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트레킹 112

[2023 스위스 알프스 #2] 랑플루(Längfluh, 2870m) - 8월 7일(월)

어제 저녁 때 사스페에 도착해서 하룻밤이 지났다. 오늘은 처음으로 트레킹에 나서는 날이다. 새벽에 잠이 깨어 창문 밖을 열어보니 벌써부터 스키를 둘러메고 숙소를 나서는 한 무리의 스키어들이 보인다. 7시 30분부터 제공되는 조식 시간에 앞서 숙소 근처의 사스페 거리를 잠시 둘러 보았다. 만년설에서 스키를 즐기려는 스키어들과 알파인 등반에 나서는 복장의 클라이머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활기찬 발걸음으로 분주하게 골목길을 오가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어 보였다. 다른 한편으론 알프스의 고봉들에 둘러싸인 깊은 산골마을에서는 여명이 밝아올 무렵부터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할 수 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한 농부였던 부모님께서 늘 그랬던 것처럼. 인간들이 약속한 출퇴근 시간이 지정되어 있는 도시와 달리..

해외트레킹 2023.08.20

[2023 스위스 알프스 #1] 사스페(Saas-Fee) 입성 - 8월 6일(일)

기나긴 여정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를 거쳐 스위스 제네바에 이르는 이번 여행에서 나는 처음으로 카타르항공을 이용했다. 비행기는 토요일 자정을 넘긴 8월 6일 01시 30분에 예정대로 출발했다. 중간 기착지인 도하국제공항까지 10시간 15분 동안 깊은 밤을 날아갔다. 도하국제공항은 '2022 FIFA World Cup Qatar'를 성공리에 마무리한 나라의 관문답게 예상보다 화려하고 규모가 거대했다. 환승을 위한 대기 시간은 3시간 10분이었는데, 실내 공원까지 갖춰진 작은 타운 같은 공항 시설 덕택에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도하에서 08시 5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로 갈아타고, 6시간 25분 동안을 날아서 제네바공항에 도착한 때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린 현지 시간으로 오후 2시 20..

해외트레킹 2023.08.19

[2023 스위스 알프스 - 프롤로그] 호모 비아토르 - 2023년 8월 5일(토)

내 서재의 책상 위에는 항상 읽고 싶은 책들 서너 권이 굴러 다닌다. 언젠가부터 짬이 날 때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눈에 들어오는 책을 집어들고 조금씩 읽어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독서에 대한 지구력이 많이 떨어진 탓도 있고, 시력이 안 좋아진 까닭도 한 몫 했다. 요즘엔 선뜻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완독하지 못한 책들이 장기간 동안 책상 위에 방치되고 있는 중인데, 그 중 하나가 이다. 소설가 김영하 씨가 쓴 산문집이다. 밤 비행기에 올라 스위스로 출국하는 오늘 아침에 온라인 체크인을 하고 보니 이 책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 전에 표시해 두었을 책갈피는 란 꼭지의 글을 가리키고 있다. 다음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

해외트레킹 2023.08.05

두브로브니크 스르지산(Mount Srđ, 412m) - 2023년 7월 12일(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대학에서 5일 동안 열린 학회 일정 중에서 수요일 오후는 세션이 하나 뿐이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할 수 있으니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한 첫 날부터 눈여겨 봐 두었던 스르지(Srđ)산에 올라보기로 했다. 썸머타임 기간이라 밤 9시 무렵까지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데 지장이 없으니 일몰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오후 4시 무렵에 올드타운 인근의 학회장 문턱을 나섰다. 해외에서 산행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광제도 함께 따라 나섰다. 멀리서 산 정상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를 올려다 보면서 등산로를 대충 가늠해 보았다. 사전에 구글 검색을 통해서 등산로 정보를 조사했더라면 조금은 편하게 산으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으로 온 낯선 이국..

해외트레킹 2023.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