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범씨와 내가 둘이서 '비원'길 두 피치를 가볍게 등반하고 하강한 직후에 집안 일로 뒤늦게 출발한 은경이가 합류했다. 양평의 소리산 암장에서 피서등반을 즐겼던 어제의 악우들이 인수봉 앞에서 다시 뭉친 것이다. 은경이의 합류로 완전체가 된 것을 기뻐하며 기범씨와 내가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로 시작하는 향토예비군의 노래를 장난삼아 불러 보았다. 소나무 그늘 아래로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이라는 동요 구절이 저절로 떠오르는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맛나게 먹고 본격적인 등반에 나섰다.
'취나드B'길 출발점에서 크랙을 따라 셋이서 재빠르게 단 피치로 오아시스에 올랐다. 일요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팀 외에는 아무도 없는 오아시스가 오히려 낯설었다.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의 오늘 순서는 '여명'길을 오르는 것이다. 동벽 맨 우측의 '심우'길부터 인수봉의 모든 루트를 차례대로 등반하는 프로젝트인 '캐리'는 작년 봄 시즌에 기범씨의 주도 하에 첫 발을 내딛었다. 오늘은 작년 10월 11일에 등반했던 '인수A-민남-영'길 이후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캐리를 '여명'길부터 다시 이어가는 뜻깊은 날이다.
올해의 첫 캐리를 축하라도 해주는 듯 등반을 위한 모든 여건이 더이상 좋을 수가 없는 하루였다. 휴일인데도 인수봉 동면의 바윗길은 한적했다. 인수봉의 깨끗하고 마찰력 좋은 화강암 표면을 만지는 손끝과 발끝의 감각에 기분은 절로 좋아졌다. 어제 소리산 암장에서 경험했던 날카롭고 미끌거리는 암질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수봉 바윗길의 가치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인수봉이 우리들 곁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 준 오후의 그늘진 바위면에 붙어서 '여명'길을 오르는 동안 오롯히 우리들만의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한없이 행복한 몸짓으로 춤추었던 축제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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