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천등산 <어느 등반가의 꿈> 등반 - 2015년 10월 9일

빌레이 2015. 10. 11. 09:49

금요일인 한글날 새벽 4시경에 집을 나선다. 나들이 하기 좋은 단풍철에 찾아온 3일간의 연휴에 교통정체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른 시각에 서울을 빠져나가야 한다. 중간의 휴게소에서 토막잠으로 부족한 잠을 달래가면서 대둔산으로 향한다. 간밤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새로운 바윗길을 가게될 날의 전야는 자잘한 생각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다. 심야 시간에 생중계 된 쿠웨이트와 우리 국가대표팀 간의 월드컵 축구 예선 경기를 시청한 것도 잠 못드는 데에 한 몫을 했다.

 

추부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대둔산의 배티재를 넘는다. 기암괴석과 서서히 물들고 있는 단풍이 어우러진 수려한 풍광이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빛나는 얼굴로 우리를 반긴다. 언제봐도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한폭의 동양화 같은 그 풍경 속에는 장시간의 운전으로 쌓였을 나그네의 피로를 일시에 날려버리는 힘이 깃들어 있다. 대둔산 입구를 지나쳐 천등산의 하늘벽이 마주보이는 길가의 주차장에 차를 남겨두고 괴목동천을 건너 곧바로 등반로에 접어든다.      

 

천등산 '어느 등반가의 꿈(이하 꿈길)'은 지난 봄에 대둔산의 솔봉이길을 등반한 다음 날 오르려고 계획 했었지만 비 때문에 아껴 둘 수 밖에 없었던 바윗길이다. 꿈길 개념도가 새겨진 동판 앞의 평평한 곳에서 장비를 착용한다. 동판이 있는 곳은 '물음표(?) 필요해' 코스의 출발점이고 꿈길 첫 피치는 동판에서 좌측 위로 보이는 오버행 벽에 슬링이 걸려있는 곳이다.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첫 피치의 선등에 나선다. 우리 팀 뒤로는 부산에서 오셨다는 5명의 팀이 막 도착해 있다. 첫 피치는 등반 거리 35미터에 난이도 5.10으로 기록되어 있다. 슬링이 걸려 있는 오버행 부분을 자유등반 방식으로 오른다면 약간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간밤에 살짝 내린 비 때문에 물이 흐르고 있어서 슬링에 의지해 인공으로 오르니 별다른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둘째 피치는 홀드 양호한 구간으로 즐겁게 오를 수 있다. 난이도 5.9에 40미터 거리이다. 약간의 안자일렌 구간을 통과해서 꿈길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셋째 피치가 시작되는 확보점에서 위를 올려다 본다. 처음엔 직벽으로 우람하게 솟아있는 바위가 다소 위압적으로 다가왔으나 루트를 차분히 살펴보니 오를 수 있을 듯한 도전의식이 생긴다. 개념도 상에는 중간에 파란색 슬링이 걸려 있어서 인공등반이 가능한 부분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슬링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 화이팅을 외치며 난이도 5.11에 등반 길이 30미터인 셋째 피치를 출발한다. 처음 4개의 볼트까지는 그런대로 괜찮다. 다섯 번째 볼트에 클립하기 위해서 퀵드로에 슬링을 설치하고 인공으로 올라선다. 이 지점에서는 고도감도 상당하다. 우측 날등의 홀드가 좋기는 하지만 과감하게 날등으로 붙기는 쉽지 않다. 크럭스를 지나면 나머지 두 개의 볼트는 홀드가 양호하다.

 

셋째 피치 확보점에서는 등반의 성취감과 함께 시원하게 열리는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기가 아찔하고 다리가 떨릴 정도로 고도감이 느껴진다. 후등자 확보를 위해서 피치 출발점을 내려보고 있으니 약간의 오버행처럼 굴곡진 형태의 직벽이다. 우측 벽으로는 우리와 나란히 '?필요해' 루트를 등반하고 있는 대전팀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하늘벽 중간에 여러 명의 클라이머들이 개미처럼 붙어있다. 공휴일을 맞이하여 아침 일찍부터 등반을 즐기는 클라이머들의 열정으로 활기찬 기운이 감도는 천등산 암벽이다. 넷째 피치는 첫 크럭스 구간인 셋째 피치를 넘어선 이들의 긴장감을 완화시켜 주는 듯 즐겁게 넘어설 수 있는 구간으로 난이도 5.9에 40미터 길이다.

 

꿈길 루트 중 가장 어렵다는 다섯째 피치는 출발부터 까다롭다. 넷째 피치의 확보점인 쌍볼트에서 좌측 11시 방향으로 보이는 첫 번째 볼트에 클립하는 것이 보기보다 쉽지 않다. 침니 좌측의 오버행 벽에 아래로 흐르는 형태의 손홀드 때문에 자세가 안정적이지 못하다. 할 수 없이 패닉을 이용해서 클립하고 인공으로 올라선다. 턱을 넘어서면 우측 직벽 중간에 슬링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빌레이어의 시야 확보가 어려울 듯하여 직벽 밑에 임시 확보점을 만들어 확보자를 올라오게 한다. 직벽은 슬링을 잡고 인공으로 올라선 다음부터가 까다롭다. 적절한 홀드 찾기가 어려워 중간에 쉬면서 세밀하게 루트를 관찰한다. 머리 위로 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걸리는 홀드가 만져진다. 여기에 두 손을 지탱하고 든든한 빌레이를 믿으면서 발홀드 없이 팔의 힘 만으로 과감하게 올라챈다. 나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힘들고 어렵게 느껴진 구간이다. 이후로 확보점까지는 홀드 양호한 크랙이 이어진다.

 

다섯째 피치에 올라서면 사실상의 등반은 끝난다. 여섯째 마디는 안자일렌 구간으로 쉽게 올라 설 수 있다. 등반을 마치고 정상의 평상 같은 바위에 앉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예전에는 올라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난이도의 루트를 안전하고 즐겁게 등반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성실하게 운동해서 몸을 만들고 겸손한 마음 자세로 등반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긴장감 높은 바윗길도 즐겁게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꿈길은 하강 루트도 깔끔하다. 60미터 자일 한 동으로 30미터씩 세 번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하강이 즐겁다. 하강까지 모든 등반을 안전하게 마무리하고 괴목동천의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면서 만끽하는 여유로움은 그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꿀맛 같은 것이다. 지금의 내가 가진 몸 상태로 하루 아침에 등반 능력이 향상될 수는 없다. 꾸준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요즘이다. '어느 등반가의 꿈'은 나에게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의 즐거움을 각인시켜 준 소중한 바윗길로 기억될 것이다.                                 

 

 

▲ 꿈길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30미터 직벽 구간인 셋째 피치를 등반 중이다.

 

 

▲ 사진 중앙부의 날등이 '어느 등반가의 꿈' 릿지길이다. 하강 루트는 좌측 벽이다.

 

 

▲ 꿈길 개념도가 그려진 동판 앞에서 장비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 동판 앞에서 좌측으로 올려다보이는 난간에서 등반을 시작한다.

 

 

▲ 첫 피치 오버행 구간엔 슬링이 걸려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물기가 있어서 주의가 필요했다.

 

 

▲ 슬링을 이용하면 오버행은 비교적 쉽게 넘어설 수 있다.

 

 

▲ 둘째 피치는 홀드 양호한 구간이 이어진다.

 

 

▲ 둘째 피치 후반부는 안자일렌 구간으로 걸어서 갈 수 있다.

 

 

▲ 셋째 피치 등반 중에 예전엔 슬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간에서 쉬면서 루트를 살피는 중이다. 

 

 

▲ 셋째 피치 확보점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 우측으로는 '?필요해' 루트를 우리와 나란히 등반 중인 대전팀이 보인다.

 

 

▲ 넷째 피치를 등반 중이다. 홀드 양호하고 쉬운 구간이지만 우측으로 붙으면 까다롭고 좌측이 좋다.

 

 

▲ 다섯째 피치 출발점으로 침니 좌측으로 보이는 오버행 턱을 넘어서야 한다.

 

 

▲ 다섯째 피치 첫 볼트에 클립하는 것이 보기보다 까다로웠으나 후등자는 홀드를 잘 찾아서 쉽게 올라왔다고 한다.

 

 

▲ 다섯째 피치는 슬링을 올라선 이후 구간이 더 어려웠다.

 

 

▲ 다섯째 피치의 직벽 앞에서 넷째 피치 마지막 구간을 본 모습이다. 

 

 

▲ 우측으로 보이는 하늘벽에도 여러 명의 클라이머들이 붙어 있는 게 보인다.

 

 

▲ 다섯째 피치 확보점에서는 꿈길 루트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우리 뒤에 올라오신 부산팀의 모습도 보인다.

 

 

▲ 다섯째 피치를 등반하면 사실상의 등반은 종료된다. 여섯째 피치는 걸어서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 정상의 볼트에 하강용 고리가 설치되어 있지만 클라이밍 다운으로 소나무까지 내려가서 하강을 시작해도 무방하다.

 

 

▲ 등반성 좋은 꿈길 릿지는 하강 루트도 깔끔하다.

 

 

▲ 60미터 자일 한 동으로 30미터씩 세 번에 걸쳐서 하강하면 된다.

 

 

▲ '어느 등반가의 꿈' 릿지길 바로 좌측에서 나란히 이어지는 '세월이 가면' 루트를 등반 중인 클라이머가 보인다.

 

 

▲ 등반을 마치고 괴목동천의 맑은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것은 천등산 등반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