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에서 가장 길다는 솔봉이길 등반에 나선다. 작년의 양파길 등반 때 어프로치를 하면서 생각해둔 곳이다. 동심정 휴게소의 석축 앞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양파길과 솔봉이길 표지판이 나란히 박혀있다. 이곳을 지나 안부에 올라서서 능선을 따라 우측으로 올라가면 양파길이다. 계속 직진해서 능선 왼쪽 사면을 따라 내려가면 '솔향기 그윽한 일봉길' 동판이 보이고 그 아래쪽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산죽이 우거진 솔봉이길 출발점이 나온다. 일봉길 동판을 지나서 우측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짧은 알바를 했으나 곧바로 솔봉이길 동판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들 앞에서 어프로치를 하던 팀과 같이 솔봉이길에 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은근히 걱정했으나 그들이 일봉길 동판 앞에 모여 있어서 다행이지 싶었다.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사이에 주말이 낀 덕택에 월요일 하루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인들은 5일간의 연휴를 즐길 수 있는 기간이다. 봄의 향연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호시절인지라 나들이객들로 도로가 붐빌 것이란 예상으로 새벽에 서울을 탈출하기로 한다. 서초동의 한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일행들 모두가 만난 때가 새벽 5시다. 내차에 네 사람이 동승하여 서울을 빠져나간다. 이른 시각인데도 고속도로는 차들이 평소의 주말 시간보다 많아 보인다. 죽암휴게소에서 간단히 조식을 해결하고 예약해둔 숙박 장소에 주차한 후 곧바로 산으로 향한다. 오늘은 기송이 형, 한변호사, 은경, 나, 이렇게 네 명이 서로 자일을 묶게 된다. 천등산 '어느 등반가의 꿈길'과 함께 1박 2일의 등반을 계획하여 첫째 날은 기송 형과 한변호사가 앞장서고, 다음 날은 은경이와 내가 리드하는 것으로 잠정적인 약속을 한다.
솔봉이길 동판 앞에서 장비 착용을 마치고 기송 형이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한 때는 9시 15분 즈음이다. 날씨는 쾌청하고 솔봉이길에 우리 네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으니 여유로움 속에서 온전히 등반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첫째 마디는 난이도 5.9에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경사가 센 구간이다. 다행히 홀드들이 양호하고 바위 표면의 돌기도 살아 있어서 약간의 긴장감 속에 몸풀기로 오르기 적당한 수준이다. 기송 형이 선등해서 자일을 고정하면 쎄컨을 맡은 내가 자일 한 동을 달고 슈퍼베이직으로 올라선 후, 한변호사와 은경이는 각각 자일 하나씩의 끝을 묶고 나와 기송 형의 간접 빌레이를 받으며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오르는 방식으로 등반한다. 60 미터 자일 두 동으로 시간을 절약하면서 네 사람이 효율적으로 등반하기에 적절한 등반 시스템이다.
넷째 마디까지는 5.9에서 5.10a급의 난이도로 적절한 긴장감 속에서 등반에 집중할 수 있는 구간이 연속된다. 마디의 길이도 모두 20 미터가 넘어서 제법 쏠쏠한 재미가 느껴진다. 오월의 하늘은 푸르다. 봄볕은 따갑지만 시원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주는 날씨 또한 더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다. 쉽게 걸어서 오를 수 있는 다섯째 마디를 올라서니 독립봉 앞에 제법 멋들어진 돌탑이 서있다. 이곳의 그늘진 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독립 암봉 우측 벽을 오르는 여섯째 마디부터는 한변호사가 앞장선다. 기송 형이 라스트로 빠져서 체력을 비축하고 등반 시스템은 계속 동일하게 유지한다. 네 사람이 독립봉에 올라서서 확 트인 주변 풍광을 감상한다. 삼선계단을 오르는 일반 산객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온다. 솔봉이길과 양파길 사이의 암릉인 일봉길을 오르는 팀의 등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어프로치 할 때 만났던 팀으로 경기도 이천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이들이다. 독립봉에서 자일 하강 후 일곱째 마디는 걸어서 오르고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서 잠시 걷다가 새롭게 이어지는 여덟째 마디 앞에서 숨을 고른다.
솔봉이길 제7피치에서 8피치로 이어지는 모습이 마치 양파A길과 B길이 이어지는 모양새와 흡사하다. 후반부인 8피치부터 11피치는 지난 2010년에 추가로 개척되었다고 한다. 간간히 오버행이 이어지는 후반부의 난이도는 전반부보다 높지만 어느 정도 바위에 익숙해진 탓에 별다른 주저함은 없다. 문제는 체력이겠지만 우리 팀 모두의 몸상태는 양호해 보인다. 8피치와 9피치를 선등으로 멋지게 해치운 한변호사가 첫 스텝부터 오버행을 이뤄 인공 등반을 해야 하는 제10피치에서 잠시 주춤거린다. 몸이 뒤로 빠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셋째 볼트까지 클립하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체력이 소진되어 후퇴한다. 기송 형이 다시 올라가 어렵사리 크럭스를 돌파하여 오버행 너머로 사라진다. 그 이후로는 등반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불안하던 차에 "완료" 구호가 들린다.
후등자에게도 만만치 않은 오버행 구간이기에 내가 쎄컨으로 올라가 시야가 확보되는 지점에서 임시로 확보점을 만들고 한변호사와 은경이의 빌레이를 본다. 오버행 턱을 넘어서 확보를 볼 경우엔 자일 손상을 피할 수 없고 시야도 없기 때문에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10피치를 통과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네 사람 모두의 지혜를 모아서 침착하게 크럭스를 통과했다는 만족감이 남는다. 어려움을 함께 극복한 사람들이 가지는 남다른 동질감이 서로에게 흐른 것이다. 마지막 마디인 11피치도 만만치 않아 보였지만 뒤에서 조언해주는 기송 형과 은경이의 응원을 받고 한변호사가 힘을 내어 오버행 턱이 이어지는 인공등반 구간을 지혜롭게 돌파한다. 선등자 빌레이를 보는 지점에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답답했으나 시야가 확보된 뒤쪽에서 은경이가 등반 상황을 중계해주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모두가 안전하게 등반을 마치고 올라선 정상은 빡빡한 바윗길과는 대조적으로 안마당 같이 평평하다. 산벚꽃 한 그루가 아직 꽃을 피우고 서있는 그 모습이 마치 어릴적 뛰놀던 시골 동네의 한 귀퉁이를 옮겨 놓은 듯하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란 싯구에서 전해지는 정다움이 느껴진다. 등반을 마치고 솔봉이길 릿지의 정상 봉우리에 올라선 시각은 오후 6시가 넘었다. 서쪽으로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는 시간이다. 대둔산의 마루금에 나있는 일반 등산로를 따라서 더덕동동주와 인삼튀김이 기다리고 있는 식당에 도착한 시각은 주변이 어둑해지기 시작한 7시 반 즈음이다. 솔봉이길 암벽 등반에만 9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접근과 하산 시간을 합하면 11 시간이 훨씬 넘는 긴 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알찬 등반을 했다는 뿌듯함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하루가 참 길다는 생각이 든다. 솔봉이는 '나이가 어리고 촌스러운 티를 벗지 못한 사람'이란 뜻의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갈수록 영악해지는 세상을 탈출해서 다른 생각을 모두 떨쳐버리고 대둔산의 바윗길 한 곳에만 집중했던 우리 네 사람 모두가 오늘 하루 만큼은 순수한 솔봉이가 된 듯하다.
1. 양파길과 갈라지는 안부에서 솔봉이길은 능선 좌측 사면으로 내려가야 한다.
2. 솔봉이길 출발점에서 올려다본 첫째 마디.
3. 첫 피치 출발점에는 솔봉이길 개념도가 새겨진 동판이 있다.
4. 등반 출발 직전에 기념 사진을 남긴다. 햇볕에 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아줌마 패션으로...
5. 쎄컨으로 첫 피치를 오르고 있다. 자일 한 동을 매달고 슈퍼베이직을 장착하여 오른다.
6. 둘째 마디는 우측 사선으로 진행하는 구간이다.
7. 다섯째 마디를 올라서면 돌탑이 서있는 독립봉 앞이다.
8. 독립봉 앞에도 솔봉이길 푯말이 있다. 아직은 발이 아픈 암벽화를 피치 중간마다 신고 벗기를 반복한다.
9. 독립봉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솔향기 그윽한 일봉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10. 우측의 대둔산 정상에서 마루금을 따라오면 좌측의 솔봉이길 정상에 닿을 수 있다.
11. 전망 좋은 6피치 독립봉에 올라서서 기념 사진을 남긴다.
12. 솔봉이길 후반부인 8피치 출발점이다.
13. 아홉째 피치 출발점. 이 다음에 이어지는 10피치가 크럭스 구간이다.
14. 한변호사가 마지막 11피치 선등에 나서고 있다.
15. 마지막 피치 중간부를 등반하고 있는 한변호사. 소나무 때문에 빌레이어의 시야 확보가 어렵다.
16. 쎄컨으로 마지막 피치의 오버행 턱을 올라서고 있다.
17. 사진 우측 봉우리가 11피치 확보점이다. 이곳에서 조금 걸으면 정상에 닿는다.
18. 솔봉이길 능선의 정상 봉우리는 널찍한 안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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