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당일 여행 - 2023년 7월 11일(화)

빌레이 2023. 7. 23. 17:58

소련이 해체되기 전 동유럽은 거의 사회주의 국가였다. 어릴 때 사회 교과서에서 유고슬라비아(Jugoslavija)란 국가로 배웠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도 그 중 하나였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15개 국가로 붕괴 되고, 유고연방도 비슷한 시기에 민족 간 대립으로 인해 혹독한 내전을 치르게 된다. 그 결과 1992년에 해체된 '유고연방'은 이제 세계지도 상에서 사라지고 없다. 현재는 세르비아(Serbia), 크로아티아(Croatia), 슬로베니아(Slovenia), 마케도니아(Macedonia), 몬테네그로(Montenegro),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Herzegovina) 등 6개의 공화국으로 분리되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적군과 아군이 확실한 국가 간 전쟁보다 피아가 불확실한 내전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대량으로 학살 당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보는 경우가 많다. 유고 내전에서도 최악의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는 것을 내가 대학원생 시절이던 당시에 여러 매스컴을 통해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학창시절을 보낸 시기인 20세기 후반은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양측 동맹국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과 긴장 상태가 유지되던 냉전시대였다. 당시에 소련의 동맹국이었던 동구권은 그야말로 꿈에서도 갈 수 없는 머나먼 나라들이었다. 이번 크로아티아 출장길에 오르면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현실을 새삼 깨달았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시내에서는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 나라들인 몬테네그로(Montenegro)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를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당일여행(excursion) 상품 홍보물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힌다는 스타리모스트(Stari Most)와 살아 있는 자연미를 볼 수 있는 크라비체 폭포(Kravica Waterfall)의 풍광이 눈길을 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당일 왕복 여행 상품을 예약했다. 각 호텔에서 아침 7시 경에 미니버스가 손님들을 픽업하여 관광버스에 모아 태운 후 8시 즈음에 두브로브니크를 출발하고, 돌아올 때는 아침에 픽업했던 장소에 내려주는 시스템으로 비용은 1인당 50유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버스가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면서 승객들 한 명씩 일일이 입국심사를 받느라 꽤 긴 시간을 대기해야만 했다.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의 경우 무비자로 최대 90일 동안 체류 가능하다. 이애리사 선수가 한국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해서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는 1974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린 사라예보(Sarajevo)가 수도라는 사실 외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란 나라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전무하다. 국경을 통과한 후로는 내륙의 산악지방을 통과하는 차창 밖 풍경이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과 사뭇 달라서 이색적이었다. 점심 즈음에 도착한 모스타르(Mostar)에서는 각각 영어와 스페인어로 설명하는 현지의 가이드 2명을 따라 두 팀으로 나뉘어 올드타운으로 이동했다. 영어팀 가이드가 출발 직후에 성당 옆 그늘에서 보스니아 내전의 아픔을 포함한 이 나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쭈욱 훑어 내려가는 동안 잠시 숙연해지기는 했으나, 이국의 관광객들에게는 소매치기를 각별히 주의하라는 설명만이 피부에 와 닿는 듯했다. 유명 관광지답게 올드타운은 인파로 붐볐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이 혼재된 듯한 독특한 분위기의 올드타운을 구경하는 재미가 남달랐다.

 

청아한 물빛이 아름다운 네레트바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올드타운 거리를 이어주는 가교인 스타리모스트(Stari Most)는 사진 상으로 본 것에 비해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멀리서 바라본 아치형 다리는 랜드마크 역할을 감당하기에 충분히 멋진 모습이었으나 다리 자체의 조형미가 빼어나게 보이지는 않았다. 16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당시에 처음 건설되었다는 스타리모스트의 원형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때 폭격으로 다리가 무너졌고, 현재의 다리는 2004년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크로아티아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크라비체 폭포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모습이었다. 일정 상 다녀올 수 없었던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