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멀지 않을 듯한 요즘 날씨다. 산비탈 양지바른 곳에 쌓인 눈이 녹아 내리면서 스프링처럼 쏙쏙 올라오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이 즈음이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높은 산 정상부에서 자연 상태의 복수초를 처음 보았던 포천의 백운산과 국망봉을 잇는 산줄기가 바로 그 곳이다. 산행기를 뒤적여 시기를 확인인해보니 2년 전 4월 초순이다. 광덕고개에서 백운산, 도마치봉, 도마봉 등을 거쳐 신로봉에서 국망봉휴양림 방향으로 하산했던 제법 긴 거리의 산행이었다. 시절이 좀 이른 감은 있지만 요즘의 포근한 날씨로 보아 신로봉 하산길에서 복수초를 만날 수도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포천 이동면의 국망봉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 애마를 달려 국망봉 안내판 앞에 8시가 안된 시각에 도착한다.
굴참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정겨운 제3등산로를 따라 마루금인 한북정맥길에 이르는 등로는 생각보다 먼 길이다. 눈 앞에 곧 나타날 것만 같은 주능선은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자꾸 뒤로 물러나 앉은 듯한 느낌이 든다. 거리를 확인해보니 5 km 정도는 꾸준히 올라가야 비로소 주능선과 만난다. 안개 낀 주위 풍광은 잠시나마 섬 산행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등로 초입은 땅이 아직 얼어 있고, 중간 이후부터는 아이젠을 착용해야 하는 본격적인 눈산행이다. 그래도 여유를 잃지 않고 쉬엄쉬엄 걷다보니 어느새 주능선이다. 국망봉 정상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견치봉이 5백 미터라는 이정표를 확인하고 다녀오기로 마음 먹는다. 처음 가보는 길은 항상 설레이는 마음이 있어서 좋다. 제법 쌓인 눈길이지만 러셀이 잘 되어 있어 스패치까지는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해발 1102 미터라는 정상석이 아담한 견치봉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을 쉬어간다.
견치봉에서 국망봉 정상까지는 1.3 km 거리이다. 한북정맥길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고도를 자랑하는 구간을 거꾸로 되짚어 간다. 해를 등지고 걸으니 시야도 좋고 눈도 편하다. 국망봉 정상엔 제법 많은 산객들이 정상석을 벗삼아 기념 촬영 중이다. 연무가 있어 평소의 국망봉 조망과 같은 시원한 풍광을 보지 못하는 답답함이 느껴지지만 큰산의 풍모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견치봉에서부터 걸어온 산줄기와 가야할 한북정맥길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 신로봉에서 이어지는 암릉지대는 그 뒤의 가리산과 함께 깍아지른 절벽미를 선사한다. 신로령에서 계곡으로 하산하는 갈지자 모양의 산길도 앙상한 나무 사이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려다보이는 등로 입구의 장암저수지는 얼어붙은 그 모습이 하얀 삼각형처럼 보인다. 광덕산의 기상 관측용 레이더 기지가 희미하게 보이고 석룡산과 화악산의 하얀 산줄기도 수묵화 속의 풍경처럼 은은히 잠겨있다. 정상에서 신로봉까지는 2.3 km 거리이다. 신로봉 삼거리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만끽하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가파른 내리막 길이 햇빛을 받아 녹아내리고 있지만 기대했던 복수초는 아직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봄꽃이 꿈틀대기에는 아직 쌓인 눈의 두께가 버거운 모양이다. 계곡의 너럭바위도 아직은 대부분이 얼어붙어 있지만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분명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하산길 임도 주변의 버드나무 가지에 핀 버들강아지 몇 송이가 봄을 보여주는 단초가 되었을 뿐 조그만 들꽃 한 송이 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대지가 녹고 있는 산 속 곳곳에서 봄기운은 감지할 수 있었다. 세월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만큼 어김 없는 것이 있었던가? 기다리면 봄은 오는 것이다. 장암저수지 아래의 계곡에서 등산화를 씻어냈지만 차까지 가는 동안 진창길이 나타나는 바람에 다시 엉망이 돼버렸다. 아침에는 얼었던 길이 오후의 햇살에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천천히 여유롭게 걸었지만 경사도 높은 15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걸은 탓인지 다리가 제법 뻐근하다. 만족스런 뻐근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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