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59

[설악산 등반여행 6 : 울산바위 '안다미로'길] - 2020년 8월 18일(화)

어제는 울산바위 우벽의 '문리대길' 등반을 마친 후 장비를 좌벽의 '안다미로' 출발점 부근에 데포시켜 놓았다. 오늘은 자일을 메지 않으니 어프로치가 한결 더 가벼웠다. 바윗길 '안다미로'는 크랙 등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루트였다. 총 6피치 중 4피치 초반부의 슬랩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다양한 형태의 크랙들로 이루어져 있다. 2피치의 오버행 크랙은 개념도 상의 난이도인 5.10c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고, 3피치의 크랙도 밸런스 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최고 난이도인 5.11a로 표기되어 있는 5피치의 일자로 뻗어내린 크랙은 후반부가 크럭스였다. 중반부까지는 그런대로 양호한 손홀드 덕에 잘 올랐으나 후반부는 내 실력으로 도저히 돌파할 수 없었다. 우측으로 돌아서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설악산 등반여행 5 : 울산바위 '문리대'길] - 2020년 8월 17일(월)

울산바위는 화강암의 거대한 성채다. 하나의 바위로 불리기엔 너무나 웅장하다. 설악산에서 떼어내어 하나의 독립적인 바위산으로 대우해 주어야만 그 훌륭한 풍모에 어울릴 듯하다. 울산바위에서 가장 고전적인 루트로 알려진 '문리대'길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 흔들바위 위부터는 제법 가파른 산길이어서 비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장비를 착용하는데 주위에 날파리 같은 벌레들이 우리를 귀찮게 한다. 인호씨는 펄쩍펄쩍 뛸 정도로 벌레가 유독 인호씨에게만 몰린다. 개미처럼 따끔거리게 피부를 물어뜯는 벌레들도 젊은 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살짝 놀려준다. 벌레들 때문에라도 빨리 지면을 떠나서 벽에 붙어야 할 지경이다. 이기범 선생의 '문리대'길 등반에 관한 브리핑이 있은 후에 곧바로 출발한다. 내가 쎄컨이고, 치득씨..

[설악산 등반여행 4 : 미륵장군봉 '미륵2009'] - 2020년 8월 16일(일)

외설악에서 3일 연속 등반했으니 오늘은 내설악의 미륵장군봉 암벽을 맛보기로 한다. 설악동 숙소에서 독수리 5형제가 내차에 탑승하여 미시령 터널을 지난다. 내설악 장수대 주차장까지 가는 40여분 동안 마치 가족끼리 짧은 여행을 떠나는 듯한 작은 설레임이 느껴진다. 3일 동안 5명이 계속 붙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형제애 비슷한 연대감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엔 이미 K 등산학교의 다른 조들과 전국에서 모인 클라이머들이 미륵장군봉의 바윗길 곳곳에 붙어 있었다. 우리팀은 맨 우측 벽에 있는 '미륵2009' 루트를 재빠르게 등반한 후 하강하여 시원한 물이 흐르는 석황사 계곡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에는 바로 앞의 신선벽 암장에서 하드프리 루트 두 곳을 등반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용대리에서..

[설악산 등반여행 3 : 장군봉] - 2020년 8월 15일(토)

설악동 숙소에서 아침 7시 즈음 장군봉을 향해 출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밖에는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다. K 등산학교 1반의 다른 조들도 역시나 등반지로 출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내에서 장비 사용법을 교육하는 조들도 있다. 우리보다 이틀 후인 어젯밤에 도착한 2반 35명은 오늘이 첫날이다. 레벨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2반이 먼저 빗속을 뚫고 소토왕골 암장으로 출발한다. 이기범 선생은 2반이 대기 중인 비선대 식당의 상황을 전화로 살펴보는 중이다. 아무래도 등반을 포기해야 할 듯하여 플랜 B에 대해 상의하던 중 빗줄기가 약해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출발을 결정한다. 답답한 실내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는 비를 맞더라도 산에 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예정보..

[설악산 등반여행 2 : 적벽] - 2020년 8월 14일(금)

설악산 적벽은 비선대 계곡에서 올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난다. 나 같은 보통 수준 이하의 클라이머들은 눈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거대한 오버행의 적벽 앞에서 오르고 싶다는 도전 의식보다는 과연 내가 저 벽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게 마련이다. K 등산학교 암벽1반 1조의 첫 등반지로 적벽이 결정되었을 때 적잖은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다. 적벽의 날등을 타고 오르는 삼형제길 릿지를 등반한 경험은 있지만, 오버행 구간이 대부분인 '자유2836'과 '채송화 향기' 루트를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이어지는 일반 등산로를 따라서 적벽에 다가서는 동안 5명이 함께 줄을 묶게 되는 멀티피치 등반에서 최소한 민폐는 끼치지 말자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했다. '자유2836' 루트는..

[설악산 등반여행 1 : 소토왕골 암장] - 2020년 8월 13일

여름휴가를 대신한다는 명목 하에 K 등산학교에서 7박 8일 일정으로 설악산 일원에서 진행하는 암벽반 교육에 참가하기로 했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전례 없는 온라인 강의를 감당해내느라 지난 학기 전체를 온통 정신 없이 분주하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여름방학 기간 중에도 해외출장을 가지 못한 상태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주말에 악우들과 함께 바윗길을 오르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런 나의 사막 같이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오아시스처럼 시원한 청량감을 안겨 준 것이 바로 이번 설악에서의 암벽반 교육이었다. 국내에서는 알아주는 K 등산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암벽등반에 대해서 새로운 무엇을 더 배우고 싶다..

월출산 시루봉 암장 (2020년 8월 2일)

내 마음의 고향 같은 월출산은 나주집에서 차로 30여분 거리에 있다. 초등학생 때 유두날 어머니와 함께 작은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맞고 피부병이 나았던 것이 월출산과 관련된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지 싶다. 중학생 땐 보이스카웃 대원으로 참석했던 야영 때 월출산을 다녀왔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향을 떠난 후에도 귀향할 때마다 자주 찾던 월출산은 지금의 북한산과 함께 내 삶의 한 자리를 굳건히 채우고 있는 존재다. 그런 월출산을 마음 통하는 악우들과 함께 다시 오게된 감회가 사뭇 남다르다. 암벽등반에 입문한 직후였던 십년 전 즈음에 사자봉 릿지를 친구들과 두 번 찾은 이후로 워킹 산행이 아닌 바윗길에 붙기 위해 월출산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창의 할매바위 등반을 마친 후 나주의 고향집에..

고창 할매바위 (2020년 8월 1일)

남쪽으로 튀어라. 장마전선의 북상으로 중부지방엔 폭우가 내릴 거라는 주말의 일기예보를 보고 기범씨와 함께 등반지를 고민하던 중 내린 결정이다. 넘어질 때 쉬어간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이번 기회에 내 고향인 전라도의 바윗길을 다녀오기로 하고 여행계획을 짰다. 토요일 새벽 4시에 서울을 출발해서 첫날은 전북 고창의 할매바위 등반 후 전남 나주에 있는 내 고향집으로 이동하여 숙박, 둘째날은 전남 영암의 월출산에서 등반하고 저녁에 귀경하는 일정이다. 기범, 은경, 대섭, 나, 이렇게 4명의 악우들이 함께 다녀온 이번 전라도 등반여행은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던 날씨 덕택에 알찬 등반과 아름다운 추억만들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선운산과 함께 전북 지역의 대표적인 자연암장인 ..

갈기산 케른릿지B길 등반 - 2017년 5월 4일

2박 3일 등반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대둔산 아래의 숙소를 출발하여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충북 영동의 갈기산으로 향한다. 예전부터 오르고 싶었던 케른릿지 등반을 하기 위한 행차다. 아름다운 물길인 금강변 도로를 달려서 갈기산관광농원에 주차하고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산답게 등산로가 희미하다. 등반안내서와 인터넷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별 어려움 없이 케른릿지B길 초입을 찾는다. 그 아래에 있는 케른릿지A길은 난이도가 낮아서 등반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하에 B길만 등반하기로 한다. 처음 가보는 바윗길은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다. 간밤에 잘 쉰 덕택에 몸 상태는 많이 회복된 듯하다. 대섭이의 빌레이를 받으며 첫 피치 선등에 나선다. 별 어려움 없는 길이지만 천천히 신중하게..

천등산 처음처럼길 등반 - 2017년 5월 3일

어제는 새벽 4시에 기상하여 6시 이전에 서울을 빠져나와 대둔산 구조대길 등반까지 완료했던 긴 하루였다.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고는 하지만 몸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예정된 등반을 감행하기로 하고 아침 8시경에 숙소를 출발하여 천등산 처음처럼길 초입을 찾아 괴목동천을 건너간다. 석가탄신일인 공휴일이라서 많은 등반팀이 올 것을 예상하고 일찍 나선 것이다.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우리 외에도 여러 팀들이 천등산의 바윗길 이곳 저곳에 붙어 있었다. 장비를 착용하고 첫 피치 선등에 나서는데 몸이 영 둔하다. 전에는 어렵지 않게 올랐던 곳인데 피곤이 풀리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은경이가 선등을 맡겠다고 하여 즐거운 등반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은경이도 전과는 달리 날렵한 몸짓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