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스위스 알프스 #3] 호흐사스(Hohsaas, 3200m), 알파인 들꽃길 ~ 사스알마겔 모험길 - 8월 8일(화)
빌레이2023. 8. 22. 13:32
이번 스위스 여행에서는 현지 사정과 지리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거의 준비하지 않았다. 현금도 스위스 프랑으로 환전하지 않고 지난 크로아티아 출장 때 쓰고 남은 유로화만 몇 푼 들고 갔을 뿐이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준비하던 나의 일상적인 태도와는 사뭇 동떨어진 행태이다. 알프스 최고의 가이드인 허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류시화 작가의 글에서 본 소금인형처럼 아무 선입견 없이 스위스와 알프스 속에 녹아들어 보자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사스페에 발을 들여 놓은지 3일째 아침이 밝았다. 이제는 사스페 주변의 지형이 서서히 눈에 익어가서 주변 지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지도에서 고봉들의 명칭과 높이를 찾아 보고, 여러 트레킹 루트를 따라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스(Saas) 계곡 인근엔 해발고도가 높은 순서로 사스페(Saas-Fee), 사스알마겔(Saas-Almagell), 사스그룬트(Saas-Grund), 사스발렌(Saas-Balen), 이렇게 4개의 산악마을이 흩어져 있다. 4천 미터급 설산 아래의 빙하에서 발원하는사스 계곡의 상류는 크게 사스페(Saas-Fee) 계곡과 사스탈(Saastal) 계곡으로 갈린다. 사스페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은 아찔한 협곡이고, 유럽에서 가장 큰 사력식 댐으로 알려진 마트마르크(Mattmark) 댐에서 시작하는 사스탈 계곡은 사스알마겔 마을을 통과하여 사스페에서 흘러온 계곡과 만나 사스 계곡의 본류를 이룬다. 두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사스그룬트 마을이 넓게 자리하고, 그 아래로 사스발렌 마을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오늘은 4개 마을 중 가장 큰 사스그룬트 마을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호흐사스(Hohsaas, 3200m) 전망대에 올라 설산과 빙하가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구경한 후, 중간 역인 크레우즈보덴(Kreuzboden, 2400m)으로 내려와서 '알파인 들꽃길(Alpine Flower Trail)'로 명명된 산허리길에 들어서는 것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안내도에 의하면 240 종류 이상의 다양한 식물이 서식한다는 이 코스는 걷는 내내 눈길을 사로잡는 들꽃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워지는 조망 또한 시원스럽기 그지 없었다. 샤모니의 쁠랑쁘라에서 몽탕베르에 이르는 그랑발콩노르 트레일이 연상되는 길이었다. 하산길 중간에서 이어진 '사스알마겔 모험길(Saas-Almagell Adventure Trail)'은 산행 말미에 주어진 보너스 같았다. 알파인 들꽃길에선 맛볼 수 없었던 작은 스릴까지 갖춘 길이어서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두 개의 출렁다리를 건널 땐 내심 고소공포증이 있는 아내가 걱정스러웠으나, 생각보다는 잘 견뎌 주었다. 푸르그스탈덴(Furggstalden, 1893m)에서 사스알마겔 마을로 내려오는 곤돌라 위에서 종합선물세트 같았던 오늘의 여정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