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설악산 토왕골 '솜다리추억' - 2021년 8월 2일(월)

빌레이 2021. 8. 4. 05:05

산을 좋아하는 클라이머들의 여름 휴가지는 대자연 속의 바윗길일 수 밖에 없다. 설악산 토왕골에 있는 등반이 허가된 바윗길들 중에서 그간 유일하게 오르지 못했던 '솜다리추억'길을 한적한 평일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날씨가 변수이기는 하지만 설레는 가슴을 안고 월요일 새벽 5시에 서울을 벗어난다. 서울양양고속도로의 내린천휴게소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간밤에 흠뻑 내린 비에 젖은 주변 산야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 본다. 플랜B를 고려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싹튼다. 일단 설악동에 도착해서 다음 일정을 결정하기로 마음 먹고 차를 출발하여 장장 11km에 이르는 인제양양터널을 통과한다. 백두대간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의 동쪽과 서쪽 날씨가 딴판이다. 동해 바다가 지척인 백두대간 동쪽의 날씨는 맑게 개이고 있는 중이다.

 

설악동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등반 준비를 하고 곧장 토왕골로의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아무리 월요일이라 해도 여름 휴가가 한창인 피서철인데 토왕골의 바윗길이 이렇게 조용할 줄은 몰랐다. 우리가 '솜다리추억'길 등반을 마치고 하산할 때까지 토왕골에 자리한 다른 바윗길들인 '경원대길', '별을 따는 소년들', '4인의 우정길' 등 그 어디에서도 우리팀 외에 다른 클라이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토왕골 전체를 우리가 전세낸 듯한 여유로운 마음으로 '솜다리추억'길 전체 구간 중 크럭스인 3피치도 차분히 잘 통과해서 안전하게 솜다리봉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록 마지막 구간인 6피치를 등반하는 중에 갑자기 쏟아진 세찬 소나기를 만나는 바람에 비 맞은 생쥐 꼴을 면할 수는 없었으나, 이 마저도 땀에 절은 몸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샤워를 한다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었다.

 

우리를 뒤따르는 다른 팀이 없으니 등반했던 루트를 되짚어서 하강할 수 있었다. 4피치 확보점을 건너 뛰어 5피치에서 3피치 확보점으로 30미터를 하강하여 자일을 회수할 때는 물 먹은 자일을 끌어 당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자동확보장비인 신지(Cinch)를 유마르(Jumar)처럼 사용하여 가까스로 줄을 회수할 수 있었다. 비에 젖은 자일로 하강할 때는 반드시 회수할 것을 생각하여 조금 귀찮더라도 피치를 짧게 나누어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강을 모두 마치고 출발지점인 테라스에 안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는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소나기는 그새 멈춰 있었다. 운무가 춤을 추고 있는 토왕골의 풍광은 그야말로 신선계가 따로 없었다. 크나큰 축복을 받은 오늘의 '솜다리추억'길 등반은 또 하나의 행복 넘치는 추억으로 나의 뇌리에 각인될 것이다.       

 

▲ 한적한 설악산 소공원 입구를 지키고 있는 반달가슴곰 동상. 설악동에 도착했을 땐 날씨가 개이고 있었다. (07:55)
▲ 간밤에 내린 비로 비룡폭포 아래의 육담폭포를 타고 물대포처럼 뿜오져 내리는 물줄기가 힘찼다. (08:31)
▲ 비룡폭포 위에서 습한 날씨에 땀에 절은 몸을 잠시 쉬어 갔다. (08:50)
▲ 세로로 늘려 놓은 피라미드 형상의 솜다리봉을 오르는 '솜다리추억'길 출발점까지 접근하는 릿지길이 만만치 않았다. (09:40)
▲ '솜다리추억'길 출발점은 제법 넓은 테라스이고 토왕성 폭포를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멋진 뷰포인트다.
▲ 한참을 쉰 후에 자일을 묶고 '솜다리추억'길 선등에 나선다. (10:31)
▲ 1피치는 25미터 거리의 홀드 양호한 크랙 구간으로 난이도는 5.8이다.
▲ 1피치 등반 라인이다. 중간 볼트는 2개다.
▲ 2피치도 1피치와 비슷한 디에드르 형태의 크랙 구간으로 난이도 5.8에 등반 거리는 25미터이다.
▲ 2피치는 중간 볼트가 없어서 캠으로 확보점을 구축하면서 올랐다.
▲ 위압적인 절벽인 3피치가 눈앞에 버티고 있는 2피치 확보점에서 우측으로 본 토왕성 폭포의 모습이다.
▲ '솜다리추억'길에서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3피치 초반부를 오르고 있다. (11:16)
▲ 3피치는 등반 거리 38미터에 자유등반 난이도는 5.11b로 기록되어 있다. 초반부의 세로 크랙을 올라서는 구간이 크럭스로 손홀드가 좋지 않고, 왼발 스탠스도 양호 하지 않았다. 나는 자유등반을 한 번 시도해 본 후에 곧바로 포기하고 슬링을 이용한 인공등반 방식으로 올랐다. 자유등반에 대한 욕심보다는 끝까지 안전하고 즐겁게 오르기 위해서 체력을 아끼자는 생각이 강했다.
▲ 3피치 중간 부분의 볼트에는 피치를 끊어서 하강할 수 있는 하강고리가 설치되어 있다. 60미터 자일 한 동으로 하강할 수 있게 해준 이 하강고리가 우리에게는 아주 유용했다. 후반부의 오버행 턱을 넘어서야 하는 두 번째 크럭스가 기다리고 있고 어차피 뒤따르는 등반팀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곳에서 한 번 피치를 끊었다.
▲ 3피치 후반부, 오버행 구간이 시작되는 곳의 첫 볼트가 헐거워져 거의 빠져 있는 상태였다. 사진에서 클립되어 있는 볼트 위의 두 개 중 아래에 있는 것이 문제였다. 크럭스는 위에 있는 볼트에 클립한 후 세로 크랙을 넘어서는 부분이다. 나는 두 볼트 사이에 BD 1호 캠을 설치하고 올랐다.
▲ 비록 인공등반 방식으로 올랐지만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높았던 3피치를 안전하게 완료한 순간이 기뻤다. (12:20)
▲ 긴장감 있었던 3피치 등반을 완료하고 확보점에서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본 풍경이다.
▲ 4피치를 출발하는 순간이다. (12:26)
▲ 4피치(15미터, 5.7)와 5피치(25미터, 5.8)는 피치를 끊지 않고 단 번에 올랐다.
▲ 5피치 확보점에는 하강용 고리 대신 잠금 카라비너가 설치되어 있었다.
▲ 마지막 6피치(15미터, 5.8)를 오르고 있다. (12:45)
▲ 위로 보이는 봉우리 끝이 솜다리봉 정상이다. 이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6피치 마지막 구간을 오를 때는 빗줄기가 굵어졌다. 다행히 직벽에 손홀드가 확실해서 등반은 쉬웠다.
▲ 후등자까지 '솜다리 추억'길 정상에 도착한 순간부터는 온몸이 비에 젖을 정도로 세찬 소나기가 쏟아졌다. (12:56)
▲ 솜다리봉 정상에서 선녀봉으로 이어지는 칼날능선이다. 뒤따르는 팀이 있었다면 선녀봉을 통해 '별을 따는 소년들' 릿지 정상으로 가서 하산할 생각이었다. 예전에 '경원대'길을 등반한 후 그쪽으로 하산했던 경험이 있어서 익숙한 곳이다. 오늘은 등반했던 길을 되짚어서 하강하기로 했다.
▲ 여섯 차례의 반복적인 하강으로 '솜다리추억'길 출발점에 귀환하니 어느새 비는 멈춰 있었다. (14:05)
▲ 소나기가 지나간 직후의 토왕골엔 운무가 펼쳐졌다.
▲ 암벽화까지 흠뻑 젖어서 발가락이 노랗게 물들었다. 운해 속에 신선계로 변한 토왕골 한가운데서 먹었던 늦은 점심이 꿀맛이었다.
▲ 점심 후에 테라스에서 계곡 방향으로 30미터를 하강하는 것으로 모든 등반을 마무리 지었다. (14:23)
▲ 클라이밍 다운으로 계곡을 내려와서 장비를 정리한 후 오늘 우리가 등반했던 솜다리봉을 올려다보고 있다. (14:52)
▲ 비룡폭포 위를 지나서 토왕골을 벗어날 즈음엔 운해가 짙어지고 다시 이슬비가 내렸다. (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