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인수봉 '여명-비원' - 2021년 7월 25일(일)

빌레이 2021. 7. 26. 05:18

기범씨와 내가 둘이서 '비원'길 두 피치를 가볍게 등반하고 하강한 직후에 집안 일로 뒤늦게 출발한 은경이가 합류했다. 양평의 소리산 암장에서 피서등반을 즐겼던 어제의 악우들이 인수봉 앞에서 다시 뭉친 것이다. 은경이의 합류로 완전체가 된 것을 기뻐하며 기범씨와 내가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로 시작하는 향토예비군의 노래를 장난삼아 불러 보았다. 소나무 그늘 아래로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이라는 동요 구절이 저절로 떠오르는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맛나게 먹고 본격적인 등반에 나섰다.

 

'취나드B'길 출발점에서 크랙을 따라 셋이서 재빠르게 단 피치로 오아시스에 올랐다. 일요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팀 외에는 아무도 없는 오아시스가 오히려 낯설었다.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의 오늘 순서는 '여명'길을 오르는 것이다. 동벽 맨 우측의 '심우'길부터 인수봉의 모든 루트를 차례대로 등반하는 프로젝트인 '캐리'는 작년 봄 시즌에 기범씨의 주도 하에 첫 발을 내딛었다. 오늘은 작년 10월 11일에 등반했던 '인수A-민남-영'길 이후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캐리를 '여명'길부터 다시 이어가는 뜻깊은 날이다.

 

올해의 첫 캐리를 축하라도 해주는 듯 등반을 위한 모든 여건이 더이상 좋을 수가 없는 하루였다. 휴일인데도 인수봉 동면의 바윗길은 한적했다. 인수봉의 깨끗하고 마찰력 좋은 화강암 표면을 만지는 손끝과 발끝의 감각에 기분은 절로 좋아졌다. 어제 소리산 암장에서 경험했던 날카롭고 미끌거리는 암질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수봉 바윗길의 가치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인수봉이 우리들 곁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 준 오후의 그늘진 바위면에 붙어서 '여명'길을 오르는 동안 오롯히 우리들만의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한없이 행복한 몸짓으로 춤추었던 축제의 순간이었다.       

 

▲ '여명'길의 마지막 피치인 4피치 초반부의 크랙 구간을 오르고 있다.
▲ 도선사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인수봉이 청명한 하늘 아래 빛나고 있다.
▲ 오늘이 휴일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볼 정도로 인수봉 동면의 바윗길은 조용했다.
▲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앉아 있는 순간 신선놀음이 부럽지 않았다.  
▲ 기범씨와 둘이서 그늘진 소나무 아래를 출발하여 '비원'길을 먼저 올랐다.
▲ '비원'길 첫 피치는 제법 짭짤한 슬랩이다. 바위는 미끌리지 않았지만 햇살이 따가워 왼쪽 발등이 뜨거웠다.
▲ '비원'길 첫 피치 확보점에서 기범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겨본다.
▲ '비원'길 2피치는 위로 보이는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구간이 크럭스다. 오버행 좌측의 크랙을 기범씨가 알려준 동작대로 넘어서니 작년보다 한결 나은 느낌으로 오를 수 있었다. 오버행 크랙 아래에서 최대한 좌측으로 붙은 후, 오른발을 턱에 올리고 오른손 가스통 동작과 왼손 푸시 동작으로 과감히 올라섰다. 
▲ 기범씨는 시험삼아 생수병을 장비걸이에 매달고 등반했다. 
▲ '비원'길 두 피치를 끝내고 나는 80미터 자일로 단 번에 하강했다.
▲ 한 팀이 '취나드B'길 1 피치에 로프를 설치해 놓고 등반교육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 셋은 여전히 한적한 오아시스로 재빠르게 올라갔다.
▲ 오아시스 위의 확보점에서 '여명'길을 오르는 기범씨의 빌레이를 보는 중이다.
▲ '여명'길은 일명 고구마 바위로 불리는 곳의 날등을 오르는 루트다.
▲ 기범씨가 '여명'길의 1피치와 2피치를 묶어서 단 번에 선등했다. 두 피치를 묶으면 등반거리는 60미터가 넘는다.
▲ '여명'길을 출발하기 직전이다. 오늘 같이 더운 날 워킹할 때는 반바지로 변신할 수 있는 컨버터블 바지가 유용했다. 
▲ 사진 속에서 내가 등반하는 바로 위의 오버행 턱 밑에 '여명'길 첫 피치 확보점이 있다. 
▲ 오버행 턱을 올라서고 있다. 크랙에 이끼가 있어서 손홀드가 그닥 좋지 않았다.
▲ 크랙을 빠져나온 후부터는 인공등반 구간이 이어진다.
▲ 사선으로 올라가는 인공등반 구간이어서 완력이 필요했다. 
▲ 사선이 끝나고 고구마 바위의 날등을 직상하는 구간에서는 볼트따기를 해야 한다.
▲ 사선 구간에서 날등으로 올라 붙는 순간을 기범씨가 위에서 촬영해준 컷이다.
▲ 고구마 바위 날등을 직상하는 구간에서 볼트따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 '여명'길 2피치 확보점에 안착하는 순간이다.
▲ '여명'길 2피치 확보점은 인수봉 전면을 길게 횡단하는 밴드가 지나는 곳이다.
▲ 기범씨가 '여명'길 3피치를 선등하는 중이다.
▲ 3피치는 밴드 위에 올라서기까지가 조금 까다로웠다. 
▲ '여명'길 3피치 후반부의 슬랩 구간을 오르는 중이다.
▲ '여명'길 2피치 확보점에서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영봉과 도봉산의 봉우리들이 잘 보인다.
▲ 고구마 바위 꼭대기인 '여명'길 3피치 확보점에서 기범씨가 장난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고구마 바위 꼭대기 부근은 쉬기 좋은 테라스다. 여기서 물과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갔다.
▲ '여명'길 4피치는 우측 나무 뒷편으로 갈라져 있는 크랙을 따라 오른다.
▲ 사선으로 뻗은 좌향 크랙을 올라서는 것이 부담스러운 '여명'길 4피치 초반부다.
▲ 벙어리성 크랙이어서 홀드가 듬직하지 않고 밸런스도 그리 좋지 않은 구간이므로 중간에 캠을 설치하는 것이 안전하다.
▲ 오른발 째밍을 확실하게 해야 추락을 면할 수 있는 구간을 기범씨가 멋진 동작으로 통과 중이다.
▲ 기범씨는 등반 흔적이 거의 없어서 '여명'길 4피치 후반부의 슬랩구간도 까다로웠다고 한다.
▲ 키 큰 기범씨가 설치해 놓은 캠을 회수하느라 조금은 긴장해야 했다.
▲ 왼쪽으로 쏟아질 듯한 자세가 불안정해서 부담스러웠다. 
▲ 그래도 추락하지 않고 크럭스를 잘 통과했다는 만족감이 있었다.
▲ 크랙을 통과한 직후에 나타나는 슬랩 구간은 더 어렵게 느껴진다. 노송이 서있는 곳이 '여명'길 4피치 종착점이다.
▲ '여명'길 4피치의 마지막 구간을 등반 중이다.
▲ '여명'길의 옛 종착점을 지키고 있는 노송 밑둥의 확보점은 기범씨가 12년 전에 손수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 인수봉 리볼팅 사업 이후로 지금은 소나무 바로 위에 '여명'길 4피치 쌍볼트 확보점이 설치되어 있다.
▲ 인수봉 리볼팅 사업 이후로 '여명'길 5피치가 추가되었다. 중간 볼트는 1개이고 정상을 가지 않는다면 굳이 등반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 노송 사이로 보이는 귀바위 정상과 도봉산의 봉우리들이 멋지게 보였다. 
▲ 하강은 '인수A'길 방향으로 했다.
▲ 노송 사이로 보이는 폭염 속의 서울 시내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더워지는 듯했다.
▲ '여명'길 톱앵커에서 30미터 하강 후, 은경이와 나는 80미터 자일로 단 번에 오아시스까지 외줄로 하강했다.
▲ 기범씨가 마지막으로 두 차례 하강하여 오아시스에 귀환하는 것으로 올해 첫 캐리인 '여명'길 등반을 즐겁게 마무리 했다.
▲ 리볼팅 사업 이후의 인수봉 동면 개념도. 표기된 난이도는 내가 체감해 본 것과 차이 나는 부분이 많은 듯하다.
▲ 리볼팅 사업 후에 '여명'길 5피치가 추가된 것을 개념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도 표기된 난이도는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