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대둔산 양파A길 등반 - 2014년 10월 3일

빌레이 2014. 10. 5. 07:50

나들이 하기 좋은 호시절에 개천절이 금요일인 황금 연휴의 시작이다. 방송에서는 이번 연휴 때 강원도로 향하는 영동고속도로의 교통량이 대단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다. 단촐하게 남쪽의 대둔산에서 한적한 등반을 즐기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서울을 출발한다. 기송 형님과 은경이가 내차에 동승하여 1박2일의 오붓한 등반을 계획하고 길을 나선 것이다. 이른 시각인데도 중부고속도로 호법 분기점에서 강원도 방향의 정체가 눈에 들어온다. 설악산 바윗길도 초만원을 이룰 것이라 생각하면서 설악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 본다. 음성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예약해둔 숙소인 대둔산장을 향해 달린다.

 

산장 옆마당에 주차하고 곧바로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오르기로 한다. 동심정 휴게소의 석축에서 좌측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간다. 양파A와 솔봉이길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행하여 능선길에 올라서자 울산에서 왔다는 네 명이 쉬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양파길 위치를 묻는다. 우리는 쉬지 않고 그들을 지나쳐서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오른다. 대둔산 산악구조대에서 양철판에 깔끔하게 그려 놓은 양파A길의 개념도가 정면에 보인다. 개념도가 붙어 있는 바위를 올라서서 평평한 곳이 양파길 출발점이다. 장비를 착용하고 출발하기 전에 바로 뒤에 따라오신 울산팀의 리더 분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드린다. 그분들은 연휴 3일 내내 대둔산 일원에서 등반을 할 예정이고 오늘도 양파B길까지 이어서 간다고 하신다. 그들의 조바심을 눈치 채고 기송 형이 순서를 양보해 드린다. 우리는 바쁠 것이 없기 때문에 차분한 등반을 위해서는 서로에게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다.

 

울산팀이 첫 피치를 올라간 후 기송 형이 선등에 나선다. 내가 쎄컨과 선등자 빌레이를 맡고 은경이가 라스트와 촬영을 담당하기로 한다. 7월 중순에 순욱이 형이 포함된 네 명이 노적봉 등반에서 줄을 묶은 후에 기송 형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등반을 거의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짧은 직벽으로 이루어진 첫 피치를 올라서는 기송 형의 몸놀림이 예전 같지 않게 무거워 보인다. 내가 붙어보니 첫 볼트가 있는 우측 페이스에서 홀드 찾기가 만만치 않다. 미세한 손홀드를 움켜쥐고 올라서서 좌측으로 진행하니 든든한 홀드가 잡힌다.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의 첫 피치는 항상 까다롭기 마련이다. 첫 피치 위의 바위는 평상 같은 마당바위로 전망이 좋다. 둘째 피치의 페이스에 붙어있는 울산팀의 모습도 한 눈에 들어온다. 짧게 자일하강 하여 둘째 피치 출발점으로 이동한다.

 

둘째 마디는 15미터 길이의 페이스로 개념도에는 난이도 5.10a로 표시되어 있다. 첫 볼트는 어찌된 일인지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나중에 내려와서 기송 형이 알고 지내는 구조대 분에게 알아보니 최근에 볼트가 빠지는 사고가 있은 후 아직 보수가 안 된 상태라고 한다. 기송 형이 좌측의 침니로 올라서서 둘째 볼트에 클립한 다음에 한참 동안 전진하지 못한다. 밑에서 빌레이 보면서 올려다 보아도 적당한 홀드가 잘 보이지 않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우측의 우회로로 올라서서 확보점에 자일을 고정한다. 나는 슈퍼베이직을 장착하고 등반에 나선다. 두번째 볼트 이후에서는 적당한 발홀드 찾기가 힘들다. 어렵사리 좌측의 칸테에 확실한 손홀드가 잡혀서 등반을 마칠 수 있었다. 둘째 피치 종료 지점에서 피너클 지대 같은 날등을 타고 가다가 20여 미터 길이의 오버행 하강을 한다.

 

셋째 마디도 5.10a 난이도를 보이는 직벽이다. 기송 형이 12미터 길이의 페이스를 힘겹게 올라선다. 턱진 홀드 세 개가 비교적 확실하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서 만만치 않다. 은경이까지 셋째 마디를 종료하고 넷째 마디의 출발점인 테라스에서 간식을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오랜만의 등반에 기송 형은 힘겨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넷째 마디는 아래에서 보면 세로로 길게 뻗은 크랙에 홀드가 양호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도 직벽에 가깝고 피치 말미 부분의 볼트는 선등자에게 부담스러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처음의 세 마디보다는 쉽게 올라설 수 있다. 다섯째 마디는 상대적으로 가장 쉬운 구간이어서 부담 없이 등반할 수 있고 10미터 하강하면 마지막 피치의 출발점이다. 등반을 종료하면 마지막 피치를 하강하여 다시 다섯째 마디로 올라서서 하산하는 것이 빠르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하강한 다섯째 마디를 다시 올라가는 구간에 볼트 하나가 박혀 있다.

 

마지막 여섯째 마디는 전반적으로 오버행을 이룬 페이스에 세로로 길게 뻗어내린 크랙이 등반선이다. 디에드르 형태를 이룬 바위턱을 올라서서 나오는 넓은 테라스에서 등반을 시작한다. 벽의 기울기가 오버행을 이루고 있기 때문인지 선등에 나서는 기송 형이 두번째 볼트에 클립하기 위한 동작에서 애를 먹는다. 오랫 동안 등반을 쉰 몸으로 쉽지 않은 다섯 마디를 선등하느라 체력을 소모한 형이 몇 번의 시도 끝에 내려와서 선등을 나에게 양보한다. 기송 형을 쉬게 하고 은경이에게 빌레이를 맡긴 후 벽에 붙어본다. 그간 쎄컨으로 부담없이 올라오면서 체력을 비축한 덕택인지 손홀드를 잡고 올라서는 팔 근육이 견딜만 하다는 느낌이다. 크랙에 캠을 설치하면서 천천히 한 동작씩 전진하다 보니 어느새 확보점이다. 빌레이 보는 은경이의 조언을 받으면서 크랙 좌우의 홀드들을 찾은 것이 안전하게 등반을 마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팔의 완력이 필요한 구간에서 비교적 여유 있게 올라설 수 있었던 건 평소에 암장에서 꾸준히 운동한 덕택일 것이다. 5.10a의 짭짤한 난이도를 보이는 이 구간을 우리 세 사람의 협동심으로 돌파했다는 것이 등반의 만족감을 더욱 높여 주었다.

 

양파A길 등반을 마친 시각이 그대로 하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에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로 이어지는 정상 능선을 따라 워킹 산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우리를 앞서서 갔던 울산팀이 등반 중인 양파B길 루트 좌측에 있는 너덜지대를 거슬러 오르는 과정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개척하는 것이어서 야생에서의 모험을 즐기는 재미가 있다. 정상 능선을 걸으면서 평온한 가을산의 오후를 만끽하고 있노라니 등반의 피곤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천대 정상에서 금강구름다리를 거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여 기송 형의 지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멋진 뒷풀이를 가진다. 인삼튀김과 더덕무침이 곁들어진 더덕동동주의 오묘한 맛은 뜻깊은 추억 한 조각을 우리들 가슴 속에 새겨 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 양파A길 첫 마디. 첫 볼트 클립 이후 좌측의 칸테로 오르면 양호한 홀드가 잡힌다.

 

 

 

▲ 동심정 휴게소를 향해 오르고 있다.

 

 

 

▲ 동심정 휴게소 입구의 축대에서 좌측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오르면 만나는 이정표.

 

 

 

▲ 양파A길 첫 마디에 올라서면 갑자기 전망이 확 트인다.

 

 

 

▲ 첫 마디 확보점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둘째 마디를 울산팀이 등반 중이다.

 

 

 

▲ 둘째 마디에서 기송 형이 새로운 장비인 패닉을 사용해보고 있다.

 

 

 

▲ 슈퍼베이직을 착용하고 둘째 마디를 등반하고 있는 중이다.

 

 

 

▲ 둘째 마디 확보점을 지나서 이어지는 피너클 지대에는 멋진 소나무가 천연 분재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 셋째 마디도 페이스 등반이다.

 

 

 

▲ 넷째 마디는 아래에서 보면 홀드가 많을 것 같은데 후반부에 약간 까다로운 구간이 있다.

 

 

 

▲ 다섯째 마디는 상대적으로 쉬운 구간이다.

 

 

 

▲ 다섯째 마디를 등반한 후 10미터 정도의 자일 하강을 해야 한다.

 

 

 

▲ 마지막 마디는 일단 첫번째 짧은 턱을 올라선 후에 본격적인 등반이 이루어진다.

 

 

 

▲ 마지막 마디는 전반적으로 오버행을 이루고 있는 구간이다. 

 

 

 

▲ 세로로 길게 뻗어내린 크랙이 여섯째 마디의 등반 루트이다.

 

 

 

▲ 여섯째 마디를 올라서서 후등자 확보 중이다.

 

 

 

▲ 다섯째 마디까지 선등을 하느라 체력이 소진된 기송 형이 라스트로 마지막 마디를 올라서고 있다.

 

 

 

▲ 양파A길 정상에서 기송 형과 함께 인증 샷을 남긴다.

 

 

 

▲ 양파A길 정상에서 하늘금으로 향하는 양파B길을 등반 중인 울산팀의 모습이 보인다.

 

 

 

▲ 양파B길 위의 정상능선에서 아래를 조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