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목요일인 덕택으로 직장인들은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4일 동안 연휴를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예년 같으면 무더위가 한풀 꺽일 시기지만 올 여름은 유난히 장마와 함께 폭염까지 지리하게 이어지는 형국이다. 수그러들지 않는 열대야와 폭염 탓을 하면서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다시 여름휴가를 떠난다 해도 뭐라 나무랄 수 없는 날씨의 연속인 것이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2학기를 준비해야 하므로 나도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가를 다녀오자는 심산으로 2박 3일 일정의 등반여행을 계획한다.
설악산과 울진에서의 등반이 포함된 이번 여행을 위해 암벽등반과 캠핑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챙겨서 새벽 3시 반에 집을 나섰다. 은숙, 성배, 은경, 이렇게 세 악우들을 픽업하여 속초로 향했다. 설악동 순두부 식당에서 가성비 낮은 조식을 해결하고, 7시 즈음부터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유선대 등반을 마치고 나면 다시 2시간을 더 달려 숙소인 불영계곡캠핑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자연스레 내 머리 속은 가능하면 시간을 지체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비선대에서 금강굴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에서 유선대로 가는 듯한 두 팀의 등반대를 만났다. 한 팀은 우리가 앞설 수 있었고, 우리 앞에 있던 다른 한 팀은 '그리움 둘' 루트로 오른다고 했다. 내심 다행이지 싶었다.
예상보다 이른 시각인 09시 30분 즈음에 우리팀이 일착으로 '이륙공천' 루트의 첫 피치에 붙을 수 있었다. 내가 선등하고, 첫 피치는 성배, 은경, 은숙 순으로 올랐다. 그 이후부터는 나, 은경, 성배, 은숙 순서로 등반했다. '이륙공천' 루트는 2년 전 가을에 즐겁게 올랐던 기억이 있어서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몸상태에 따라 등반의 난이도는 달라지는 법, 오늘은 그리 가볍지 않은 몸놀림으로 난이도 5.10a의 1, 2, 3 피치를 살짝 긴장하면서 올라야 했다. 개념도 상에 5.10d로 기록되어 있는 4피치 크랙 구간을 완벽한 자유등반 방식으로 돌파해 보자는 게 출발 전 마음 속에 품었던 목표였다. 내심 화이팅을 외치면서 첫 번째 크럭스 구간을 자신감 있는 손재밍 동작으로 올랐으나, 마지막 순간에 퀵드로를 잡고야 말았다. 그 이후 구간은 오히려 맘 편하게 두어 번 행도깅도 하고 적절히 인공등반 방식도 구사하면서 오를 수 있었다.
네 악우들이 모두 유선대 정상에 올라 설악의 절경과 동해 바다를 굽어 보면서 여유로운 점심 시간을 가진 게 오후 1시 반 즈음이다. 등반에만 4시간 정도가 소요된 것이다. 하산하면서 와선대에서 탁족하는 여유시간까지 가지면서 오후 4시 20분 쯤에 설악동을 떠나 울진으로 향했다. 죽변항에서 석식을 해결하고, 어둠이 내리기 전에 불영계곡캠핑장에서 텐트를 설치할 수 있었다. 밤에는 설악산에서 등산학교 강사를 마친 기범씨가 합류하여 청아한 계곡풍이 간간히 불어오는 야외 테이블에 5명의 악우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담소 나누면서 낭만 가득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달빛과 별빛이 유난히 총총한 밤하늘에 그윽한 커피향과 피로를 달래준 맥주의 시원함이 어울어진 우리들의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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