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설악산 유선대 '이륙공천' - 2024년 8월 15일(목)

빌레이 2024. 8. 18. 11:37

광복절이 목요일인 덕택으로 직장인들은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4일 동안 연휴를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예년 같으면 무더위가 한풀 꺽일 시기지만 올 여름은 유난히 장마와 함께 폭염까지 지리하게 이어지는 형국이다. 수그러들지 않는 열대야와 폭염 탓을 하면서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다시 여름휴가를 떠난다 해도 뭐라 나무랄 수 없는 날씨의 연속인 것이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2학기를 준비해야 하므로 나도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가를 다녀오자는 심산으로 2박 3일 일정의 등반여행을 계획한다.

 

설악산과 울진에서의 등반이 포함된 이번 여행을 위해 암벽등반과 캠핑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챙겨서 새벽 3시 반에 집을 나섰다. 은숙, 성배, 은경, 이렇게 세 악우들을 픽업하여 속초로 향했다. 설악동 순두부 식당에서 가성비 낮은 조식을 해결하고, 7시 즈음부터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유선대 등반을 마치고 나면 다시 2시간을 더 달려 숙소인 불영계곡캠핑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자연스레 내 머리 속은 가능하면 시간을 지체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비선대에서 금강굴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에서 유선대로 가는 듯한 두 팀의 등반대를 만났다. 한 팀은 우리가 앞설 수 있었고, 우리 앞에 있던 다른 한 팀은 '그리움 둘' 루트로 오른다고 했다. 내심 다행이지 싶었다.

 

예상보다 이른 시각인 09시 30분 즈음에 우리팀이 일착으로 '이륙공천' 루트의 첫 피치에 붙을 수 있었다. 내가 선등하고, 첫 피치는 성배, 은경, 은숙 순으로 올랐다. 그 이후부터는 나, 은경, 성배, 은숙 순서로 등반했다. '이륙공천' 루트는 2년 전 가을에 즐겁게 올랐던 기억이 있어서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몸상태에 따라 등반의 난이도는 달라지는 법, 오늘은 그리 가볍지 않은 몸놀림으로 난이도 5.10a의 1, 2, 3 피치를 살짝 긴장하면서 올라야 했다. 개념도 상에 5.10d로 기록되어 있는 4피치 크랙 구간을 완벽한 자유등반 방식으로 돌파해 보자는 게 출발 전 마음 속에 품었던 목표였다. 내심 화이팅을 외치면서 첫 번째 크럭스 구간을 자신감 있는 손재밍 동작으로 올랐으나, 마지막 순간에 퀵드로를 잡고야 말았다. 그 이후 구간은 오히려 맘 편하게 두어 번 행도깅도 하고 적절히 인공등반 방식도 구사하면서 오를 수 있었다.

 

네 악우들이 모두 유선대 정상에 올라 설악의 절경과 동해 바다를 굽어 보면서 여유로운 점심 시간을 가진 게 오후 1시 반 즈음이다. 등반에만 4시간 정도가 소요된 것이다. 하산하면서 와선대에서 탁족하는 여유시간까지 가지면서 오후 4시 20분 쯤에 설악동을 떠나 울진으로 향했다. 죽변항에서 석식을 해결하고, 어둠이 내리기 전에 불영계곡캠핑장에서 텐트를 설치할 수 있었다. 밤에는 설악산에서 등산학교 강사를 마친 기범씨가 합류하여 청아한 계곡풍이 간간히 불어오는 야외 테이블에 5명의 악우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담소 나누면서  낭만 가득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달빛과 별빛이 유난히 총총한 밤하늘에 그윽한 커피향과 피로를 달래준 맥주의 시원함이 어울어진 우리들의 아름다운 밤이었다.               

 

▲ 설악동에서 07시 즈음부터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 비선대에서 올려다본 적벽엔 벌써부터 클라이머들이 붙어 있었다.
▲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향하는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고 있다.
▲ 09시 30분 즈음부터 '이륙공천' 루트에 붙었다. 1피치 초반부는 사선 크랙에서 밸런스 잡는 게 관건이다. 5.10a 난이도에 35미터 거리.
▲ 2피치 초반부를 등반 중이다. 2피치는 등반 궤적이 많이 꺽이기 때문에 알파인 퀵드로를 적절히 사용했다. 25미터 거리에 난이도는 5.10a.
▲ 2피치 중반부 이후부터는 언더 크랙과 발자리를 잘 찾아야 한다.
▲ 2피치 확보점부터는 전망이 열리기 시작한다. 염라길, 흑범길, 석주길 등의 루트가 확실하고, 왕관봉, 희야봉, 범봉으로 이어지는 천화대 릿지길이 선명히 보였다.
▲ 2피치 확보점에서 세 번째로 올라오는 성배씨를 확보 중인 모습이다.
▲ 3피치 초반부를 올라서고 있다. 2피치보다는 좀 더 완력을 요하는 크랙 구간이 나온다. 30미터 거리에 난이도는 5.10a.
▲ 3피치는 후반부의 직상 크랙을 올라서는 구간이 크럭스다.
▲ 라스트로 2피치를 등반 중인 은숙씨 아래로 다른 한 팀의 선등자가 1피치 확보점에 있는 모습이 보인다.
▲ 3피치 확보점에서 후등자 확보 중인 모습이다. 어프로치 때는 반바지로 착용하고 등반 시엔 긴바지로 변신할 수 있는 컨버터블 바지가 유용했다.
▲ 4피치 등반을 위해서는 바로 옆의 '유선D 변형' 루트 3피치 확보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좋다.
▲ 3피치 확보점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과 화채능선 주변의 풍광이 수려하다. 유선대 등반이 주는 선물이다.
▲ '이륙공천' 루트 전체 중에서 가장 어려운 4피치는 난이도 5.10d에 등반거리는 25 미터이다. 내심 자유등반 방식으로 완등하고 싶은 마음을 품었으나, 몸놀림이 가볍지 못했다. 첫 번째 크럭스 구간부터 퀵드로를 잡고야 말았다.
▲ 4피치는 전체적으로 쉽지 않은 크랙이 이어지는데, 서너 구간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두세 차례의 행도깅 후에 확보점에 안착하는 순간이다.
▲ 4피치를 위에서 내려다본 장면이다. 경사각이 쎈 벙어리성 크랙을 올라서는 게 만만치 않았다.
▲ 5피치는 25 미터 거리에 난이도는 5.9로 비교적 쉬운 구간이다.
▲ 5피치 확보점에 도착하면 사실상 어려운 구간은 모두 끝난다.
▲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가 연상되는 천불동 풍광이다.
▲장군봉, 권금성, 달마봉 너머로 동해 바다가 훤히 보인다.
▲ 5피치 후반부를 오르는 성배씨 뒤로 펼쳐지는 설악의 풍광이 가히 일품이다.
▲ 5피치 확보점 옆의 작은 소나무 그늘에서 한참을 쉬었다.
▲ 마지막 6, 7 피치는 연결해서 단 번에 올랐다. '그리움 둘' 루트와 겹치는 릿지 구간이다.
▲ 유선대 정상의 마지막 확보점에 도착한 순간.
▲ 하산길에 다시 마주한 천불동 주변의 풍광은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다.
▲ 와선대에서 탁족을 하는데 수많은 물고기들이 닥터피쉬처럼 발가락을 간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