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북한산과 도봉산 이어타기 - 2014년 6월 21일

빌레이 2014. 6. 21. 21:53

남설악 칠형제봉 등반을 계획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설악산 등반 계획은 취소되었다. 서울에는 간밤에 비가 약간 내렸으나 새벽에는 그쳤다. 흐린 날씨지만 비가 오더라도 산에서 걷는 것은 즐겁기 때문에 가까운 북한산으로 향한다. 오늘이 일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라고 한다. 클라이밍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뜸했던 걷기 산행을 낮의 길이 만큼이나 길게 하고 싶었다.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칼바위가 오르고 싶어진다. 평소에 가지 않던 호젓한 지릉을 따라 오른다. 칼바위 정상에서 예쁘게 피어있는 나리꽃을 만난다. 홀로 피어있는 그 모습이 단아하고 곱다. 간밤의 비를 맞아서 그런지 주황색 꽃잎이 싱그럽다. 비가 올 듯하여 챙겨오지 않은 카메라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아쉽지만 폰카로 몇 컷 찍어본다. 칼바위 정상 부근의 바위틈에도 양지꽃들이 앙증맞게 들어앉아 있다.

 

흐린 날씨지만 칼바위 정상에서의 조망은 여느 때 못지 않게 시원하다. 산성주릉에 올라서서 대동문으로 향한다. 길 중간에서 또한번 나리꽃을 만난다. 이번에는 한 꽃대에 세 송이가 달렸다. 푸른 숲 사이에서 주황색 빛을 발하고 있는 나리꽃은 보는 이의 얼굴까지 화사하게 해준다. 사람들로 붐비는 대동문을 지나쳐서 우이천 계곡으로 하산한다. 피곤한 발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계곡물 속에 발을 담근다. 시원한 냉찜질이 따로 없을 정도로 물은 차갑다. 물 속의 발을 간지럽히는 작은 물고기들이 정겹다. 우이동으로 하산하여 단골집에서 마신 막걸리 두 사발에 적당한 취기가 오른다. 도봉산까지 오르고 싶은 생각이 발동하여 지체하지 않고 둘레길을 따라 방학동 방향을 향해 걷는다.

 

도봉산 둘레길 왕실묘역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막걸리 두 잔에서 비롯된 힘이 솟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폭군이었던 연산군묘를 둘러본다. 그 앞에 자리잡은 거대한 은행나무가 더 위대해 보인다. 수령이 800 년이 넘는 이 나무는 서울시 지정 보호수 1호라고 한다. 둘레 길이가 10 미터도 넘는 우람한 그 자태가 유명한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연상시킨다. 둘레길을 걷다가 방학능선을 따라 도봉산에 오른다. 마을 뒷산을 걷는 듯한 분위기의 흙길로 된 산길이 편안하다. 방학능선은 자주 다니던 우이능선과 만난다. 원통사 삼거리에서 예전에 다니던 매바위 능선길을 택한다.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조망이 있어 나에게는 일품 카페가 부럽지 않았던 테라스에서 한참을 쉬어간다.

 

우이암과 매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 능선을 타는 맛이 그만이다. 우이암을 멀찍이 돌아서 도봉주릉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서 걷는다. 이 곳에도 나리꽃이 심심찮게 보이지만 오전에 본 것처럼 싱그러운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도봉주릉에서 문사동 계곡으로 하산한다. 스승을 찾는 계곡이란 뜻의 문사동(問師洞) 글씨가 초서로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 곳에서 다시 한 번 탁족을 한다. 도봉서원에서 공부하던 옛 선비들이 멋과 철학을 느낄 수 있다는 안내판의 글귀가 공감되는 이곳에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도봉탐방안내소로 하산해서 돌아온 길을 되짚어 본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발길 닿는 대로 10 시간 정도 걸었다. 들꽃과 계곡의 물고기에서 살아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고, 문화유산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하산을 완료하고 귀가하는 버스에 오를 때까지 비를 참아주던 날씨까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산행이었다.  

 

1. 대동문 가는 길 중간의 산성주릉에서 만났던 나리꽃. 때마침 벌이 한 마리 내려앉아 모델을 서주었다.

 

2. 칼바위 정상에서 만난 나리꽃. 폰카로 찍은 것이 미안할 정도로 꽃 모양이 정말 완벽했다.  

 

3. 한 송이만 외롭게 피어 있었지만 그 모습이 일품이었다.

 

4. 바위틈에 안긴 양지꽃은 앙증맞은 그 모습이 예쁘다. 

 

5. 푸른 숲 속에서 발견하는 들꽃은 인공적인 화단에서 보는 꽃들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6. 우이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잔챙이들이 발을 간지럽힌다.

 

7. 연산군묘 앞의 은행나무는 유명한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연상시킨다.

 

8. 조선시대의 폭군 연산군묘.

 

9. 도봉산 방학능선을 오르는 길에서 만난 돌탑.

 

10. 도봉산 문사동 계곡의 글씨 암각.

 

11. 다 떨어져 해진 것을 내 손으로 바느질해서 수선한 탓인지 애착이 가게 되는 등산화.  

 

12. 흐린 날씨에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를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처음 입어본 냉감 셔츠는 땀을 아무리 흘려도 뽀송뽀송 하고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