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이다. 새학기가 시작된다. 교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평창으로 다녀왔다. 개강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라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해가 들수록 힘겨워짐을 절감하는 논문 작업을 개강 전에 마무리 지을 생각으로 무리를 좀 한 모양이다. 효자동 파출소에서 시구문으로 향하는 발길이 무겁다. 여건이 괜찮으면 바위에 붙어볼 요량으로 암벽 장비를 챙긴 까닭에 배낭 또한 무겁다. 그리 멀지 않은 시구문에 도착하니 얼굴이 땀범벅이다. 땀바위 슬랩 아래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올라보지만 다리가 미덥지 않다. 체력이 고갈된 것처럼 풀린 다리에 좀처럼 힘이 가해지지 않는 느낌이다. 이런 상태로 바위에 붙는다는 건 무리라는 생각에 다시 장비를 해체하고 일반 등로로 오른다.
원효암을 지나쳐 원효봉 정상으로 이어진 일반 등로에는 주말 산행객들이 제법 많다. 항상 바윗길로만 오르던 원효봉을 산책처럼 편안히 올라가는 맛도 괜찮다. 따뜻한 온기가 머물고 있는 원효봉 정상에서 연무 속에 우뚝 서있는 염초봉과 백운대로 이어지는 릿지가 희미하다. 그 릿지를 올려다보고 있어도 바윗길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몸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릿지 등반은 깨끗하게 마음을 접고 북문에서 하산길에 접어든다. 염초릿지를 오를 때 위에서만 내려다보고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던 상운사도 들러본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올라오는 산객들로 북적이는 공터에서 무엇에 이끌리듯 산 중턱의 봄꽃 만발한 마을길로 이어질 것만 같은 포근함이 전해져오는 덕암사 진입로를 따라가본다.
원효봉 치마바위 밑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덕암사는 바위를 지붕삼아 나즈막히 자리잡은 대웅전이 이채롭다. 덕암사를 지나쳐 오솔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니 땀바위 밑과 시구문이 다시 나타난다. 원효봉을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돌아온 셈이다. 시구문 진입로가 있는 효자동의 북한산둘레길에서 내시묘역길 구간을 걸어 북한산성 입구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바위를 하기에 괜찮은 날씨였으나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아 산책같은 산행을 즐겼다. 계획했던 산행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순순히 인정하고 순응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 오히려 괜찮았던 것 같다. 무작정 산행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몸 상태에 따라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를 앞으로도 잃지 않아야 하겠다. 자연을 닮아간다는 것이 자기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현명하게 판단하여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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