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한강기맥 끝자락 걷기 - 2014년 5월 10일

빌레이 2014. 5. 11. 09:08

자신의 직업이나 전문 분야에서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이외의 생활 속에서는 어느 한 곳에 너무 치중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자칫 잘못하면 편협한 사고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어떤 일을 대할 때 가능하면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등산도 어느 한 행위에 치우칠 경우 자신이 하고 있지 않은 다른 행위에 대하여 무시하거나 저평가 하기 십상이다. 자연 암벽을 등반하는 이들이 스포츠클라이밍을 하찮게 여긴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도보 산행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둘레길 걷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등산 활동 속에는 저마다의 장단점이 내재 되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형태의 등산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취미로 등산을 즐길 때에도 어느 한 곳에 집착할 경우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서 중독 증세를 동반한 독선에 빠지기 쉬운 일면이 있다.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에 치중하던 주말의 여가 생활 속에서 균형감을 되찾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숲길을 오래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모든 일에 의욕이 잘 나지 않는 요즘의 생체 리듬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농다치고개에서 양수역까지 걸었던 한강기맥의 호젓한 산길 속에 다시 한 번 안기고 싶었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한강기맥을 거슬러 올라보기로 한다. 새벽에 집을 나서서 중앙선 전철을 타고 양수역에서 내린다. 양서고등학교 뒷편 산줄기에서 숲길로 들어간 시각은 8시 30분 경이다. 청계산 정상까지 11 킬로미터 거리라는 안내판을 보고 출발한다. 갑산공원묘지까지 한참 동안 이어지는 완만한 오솔길은 뽀송뽀송한 흙길의 연속이다. 초록으로 온몸이 물들 것 같은 신록의 숲길은 걷는 이의 마음 속까지 시원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인기 탤런트였던 최진실 남매가 잠들어 있는 갑산공원묘지를 지나서 벚고개까지 이어지는 산길도 한적한 흙길의 연속이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심해지기는 하지만 걷기에 불편함은 없다. 동물 이동통로를 통하여 벚고개를 건넌 후 청계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서너 차례 나타나는 된비알이 힘겹게 느껴진다. 청계산 정상의 조망은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하다. 양평에서 팔당호로 이어지는 남한강 줄기가 또렷히 보인다. 정상 바로 밑에 자리한 산막에서 감로주 한 잔을 사서 마신다. 달콤하면서도 깨끗한 술맛이 일품이다. 길게 걸어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갈증 속에서 목으로 넘기는 감로주라서 더욱 맛있었을 것이다. 술을 마셨다기 보다는 건강한 청량 음료 한 잔이 들어갔다는 기분 때문인지 어느 정도 피곤함이 가시는 걸 느낀다. 힘이 다시 솟는 듯한 기분 속에 평소와 같이 국수역 방향으로 하산하려던 생각을 바꾸어 부용산 방향으로 좀 더 걷다가 신원역으로 하산하여 전철을 타기로 한다.

 

부용산과 하계산을 거쳐 양수역으로 이어지는 산길 중간에서 벗어나 신원역 방향으로 하산한다. 직선으로 곧게 하늘로 뻗은 낙엽송 군락이 멋진 숲길을 따라 잠시 내려오니 마을 길이 나타난다. 마을 길은 몽양 여운형 선생의 기념관을 거쳐 신원역으로 이어진다. 천천히 걸으며 숲속의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히 들이마시는 느림보 산행을 즐겼다.  신원역에 도착해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5시 반이 훌쩍 지났다. 18 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9 시간 동안 걸어온 셈이다. 숲 속에서 오래 머물고자 했던 생각을 제대로 실천했다는 만족감이 남는다. 길가에 예쁘게 피어있는 들꽃들, 눈이 부시게 푸르는 나무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뻐꾸기와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 등 살아있는 자연을 마음껏 느꼈다. 인적 드문 산길에서 가끔씩 나타나는 애벌레의 꿈틀거림과 코 앞에서 지나가는 뱀들의 모습에 소름이 돋기도 했지만 이것들 마저도 자연이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표시로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졌다. 암벽등반은 등반 코스에 따른 여러 위험 요소와 안전한 등반 시스템에 대한 계획 등으로 등반 전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스포츠클라이밍에서도 수준을 높이기 위한 욕심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다. 머리 속이 복잡하고 자칫하면 등반이 즐겁지 않을 수 있는 최근의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금 몸과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던 소중한 도보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