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갈기산 케른릿지B길 등반 - 2017년 5월 4일

빌레이 2017. 5. 5. 10:34

2박 3일 등반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대둔산 아래의 숙소를 출발하여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충북 영동의 갈기산으로 향한다. 예전부터 오르고 싶었던 케른릿지 등반을 하기 위한 행차다. 아름다운 물길인 금강변 도로를 달려서 갈기산관광농원에 주차하고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산답게 등산로가 희미하다. 등반안내서와 인터넷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별 어려움 없이 케른릿지B길 초입을 찾는다. 그 아래에 있는 케른릿지A길은 난이도가 낮아서 등반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하에 B길만 등반하기로 한다.

 

처음 가보는 바윗길은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다. 간밤에 잘 쉰 덕택에 몸 상태는 많이 회복된 듯하다. 대섭이의 빌레이를 받으며 첫 피치 선등에 나선다. 별 어려움 없는 길이지만 천천히 신중하게 오른다. 라스트를 맡은 은경이의 루트 정보에 대한 사전 준비가 철저해서 믿음이 간다. 둘째 피치는 약간 오버행진 턱을 올라서서 침니로 들어서야 하는 구간이다. 처음 턱을 올라설 때 볼트 우측으로 붙었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중앙의 확실한 손홀드를 찾은 다음 올라설 수 있었다. 밑에서 보면 우측이 좋을 것 같은데 흘러내리는 홀드가 믿음을 주지 못한다. 그 이후는 홀드가 비교적 확실하지만 침니 등반의 부담감은 피할 수 없는 선등자의 몫이다. 마지막 촉스톤 같은 턱을 넘어서서 소나무에 확보한다.

 

셋째 피치는 확보 없이 올라도 될 정도의 구간이다. 세 피치를 완료하면 시야가 열리고 가야할 4, 5, 6 피치가 기다리고 있는 절벽이 정면에 펼쳐진다. 암벽의 규모는 작은 산답지 않게 제법 웅장하다. 잠시 걸어서 이동하면 케른릿지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45미터 길이의 대침니 구간인 넷째 마디 출발점이 나온다. 등반 출발지점 바로 옆에 누군가 화단을 가꾸어 심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금낭화가 예쁘게 피어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가야할 바윗길을 가늠해본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위압적인 기울기에 볼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넷째 피치 등반을 시작한다. 선등자 빌레이어를 위한 슬링이 걸려있는 출발점에서 직상하여 크랙을 따라 오른다. 중간 소나무에 슬링으로 확보점을 만든 후 침니로 들어선다.

 

좌측 사선 방향으로 진행하는 침니는 몸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넓이로 스태밍 자세를 취하기에 적당하다. 기울기가 직벽에 가깝고 부분적으로는 오버행의 굴곡이 있는 곳이라서 홀드가 좋다고 해도 긴장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침니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활엽수 밑동에 걸려있는 슬링에 자일을 클립하고 한참 오른 후, 캠을 설치할만한 크랙이 보여서 중간 확보점을 만들고 위를 올려다보니 약 5미터 위에 볼트가 보인다. 선등자에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볼트 하나가 반갑기 그지 없다. 볼트에 확보줄로 중간 확보를 하고 잠시 숨을 돌린 후 수낭에 있는 물을 빨아마신다. 등반이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직상의 긴 침니가 정신적인 중압감을 준 탓인지 피로감이 몰려온다. 아직은 몸이 온전하게 회복되지 않아서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느낌이 든다. 다시 힘을 내어 후반부 등반을 이어간다. 머리 위의 촉스톤 아래에 캠을 하나 설치하고 넘어서니 비로소 쌍볼트 확보점이 보인다. 확보 후 "완료"를 외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무슨 이유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침니 등반은 항상 체력적으로 힘들다. 실내암장에서 연습해본 적이 없는 익숙치 않은 자세의 연속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시야가 자유롭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탓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침니에 볼트가 거의 없고 등반자 스스로 캠 등으로 중간 확보점을 만들어야 하는 까닭도 한 몫 하는 듯하다. 어찌 됐든 다른 루트에서는 맛보기 힘든 45미터 길이의 대침니 등반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체력적으로 좀 더 강한 몸 상태였다면 훨씬 더 즐겁게 등반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긴 피치를 60미터 자일 한 동으로 등반하기 위해서 쎄컨의 대섭이는 슈퍼베이직을 이용해서 오른다. 뒤이어 올라온 두 친구도 힘겨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섯째 피치는 홀드 양호한 직벽 구간으로 시작된다. 중간에 하나의 볼트가 있어서 루트 파인딩에 도움을 준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신중하게 올라서서 소나무에 확보한다. 여섯째 피치는 부담 없이 등반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를 가졌다. 아래에서 볼 때는 소나무 아래의 사선 침니 구간에서 '또다시 몸을 부벼야 되나'라는 귀차니즘이 일었지만 다행히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이 구간을 올라서면 실질적인 등반은 종료된다. 4피치부터 6피치까지는 적당한 긴장감이 동반되는 등반성 높은 루트라는 생각이다. 여섯째 마디 확보점인 소나무에서 열시 방향으로 걸어가면 오솔길이 이어지고 케른릿지A길의 종착지로 보이는 평평한 테라스가 나온다. 이곳에서 장비를 해체하고 모든 등반을 마무리 한다. 처음으로 찾아온 갈기산에서 그간 뇌리에서만 머물러 있던 케른릿지길을 실제로 등반했다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잡목이 우거진 하산로가 확실치 않고 송화가루가 날리는 숲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며 길을 잃고 헤메다가 가시에 찔리는 고생을 감수했지만, 이 마저도 야생의 자연을 탐험한 댓가로는 약소한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생각 속에 머물러 있던 바를 행동으로 옮겼을 때 찾아오는 기쁨이 함께 했던 갈기산 케른릿지 등반이었다. 오월의 푸르름 속에서 세 친구가 한 줄을 묶고 하나 된 마음으로 올랐던 이 등반이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1. 대침니 등반 직후 이어지는 다섯째 피치를 등반하고 있다.

 

 

2. 갈기산관광농원에서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오르면 나타나는 이정표.

 

 

3. 케른릿지 A길과 B길이 갈라지는 지점. 이곳에서 한참 더 올라가야 B길 초입이 보인다.

 

 

4. 비교적 최근에 달아놓은 듯한 도랫굽이님의 리본이 좋은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다.

 

 

5. 경사면의 잡석지대 좌측으로 첫째 마디가 시작된다. 

 

 

6. 둘째 마디 출발점이다.

 

 

7. 둘째 피치 상단부의 침니 구간을 오르고 있다.

 

 

8. 스태밍 자세로 오르기 좋은 둘째 마디는 홀드도 양호한 편이다.

 

 

9. 셋째 마디는 특별한 확보 없이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10. 셋째 마디를 끝내면 넷째 마디의 세로로 곧게 뻗은 침니가 정면에 보인다.  

 

 

11. 넷째 마디 초반부를 올라서고 있다.

 

 

12. 중간 소나무에 확보점을 만들고 올라서면 본격적인 침니 등반이 시작된다.

 

 

13. 긴 길이의 피치라서 자일 유통에도 신경쓰며 등반해야 한다. 침니 중간의 활엽수 아래에 슬링이 걸려있다.

 

 

14. 후등자는 침니에서 과감히 몸을 밖으로 빼면 훨씬 자유로운 등반이 가능할 것이다.

 

 

15. 넷째 마디 확보점에서도 출발점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침니의 기울기는 만만치 않다.

 

 

16. 다섯째 마디도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할 구간이 이어진다.

 

 

17. 다섯째 마디 중간에 볼트가 하나 있어서 루트 파인딩에 도움을 준다.

 

 

18. 대섭이가 다섯째 마디 직벽 구간을 등반 중이다.

 

 

19. 여섯째 마디는 비교적 쉬운 난이도로 등반이 즐거운 구간이다.

 

 

20. 아래에서 볼 때는 또다시 침니 등반을 해야 하나 걱정했으나 그렇지 않아도 된다.

 

 

21. 대섭이가 여섯째 마디를 등반 중이다.

 

 

22. 여섯째 마디를 올라서면 실질적인 등반은 끝나고 릿지화로 갈아신어도 된다.

 

 

23. 리본을 따라가면 정상능선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나온다.

 

 

24. 케른릿지B길 후반부인 4, 5, 6 피치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25. 하산길이 희미해서 잠시 길을 잃었지만 갈기산농원의 방향을 잘 가늠해서 내려오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