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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칼바위에서 정릉계곡으로 - 2021년 8월 7일(토)

계절과 시간의 흐름처럼 어김 없는 것이 있을까? 아직도 한낮엔 폭염이 지속되고 있지만 어느덧 입추가 되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바람이 서늘하여 오늘이 입추란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어프로치가 길었던 설악산 등반의 후유증인지 경미한 허리통증이 감지되어 암벽등반은 쉬기로 했다. 가볍게 챙겨서 북한산 둘레길로 접어든 후 칼바위 능선 동쪽의 허리길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유유자적하며 그늘진 숲길을 걸었다. 적당한 쉼터를 만나면 쉬어 가고 전망 좋은 곳에서는 시원한 바람 맞으며 뭉개구름 피어 오르는 하늘과 그 아래에 놓인 산줄기의 풍광을 즐겼다. 새로 산 릿지화의 성능을 테스트 한다는 명목으로 쉬운 볼더링도 해봤다. 칼바위 정상부의 전용 쉼터를 들러 산성길에서 대성문을 통과하여 정릉계곡으로 하산했다. 냉..

국내트레킹 2021.08.07

설악산 십이선녀탕계곡 - 2021년 8월 3일(화)

햇살 따갑고 무더운 여름 한낮에 내설악의 남교리에서 십이선녀탕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복숭아탕까지 왕복하는 여유로운 산책을 다녀왔다. 이번 여름에 이보다 더 좋은 피서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풍부한 수량의 맑은 계곡물이 힘차게 흐르고 신선한 공기와 시원한 골바람이 불어주는 그늘진 숲길을 걷는 동안 제대로 된 삼림욕을 즐긴 듯한 만족감이 있었던 것이다. 전날의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솜다리의 추억'길 암벽등반의 피로를 풀기 위해 동해안의 한적한 해변길을 걸어볼 생각이었다. 서핑족들이 자주 찾는 송지호 해변과 화진포해수욕장 주변의 산책로를 탐색했으나 뙤약볕에 노출된 그 길은 5분 이상 걷기가 힘들었다. 대안으로 진부령 고개를 넘어서 남교리의 십이선녀탕계곡을 찾아가자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아주 오래 전에..

설악산 토왕골 '솜다리추억' - 2021년 8월 2일(월)

산을 좋아하는 클라이머들의 여름 휴가지는 대자연 속의 바윗길일 수 밖에 없다. 설악산 토왕골에 있는 등반이 허가된 바윗길들 중에서 그간 유일하게 오르지 못했던 '솜다리추억'길을 한적한 평일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날씨가 변수이기는 하지만 설레는 가슴을 안고 월요일 새벽 5시에 서울을 벗어난다. 서울양양고속도로의 내린천휴게소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간밤에 흠뻑 내린 비에 젖은 주변 산야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 본다. 플랜B를 고려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싹튼다. 일단 설악동에 도착해서 다음 일정을 결정하기로 마음 먹고 차를 출발하여 장장 11km에 이르는 인제양양터널을 통과한다. 백두대간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의 동쪽과 서쪽 날씨가 딴판이다. 동해 바다가 지척인 백두대간 동쪽의 날씨는 맑게 ..

부채

여름철이면 내 곁에 머물게 되는 접이식 부채가 두 개 있다. 정확히 언제 내 손에 들어왔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신혼 시절 무렵에 장인어른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기에 근 30년 가까이 내가 사용하고 있는 보기 드문 물건이다. 장인정신이 투철한 어느 부채 공예가가 만들었을 부채살은 지금도 튼튼하고 견고하다. 원래 한지의 품질이 좋은 것이어서 그랬는지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부채의 종이를 교체하지 않았다. 옛 선비들은 단오 때에 부채의 종이를 새로 붙이는 것으로 다가올 여름을 대비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 오랜 세월 동안 반듯하게 버텨준 내 부채의 한지가 신통하기만 하다. 내게는 이런 물건이 진정한 명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직장에서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집에서 사용하고 있다. 요즘도 외출할 때..

나의 이야기 2021.08.01

파타고니아 다큐멘터리 Rotpunkt

암벽등반에서 자유등반 방식 중에 '레드 포인트'가 있다. '붉은 점'이란 뜻의 이 용어가 새로운 등반 사조인 자유등반 시대를 열어 젖힌 혁명적인 단어였다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는 잘 보여주고 있다. 크리스 샤마가 스페인 마르갈레프에 개척한 루트인 '퍼펙토 문도(5.15c)'를 세계 최초로 완등한 알렉스 마고의 도전 과정과 독일의 암벽등반 성지라 할 수 있는 프랑켄유라 지역에서 태동한 자유등반의 역사를 연결하여 함께 조명한 이 다큐멘터리는 두고 두고 다시 볼만한 가치가 있는 명작 중의 명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이 클라이밍 다큐를 보고 나는 이전에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레드 포인트'의 유래와 거기에 담겨 있는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레드 포인트'의 창시작인 쿠르트 알베르트의 혁신적인 아..

폭염 속의 거인암장 - 2021년 7월 31일(토)

7월의 마지막 날이다. 밤에도 기온이 썹씨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열흘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른바 초열대야 현상이 계속되는 시절에 클라이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등반지는 비슷한가 보다. 거인암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본 하루였다. 대규모 산악회들이 피서 등반지로 접근성 좋은 거인암장을 택한 까닭이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벌써부터 1암장과 3암장은 초만원 상태였다. 우리는 그나마 한적한 2암장에서 유일하게 완등하지 못한 'JK(5.10d)' 루트를 프로젝트 삼아 집중해서 끝내보자는 단순한 계획을 세웠다. 오전엔 2암장이 한산해서 그런대로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다. 먼저 '성주'와 '성봉'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JK'에 붙어서 내게 맞는 홀드와 동작을 찾는 연습을 했다. ..

암빙벽등반 2021.08.01

인수봉 '여명-비원' - 2021년 7월 25일(일)

기범씨와 내가 둘이서 '비원'길 두 피치를 가볍게 등반하고 하강한 직후에 집안 일로 뒤늦게 출발한 은경이가 합류했다. 양평의 소리산 암장에서 피서등반을 즐겼던 어제의 악우들이 인수봉 앞에서 다시 뭉친 것이다. 은경이의 합류로 완전체가 된 것을 기뻐하며 기범씨와 내가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로 시작하는 향토예비군의 노래를 장난삼아 불러 보았다. 소나무 그늘 아래로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이라는 동요 구절이 저절로 떠오르는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맛나게 먹고 본격적인 등반에 나섰다. '취나드B'길 출발점에서 크랙을 따라 셋이서 재빠르게 단 피치로 오아시스에 올랐다. 일요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팀 외에는 아무도 없는 오아시스가 오히려 낯설었다. 캐리(CARI, Climbin..

암빙벽등반 2021.07.26

양평 소리산 삼형제바위 - 2021년 7월 24일(토)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대비로 외출을 자제하고 조용히 방구석에 쳐박혀 지내라는 협박성 안내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날라오는 요즘이다. 이러한 문자 공해가 아니라도 에어컨에 의지하여 답답한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냉방병 비슷한 무기력증이 느껴진다. 주말 등반을 계획해 보려는데 어프로치가 긴 등반지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물가에 있어서 피서를 겸할 수 있을 듯한 양평의 소리산 삼형제바위 암장을 처음으로 찾아가 보기로 한다. 아침 7시에 기범씨와 은경이가 내차에 동승하여 서울을 빠져 나온다. 관공서에서 마구잡이로 날리는 안내문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도로는 피서철 차량들로 붐빈다. 경춘가도를 달리다가 청평대교를 건너서 한적한 2차선 도로에 접어드는 순간부터 비로소 도시를 탈출..

암빙벽등반 2021.07.26

여름 한낮의 거인암장 - 2021년 7월 17일(토)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거인암장에서 열심히 등반을 즐길 수 있었던 뜻깊은 하루였다. 아침 7시 반에 서울을 출발하여 암장의 첫 손님이 되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3암장 앞에 모기향을 피운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벌레 기피제를 온몸에 뿌리는 것으로 여름 등반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2암장의 '자유(5.10a)' 루트에서 첫 오름짓을 할 때는 직사광선에 달궈진 바위 표면을 만지는 것이 따가울 정도였다. 곧바로 강렬한 태양빛을 피할 수 있는 우측의 응달진 암벽으로 자리를 옮겼다. 큰 참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성주(5.10b)'와 '성봉(5.10c)' 루트를 오를 때는 상대적으로 시원하여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다. 햇빛에 노출된 암벽을 체험한 직후여서 그늘진 루트의 고..

암빙벽등반 2021.07.18

강촌 유선대 암장 - 2021년 7월 10일(토)

일기예보가 하룻밤 사이에 급변했다. 지난 목요일에 확인한 춘천시 지역의 강수확률은 토요일 하루 종일 50% 미만이었다. 날씨에 대한 별 걱정 없이 강촌 유선대 암장에서의 등반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당일 새벽 6시, 집을 나서기 직전에 확인해본 날씨는 비가 올 가능성이 70~80%로 높아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모모, 기철, 코헤이를 차례로 픽업하여 강촌으로 향하는 경춘가도를 달리는 동안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대성리 부근을 지날 때는 시야가 흐리고 도로가 잠겨 천천히 운행해야 할 정도로 장대비가 쏟아졌다. 강선사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엔 다행스럽게도 비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우선 암벽의 상태를 파악한 후에 플랜B를 상의해 보기로 했다. 우산만 챙겨서 맨 몸으로 올라간 유선대 암장은 ..

암빙벽등반 2021.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