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대둔산 구조대길 등반 - 2014년 5월 17일

빌레이 2014. 5. 18. 06:32

대둔산 바윗길이 생각나 한 번은 다녀오고 싶었다. 자연 암벽에서 등반을 즐겨야 비로소 등반다운 등반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을 같이 하는 이들 중 몇몇은 운동으로서의 클라이밍만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스포츠클라이밍은 자연 암벽에서 좀 더 어렵고 멋진 루트를 안전하게 등반하기 위한 트레이닝의 성격이 더 강하다. 그간 실내 암장에서 꾸준히 운동해오던 나의 몸 상태와 등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곳도 인공 암벽이나 클라이밍 대회가 아닌 아름다운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암벽이다. 실전 격인 자연 암벽에서 안전하고 즐겁게 즐길 수만 있다면 나의 스포츠클라이밍을 통한 훈련은 성공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에 다녀온 대둔산 등반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이보다 더 좋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느 것 하나 좋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다섯 명의 자일파티가 내 차에 동승하여 세 시간여를 달려 대둔산의 용문골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9시 반 즈음이다. 차를 놓아둔 도로 가는 뙤약볕이 내리쬔다. 어프로치를 하기 위해 숲으로 한 발 들어서니 딴 세상이다. 울창한 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시원한 그늘 속의 오솔길이 이어진다. 용문골 계곡을 따라 신선암 방향으로 오른다. 구조대길 등반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최소한 앞 팀으로 인한 정체 현상은 겪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기분이 좋다. 우리 팀이 장비를 거의 다 착용할 무렵 예닐곱 명으로 구성된 팀이 올라온다. 우리가 30분만 늦었어도 피치 중간에서의 정체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금 일찍 서두른 보람이 있다. 뒤에 오는 팀에게 기다리는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하여 서둘러 등반에 나선다. 은경이가 선등자 빌레이와 라스트를 맡고 영신이 형, 유집사님, 박교수님 순서로 등반한다.

 

첫째 마디는 홀드 양호한 5.7급의 구간이다. 첫 볼트를 넘어설 때만 주의하면 그리 어려운 곳은 없다. 둘째 마디인 석이바위는 두 개의 코스가 있다. 먼저 직상하는 루트에 붙어본다. 두 번째 볼트에서 세 번째 볼트를 오르는 과정에서 손홀드가 믿음직스럽지 못 하다. 전반적으로 오버행인 구간이라 알파인 레더를 이용하여 인공 등반을 한다면 돌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버행에 익숙치 않은 후등자들 때문에 정체 현상을 빚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왼쪽으로 돌아가는 루트를 택하기로 결정한다. 안전하고 즐거운 등반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조금 무리하다 싶은 도전은 아껴두기로 한 것이다. 돌아가는 루트에도 위험 요소는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피치를 두 번 짧게 끊어서 안전하게 등반한다. 우리 다섯 명이 모두 둘째 마디를 완료할 때 즈음 해서야 비로소 다음 팀의 선등자가 첫 피치 확보점에 나타난다.

 

셋째 마디는 디에드르 크랙 형태로 구성된 직벽이다. 후등하면서 오를 때는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선등하면서 보니 중간에서 몸이 크랙 쪽으로 붙는 바람에 스탠스가 양호하지 않다. 약간의 애를 먹었지만 무사히 완료한다. 세 마디를 끝내고 나타나는 안부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대둔산의 멋진 풍광이 온전히 열리기도 하는 이 곳에서의 휴식은 달콤하다. 앞으로 이어질 구간의 중간에 버티고 서있는 천년솔의 자태는 여전히 멋지다. 넷째 마디인 천년솔바위를 쉽게 넘어서니 직벽 중간에 붙어야 하는 다섯째 마디 출발점이 나타난다. 첫 볼트 아래가 낭떨어지라서 고도감이 상당한 곳이다. 첫 볼트 클립 이후 손홀드 찾기에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예전보다는 어렵지 않게 돌파한다.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연습한 동작들이 자연스레 적용되는 듯한 몸놀림과 발동작이 등반의 자신감을 심어준다.

 

여섯째 마디는 개념도 상에 5.10c 난이도로 표시되어 있는 한둔바위를 오르는 루트이다. 우리 팀이 자유등반으로 오를 수 있는 실력은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알파인 레더와 슬링을 이용한 인공등반으로 돌파한다. 볼트 간격도 촘촘해서 인공등반을 안전하게 연습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구조대길이 개척될 당시에는 한둔바위 정상에서 맞은편 절벽 사이를 쇠줄로 연결하여 티롤리안 브릿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놓았으나 지금은 제거되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 한둔바위에서 자일 하강하여 비교적 쉬운 일곱째 마디로의 등반을 이어간다. 여덟째와 아홉째 마디는 그리 어렵지 않은 구간이다. 아홉째 마디를 등반하고 20 미터를 자일 하강하니 구조대길 정상인 심마니 바위가 나타난다. 열번 째와 열한번 째 마디가 있는 곳이다. 열번 째 마디를 쉽게 올라서서 약간의 오버행을 이루고 있는 마지막 마디의 첫 볼트를 넘어서 끝까지 신중하게 등반하여 마지막 확보점에 안착한다.  

 

등반을 끝내고 심마니 바위의 정상 바로 아래의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암벽화를 벗은 채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뒤따라 오는 팀의 진행 속도는 우리 팀에 비해 상당히 더딘 것 같다. 라스트를 맡은 은경이의 말에 의하면 우리 다음 팀의 뒤에도 십여 명으로 구성된 팀이 뒤따르고 있다고 한다. 대둔산의 여러 바윗길 중에서도 구조대길이 인기가 높은 편인 것 같다. 한둔바위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5.7에서 5.9의 난이도를 보이는 구조대길은 다양한 형태의 등반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풍광 또한 으뜸이다. 산악구조대에서 개척한 바윗길 답게 볼트 상태가 좋고 정기적으로 유지 보수한 흔적이 있어서 안전한 등반을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암벽길 개척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로 바윗꾼들의 사랑을 받는 루트로 자리 잡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헌신적인 손길이 있었을 것이다. 이름 모를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바이다.

 

구조대길 선등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등으로 올랐다는 사실보다는 여유롭고 편안한 상태에서 자일파티 모두가 안전하고 즐겁게 등반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훨씬 크다. 그간 열심히 운동해서 가벼워진 몸 상태와 무리하지 않고 침착하게 바위를 대할 수 있는 마음 가짐이 안전하고 편안한 등반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산바람 속에 시원한 날씨와 마찰력 좋은 바위 표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 멀리 벗어나 한적함이 묻어나는 산 주변의 풍경과 맑은 공기는 자일파티 모두에게 대자연에 안길 때 느껴지는 평화로움과 안식을 주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도로사정까지 평소의 주말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원활한 흐름을 보였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해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등반이었다.     

 

 

1. 셋째 마디인 디에드르 크랙을 오르고 있다.

 

 

2. 첫째 마디는 첫 볼트를 넘어설 때 주의해야 한다.

 

 

3. 둘째 마디인 석위바위 전경. 우측의 직등 루트를 버리고 좌측으로 돌아가는 루트로 올랐다.

 

 

4. 석이바위를 좌측으로 돌아가는 루트를 오르고 있다.

 

 

5. 우리 팀 전원이 둘째 마디를 완료한 이후에야 다음 팀의 선등자 모습이 보인다.

 

 

6. 셋째 피치를 완료하고 후등자 확보 중이다.

 

 

7. 셋째 마디를 완료한 후 안부에서 바라본 풍경. 앞으로 가야할 구조대길 루트이다.

 

 

8. 넷째 마디 중간의 천년솔 아래를 통과 중이다.

 

 

9. 다섯째 마디 출발점에서 은경이가 선등자 빌레이를 준비 중이다.

 

 

10. 다섯째 마디의 직벽 구간을 선등 중이다.

 

 

11. 여섯째 마디인 한둔바위 첫 볼트에 알파인 레더를 설치하고 등반 중이다.

 

 

12. 한둔바위를 올라서고 계신 박교수님. 이제는 여유있게 등반을 즐기신다.

 

 

13. 일곱째 마디를 등반 중인 영신이 형. 그간 대상포진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14. 아홉째 마디 중간의 세로 크랙을 등반 중이다.

 

 

15. 아홉째 마디에서 20 미터 하강을 준비하는 중이다.

 

 

16. 열번째 마디인 심마니 바위 초반부를 등반 중인 은경이. 선등자 빌레이와 라스트의 궂은 일을 맡은 살림꾼이다.

 

 

17. 마지막 열한번 째 마디를 오르고 있다. 끝까지 집중해서 등반한다.

 

 

18. 심마니바위 정상 아래의 소나무 그늘에 둘러 앉아 편안한 휴식을 즐긴다.

 

 

19. 구조대길 정상으로 향하는 일행들.

 

 

20. 심마니바위 정상에서 남자들의 기념사진. 유집사님은 사진사로 수고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