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전국적으로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은 탓에 실내암장에서 운동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교회에서 1부 예배를 드린 후, 쾌청한 날씨의 주일을 그냥 보내기 아까워 수락산 내원암장을 찾기로 한다. 신록이 아름다웠던 5월도 이제는 이별을 고해야 하는 말일이다. 한층 짙어진 녹음 속의 자연 암벽과 신선한 공기를 찾아 나서기 위하여 오전 11시 즈음에 당고개역에서 한변호사의 차를 타고 덕릉고개를 넘는다. 서울시와 남양주시의 경계인 이 고개를 넘으면 갑자기 도회지를 벗어나 자연과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청학리의 수락산 유원지 입구에서 운 좋게 남은 자리에 주차하고 곧바로 내원암장으로 올라간다. 옥류폭포가 있는 아름다운 계곡이 음식점들과 물놀이객들에게 점령 당해서 오염된 모습이 안타깝다.
항상 그렇듯 휴일의 내원암장은 많은 클라이머들로 붐빈다. 암장 맨 아래의 좁은 공터에 우리의 여장을 풀고 장비를 착용한다. 암장 위쪽의 슬랩에는 더이상 자일을 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붙어 있다. 장비 착용 후 거의 유일하게 비어 있는 루트인 '백일잔치길(5.10c/5.10a)'에 자일을 걸고 내려와 톱로핑 방식으로 1피치를 오르내린다. 페이스에 가까운 경사의 슬랩으로 볼트 좌우의 작은 세로 크랙을 찾아야 하는 재미 있는 루트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내 실력으로는 자유등반 방식으로 오르기에 무리가 따른다. 처음 네 개의 볼트까지는 클립할 수 있었으나 그 다음은 루트를 벗어나 좌측의 크랙으로 올라서서 자일을 걸 수 밖에 없다.
백일잔치길 첫 피치에서 톱로핑 방식으로 몸을 풀고난 후, 둘째 피치는 한변호사가 선등한다. 물길처럼 흘러내리는 크랙을 따라서 40 미터 넘게 이어지는 루트를 차분하게 잘 오른다. 백일잔치길 종점의 확보점에 올라서서 바라본 풍광은 시원하다. 예전에 자주 다니던 사과바위가 선명하게 보인다. 내원암장의 거의 모든 루트에는 클라이머들이 개미처럼 붙어서 열정적인 오름짓을 즐기고 있다. 두 번의 자일 하강으로 아지트에 내려서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사람들은 많아도 우리들만의 호젓한 공간을 차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루트를 끝내고 난 후에 나눠 먹는 음식 맛은 꿀맛이다. 마치 맛있게 먹기 위해 등반했다는 듯이 친구들도 잘 먹는다. 동갑내기 셋이서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하는 이 순간이 더이상 소중할 수 없다.
점심을 겸한 휴식 후에 비어 있는 어린왕자길 첫 피치를 은경이의 선등으로 등반한다. 멀티 피치 등반의 맛을 느껴보기 위하여 그 다음에 이어지는 두 피치를 이어서 오른다. 하루 전에 살짝 내린 비 때문인지 바위는 생각보다 미끌리지만 은경이는 크랙과 슬랩이 적절히 이어지는 루트에서 미세한 홀드를 찾아가면서 침착하게 잘 오른다. 셋째 피치 정상에 세 친구가 모여서 탁 트인 눈맛을 즐긴다. 서쪽으로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 해 때문에 그늘진 내원암장 전체가 시원해진다. 등반을 마치고 두 번의 30 미터 자일 하강으로 내려온다. 한변호사와 나는 불편한 암벽화를 벗고 맨발로 하강한다. 바위 표면이 반반해서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이 좋다. 마음 맞는 편안한 친구들과 함께 주일 오후를 알차게 보낸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차오른다. 발목 골절상 이후로 친숙하지 않았던 자연암장에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만족스런 일이다.
1. 백일잔치길 첫 피치를 오르고 있다.
2. 따가운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손수건으로 귀와 목덜미를 가리고 출발한다.
3. 한변호사가 백일잔치길 둘째 마디를 선등한다.
4. 백일잔치길 둘째 마디는 좌측 페이스 구간의 볼트가 이어진다. 우리는 볼트 우측의 크랙을 따라서 오른다.
5. 우리 좌측 너머의 루트에도 클라이머들이 붙어있다. 클라이머들 위의 하늘금에 사과바위가 보인다.
6. 두 번의 자일 하강으로 백일잔치길 등반을 마무리 한다.
7. 한변호사는 새로 구입한 부토라 암벽화 때문에 발이 많이 아픈 모양이다.
8. 우측 벽에는 모든 루트에 자일이 걸려 있다.
9. 은경이가 어린왕자길 첫 피치를 선등하고 있다.
10. 역광으로 비친 클라이머들의 실루엣이 인상적이다.
11. 어린왕자길 첫 피치 확보점에서 본 모습이다.
12. 한변호사가 어린왕자길 첫 피치를 라스트로 오르고 있다.
13. 은경이가 둘째 피치의 크랙 구간을 선등하고 있다.
14. 둘째 피치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미세한 홀드를 잘 찾아야 하는 구간이다.
15. 서쪽으로 기우는 해가 내원암장 전체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사과바위가 왕관처럼 보인다.
16. 마지막 셋째 피치는 비교적 쉬운 슬랩 구간이다.
17. 바위 표면이 매끄러워 맨발로 하강하는 감촉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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