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좋아하는 클라이머들의 여름 휴가지는 대자연 속의 바윗길일 수 밖에 없다. 설악산 토왕골에 있는 등반이 허가된 바윗길들 중에서 그간 유일하게 오르지 못했던 '솜다리추억'길을 한적한 평일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날씨가 변수이기는 하지만 설레는 가슴을 안고 월요일 새벽 5시에 서울을 벗어난다. 서울양양고속도로의 내린천휴게소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간밤에 흠뻑 내린 비에 젖은 주변 산야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 본다. 플랜B를 고려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싹튼다. 일단 설악동에 도착해서 다음 일정을 결정하기로 마음 먹고 차를 출발하여 장장 11km에 이르는 인제양양터널을 통과한다. 백두대간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의 동쪽과 서쪽 날씨가 딴판이다. 동해 바다가 지척인 백두대간 동쪽의 날씨는 맑게 개이고 있는 중이다.
설악동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등반 준비를 하고 곧장 토왕골로의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아무리 월요일이라 해도 여름 휴가가 한창인 피서철인데 토왕골의 바윗길이 이렇게 조용할 줄은 몰랐다. 우리가 '솜다리추억'길 등반을 마치고 하산할 때까지 토왕골에 자리한 다른 바윗길들인 '경원대길', '별을 따는 소년들', '4인의 우정길' 등 그 어디에서도 우리팀 외에 다른 클라이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토왕골 전체를 우리가 전세낸 듯한 여유로운 마음으로 '솜다리추억'길 전체 구간 중 크럭스인 3피치도 차분히 잘 통과해서 안전하게 솜다리봉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록 마지막 구간인 6피치를 등반하는 중에 갑자기 쏟아진 세찬 소나기를 만나는 바람에 비 맞은 생쥐 꼴을 면할 수는 없었으나, 이 마저도 땀에 절은 몸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샤워를 한다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었다.
우리를 뒤따르는 다른 팀이 없으니 등반했던 루트를 되짚어서 하강할 수 있었다. 4피치 확보점을 건너 뛰어 5피치에서 3피치 확보점으로 30미터를 하강하여 자일을 회수할 때는 물 먹은 자일을 끌어 당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자동확보장비인 신지(Cinch)를 유마르(Jumar)처럼 사용하여 가까스로 줄을 회수할 수 있었다. 비에 젖은 자일로 하강할 때는 반드시 회수할 것을 생각하여 조금 귀찮더라도 피치를 짧게 나누어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강을 모두 마치고 출발지점인 테라스에 안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는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소나기는 그새 멈춰 있었다. 운무가 춤을 추고 있는 토왕골의 풍광은 그야말로 신선계가 따로 없었다. 크나큰 축복을 받은 오늘의 '솜다리추억'길 등반은 또 하나의 행복 넘치는 추억으로 나의 뇌리에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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