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조령산 새터암장 - 2024년 11월 23일(토)

빌레이 2024. 11. 24. 19:13

학기말로 접어드는 11월 하순은 내게 있어 1년 중 여러모로 가장 분주한 시기이다. 일주일에 두어 차례 나가던 실내 암장에서의 운동도 최근에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주말 등반은 가급적이면 거르지 않기로 다짐한다. 가벼울 수 없는 몸상태를 감안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 삼아 떠날 수 있는 등반지를 물색해 본다. 그동안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던 조령산의 새터암장이 떠오른다. 여름철 등반지로 인기 높은 곳이지만, 상대적으로 한가한 늦가을날에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루의 최저 기온이 영상에 머물고 바위에 햇살이 비춰 준다면 요즘처럼 쌀쌀한 날에도 충분히 암벽등반을 즐길 수가 있다. 오늘의 맑은 날씨와 남향의 새터암장은 이러한 등반 조건에 제대로 부합하는 듯 보였다.

 

아침 7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양평나들목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여주JC 부근에서 30여분 동안 차가 막혔지만 그런대로 참을만 했다. 충주휴게소에서 여유로운 커피타임을 갖고, 괴산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수안보 온천단지를 거쳐 용성골펜션의 널찍한 마당에 도착했다. 항아리 속에 주차비 5천원을 지불하고, 펜션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계곡을 따라 잠시 올라가니 새터암장이 나온다. 어프로치에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암장 바로 아래에 자리한 말용초폭포 주변의 아담한 풍광이 기대 이상으로 수려하여 새로운 여행지에 온 기분이 절로 든다. 하루 종일 우리팀 외에는 주변에 인적이라곤 전혀 없었던 고즈넉한 새터암장에서의 등반은 즐겁지 않을 수가 없는 조건이었다. 수안보에 위치한 인공암벽장과 새터암장을 연계한다면 1박 2일 일정의 클라이밍 투어 대상지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여름철 피서지로도 제격일 듯한 말용초폭포 주변의 풍광이 수려했다.
▲ 새터암장 중앙의 안내문.
▲ 화강암 슬랩으로 이루어진 새터암장의 개념도. 불암산 한성대암장이나 강화도 상리암장과 유사한 인상이었으나 암벽의 높이와 규모는 훨씬 컸다.
▲ 응달엔 다소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햇살을 받고 있는 암벽을 기대하며 등반에 나서기로 한다.
▲ 멀티피치 루트에 올라 암장을 파악해 보기 위해 정중앙의 '빡봉' 루트부터 오르기로 한다.
▲ '빡봉' 1피치 초반부의 응달을 벗어나니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1피치는 중상단부의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구간이 크럭스였다.
▲ '빡봉' 1피치 앵커에서 우측으로 본 풍경. 사진 좌측의 뾰족한 봉우리가 백두대간에 속하는 깃대봉이다.
▲ '빡봉' 2피치는 1피치보다 기울기가 쎄서 조금 더 긴장했다.
▲ 눈앞에 보이는 직상 크랙을 따라 오르는 루트이다.
▲ '빡봉' 2피치 등반라인. 왼손 홀드가 좋은 좌향 직상 크랙 구간이어서 나는 우측으로 올랐다.
▲ '빡봉' 2피치 정상에서 후등자 확보를 보는 중엔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후드를 써야 했다.
▲ 정상인 2피치 앵커에서 하강 중이다.
▲ '빡봉' 1피치를 하강 중이다.
▲ 쉬운 멀티피치 하나를 더 올라보기로 하고 '아득가' 루트에 붙었다.
▲ 응달진 초반부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 '아득가' 1피치 앵커 위치가 좀 이상했다. 내 생각엔 정면의 직벽에 앵커가 있으면 좋을 듯한데, 평평한 바닥에 있었다.
▲ 새터암장의 슬랩 곳곳엔 자연스런 구멍 홀드들이 많아서 오르는 재미가 좋았다. 2주 전에 등반했던 월출산의 연실봉 암장과 비슷하다는 인상이었다.
▲ '아득가' 2피치 초반부를 등반 중이다. 크랙의 손홀드가 확실해 보여서 별 생각 없이 직벽에 붙었는데, 첫 볼트에 진입하기 직전 왼발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아래가 완만해서 큰 부상은 없었지만 왼쪽 뒷꿈치에 작은 타박상과 종아리 근육에 통증을 느껴서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등반사고는 일순간이고, 자연암벽에 쉬운 루트는 없다는 교훈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졌던 걸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 점심 후에 심기일전 하여 우벽의 '황피치박슬랩'에 붙어 보았다.
▲ 왼쪽 종아리의 통증을 참고 중간까지 올라 보았으나, 도저히 선등은 불가할 듯하여 후퇴하고 악우에게 선등을 부탁했다.
▲ 악우가 걸어준 로프에 의지해서 조심스레 올라보기로 했다.
▲ 톱로핑 상태에서는 왼발 쓰는 걸 자제하면서 등반하는 게 그런대로 가능했다.
▲ '황피치박슬랩' 루트의 크럭스는 앵커 직전의 페이스성 슬랩 구간이었다. 비록 톱로핑 상태였지만 종아리의 아픔을 참고 두 번째로 도전한 끝에 완등할 수 있었다. 다양한 동작과 아기자기한 홀드들이 이어지는 등반성 좋은 루트라는 인상을 받았다.
▲ '매직아이' 루트도 톱로핑으로 등반했다. 왼쪽 다리의 통증만 아니었다면 한층 더 재미 있게 올랐을 것이다.
▲ 종아리 통증을 참고 고통을 견디기 위해 샤우팅을 하면서 '매직아이' 루트를 완등했다는 만족감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이를 악물고 파이팅을 외치면서 오른 보람이 있었다.
▲ 중앙벽 앞의 아크릴 상자 안에는 풀린 볼트를 조일 수 있는 스패너가 들어있었다. 암장 개척자 분들의 애정어린 손길을 느낄 수가 있었다.
▲ 하산길에 다시 찾은 말용초폭포에서 손을 씼으니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 아담한 말용초폭포는 숨은 비경이었다. 폭포 하단의 연못은 여름철 천연 풀장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 좋은 계절에 새터암장을 꼭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 다음 방문 땐 용성골펜션에서 숙박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