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첫 설악산 등반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의 동홍천IC를 빠져나와 44번 국도로 접어든다. 비로소 설악에 간다는 설레임이 찾아든다. 새롭게 단장된 화양강휴게소에서 간단히 조식을 해결한다. 휴게소 앞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홍천강의 평화로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침햇살 비치는 전망 좋은 통유리창 앞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참 좋다. 오늘의 미륵장군봉 등반도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되기를 내심 바래본다. 어머니의 팔순잔치와 학기말의 분주한 일상을 막 헤쳐나온 심신은 피로누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다. 그래도 홀가분해진 마음만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천천히 굽이치는 홍천강의 물줄기처럼 평안하다.
장수대에서 미륵장군봉으로 접근하는 그늘진 숲길에 들어선다. 신선함을 가득 품고 있는 오솔길이 오랜만의 설악산 나들이를 반겨준다. 오늘 등반할 '미륵2009' 루트는 작년 여름에 K등산학교 암벽반 교육생으로 왔을 때 후등으로 처음 올랐던 바윗길이다. 지금의 내 등반능력으로는 다소 도전적인 루트일 수도 있지만, 시도하지 않는다면 성장하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이 길을 선택했었다. 계획이 잡히고 등반허가서가 나온 후부터는 실내암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하면서 '미륵2009' 등반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정작 등반 당일인 오늘 아침의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피로누적으로 뒷목은 경직되어 있고 간밤에 잠을 설친 채 새벽길을 달려온 탓에 등반 내내 몸이 둔했다.
스스로 동작이 굼뜨다는 걸 느끼는 만큼이나 등반의 긴장감은 높아졌다. 무엇보다 몸이 덜 풀리고 미륵장군봉의 낯선 암질에 적응하지 못했던 첫 피치가 힘들었다. 전체 루트의 크럭스인 4피치의 오버행 턱에서는 자유등반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인공등반 방식으로 넘어서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던 까닭에 다른 등반지에서보다 더욱 힘겨운 등반이었으나, 하강까지 안전하게 마쳤을 때의 만족감과 성취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후등할 때와 선등할 때의 난이도가 생판 다르고, 바윗길에 적응하기 전과 후의 체감 난이도가 상이할 수 있음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던 교훈적인 등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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