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설악산 미륵장군봉 '미륵2009' - 2021년 6월 19일(토)

빌레이 2021. 6. 21. 10:48

올해 들어 첫 설악산 등반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의 동홍천IC를 빠져나와 44번 국도로 접어든다. 비로소 설악에 간다는 설레임이 찾아든다. 새롭게 단장된 화양강휴게소에서 간단히 조식을 해결한다. 휴게소 앞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홍천강의 평화로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침햇살 비치는 전망 좋은 통유리창 앞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참 좋다. 오늘의 미륵장군봉 등반도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되기를 내심 바래본다. 어머니의 팔순잔치와 학기말의 분주한 일상을 막 헤쳐나온 심신은 피로누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다. 그래도 홀가분해진 마음만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천천히 굽이치는 홍천강의 물줄기처럼 평안하다.

 

장수대에서 미륵장군봉으로 접근하는 그늘진 숲길에 들어선다. 신선함을 가득 품고 있는 오솔길이 오랜만의 설악산 나들이를 반겨준다. 오늘 등반할 '미륵2009' 루트는 작년 여름에 K등산학교 암벽반 교육생으로 왔을 때 후등으로 처음 올랐던 바윗길이다. 지금의 내 등반능력으로는 다소 도전적인 루트일 수도 있지만, 시도하지 않는다면 성장하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이 길을 선택했었다. 계획이 잡히고 등반허가서가 나온 후부터는 실내암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하면서 '미륵2009' 등반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정작 등반 당일인 오늘 아침의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피로누적으로 뒷목은 경직되어 있고 간밤에 잠을 설친 채 새벽길을 달려온 탓에 등반 내내 몸이 둔했다.

 

스스로 동작이 굼뜨다는 걸 느끼는 만큼이나 등반의 긴장감은 높아졌다. 무엇보다 몸이 덜 풀리고 미륵장군봉의 낯선 암질에 적응하지 못했던 첫 피치가 힘들었다. 전체 루트의 크럭스인 4피치의 오버행 턱에서는 자유등반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인공등반 방식으로 넘어서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던 까닭에 다른 등반지에서보다 더욱 힘겨운 등반이었으나, 하강까지 안전하게 마쳤을 때의 만족감과 성취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후등할 때와 선등할 때의 난이도가 생판 다르고, 바윗길에 적응하기 전과 후의 체감 난이도가 상이할 수 있음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던 교훈적인 등반이었다.           

 

▲ 미륵장군봉으로 접근하는 숲길이 신선했다. 순도 높은 설악의 맑은 공기를 흡입하니 새벽길을 달려온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 '미륵2009' 루트는 미륵장군봉 암벽 하단부를 트래버스하여 우측 끝으로 진입해야 한다.
▲ '미륵2009' 루트 출발점 앞에서 좌측으로 본 풍경이다.
▲ '미륵2009' 1피치를 등반 중이다. 개념도 상의 난이도는 5.10b인데 체감 난이도는 적어도 한 단계는 더 높게 느껴졌다.
▲ 첫 피치는 등반 거리 35미터에 이른다. 1P 확보점에서 좌측으로 보면 몽유도원도와 한계산성 릿지길이 보인다.
▲ 1P 확보점에서는 미륵장군봉 전체 루트가 거의 다 보인다.
▲ '미륵2009' 우측은 '청원길' 루트이고, 그 너머의 하늘금은 점봉산에서 이어지는 주걱봉 능선이다.
▲ 2 피치를 등반 중이다.
▲ 2P는 23미터에 난이도 5.9로 큰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 2P 확보점은 아래에서 보면 오목해서 선등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 3피치 초반부를 오르고 있다.
▲ 3P는 등반 거리 30미터에 5.10a 난이도로 표기되어 있다.
▲ 3P는 홀드가 양호하여 등반이 즐겁지만 살짝살짝 긴장해야 하는 구간도 있다. 앞팀의 선등자가 출발 전이어서 중간에 잠시 쉬어야 했다.
▲ 2P 확보점에서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다른 루트의 확보점에 매달려 있는 등반자들이 보인다.
▲ 확보점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도 주변 풍광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설악이 좋다. 석황사 계곡 건너편의 몽유도원도 릿지를 오르는 등반자들의 구호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신선벽을 등반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제법 큰 낙석이 있었다. 설악에서는 무엇보다 낙석을 조심해야 한다.
▲ 2P 확보점에서 4피치 오버행 구간을 등반 중인 앞팀의 선등자를 찍은 모습이다.
▲ 전체 루트에서 크럭스 구간인 4피치 초반부를 오르고 있다. 우측으로 진행하다가 직상하면 홀드가 양호하다. 둘째 볼트는 사진 상의 머리 위쪽 너머에 있어서 밑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 오버행 구간인 셋째 볼트에 퀵드로를 클립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내몸의 컨디션을 생각해서 자유등반을 포기하고 잠시 쉰 후에 인공으로 돌파했다. 오래 된 개념도 상에는 난이도가 5.12로 표기되어 있으나, 5.10d 또는 5.11a/b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오버행을 넘어선 이후 구간도 그리 만만치는 않아서 중간에 한 차례 더 쉰 후에 확보점에 도착했다.
▲ 4P 확보점 바로 우측으로 '청원길'의 마지막 피치를 오르고 있는 등반자가 보였다.
▲ 4P 확보점에서 좌측으로 본 풍경이다.
▲ 쉴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4P 확보점에서 간식을 먹고, 마지막 피치인 5P 등반에 나서고 있다.
▲ 5피치는 세로로 이어지는 밴드와 크랙을 따라 직상하는 30미터 거리이다.
▲ 5P는 5.10a/b 정도의 난이도로 홀드가 많아 보이지만 밸런스에 신경써야 하는 구간이 한두 군데 있다.
▲ 5P 상단부의 크랙 구간을 돌파하면 그 이후는 쉽다.
▲ 5피치 등반을 완료한 순간의 기쁨은 등반의 긴장감 만큼이나 컸다.
▲ 5P 확보점에서 모든 피치를 안전하게 올랐다는 기쁨의 인증사진을 남겨본다.
▲ 첫 피치 출발점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세 차례의 30미터 하강으로 계곡까지 곧바로 내려왔다.
▲ 등반 후에 용대리의 구만동계곡 인근의 일류 레스토랑 같이 정갈한 송어횟집에서 가졌던 뒷풀이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 '미륵2009' 개념도. 등반 후 하강은 제 자리로 돌아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