. 표범길 4피치 등반을 마치고 하강하여 '박쥐길'..

암빙벽등반 2020.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