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 같다. 오늘도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아침 기온이 영하 14도라고 한다. 주위에서 너무 춥다는 말을 많이 듣다보니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 같다. 추울 때 산에 다니던 열정을 되살려보기로 한다. 집에서 출발하여 곧바로 북한산 칼바위 능선을 탄다. 아파트 뒷편 능선부터 눈길이니 초입부터 아이젠을 착용한다. 그간 서울에 눈도 많이 내리고 내린 눈이 얼어 붙을 정도의 강추위가 계속됐다. 햇볕은 좋고 바람은 거의 없으니 산행하기 정말 좋다.
티브이에서 본 귀농에 성공한 사람의 말이 생각난다. 된장으로 성공해서 출연한 사람이다. 좋은 된장을 찾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으나 결국 최고의 된장은 같은 동네 할머니가 담근 것이었다고 한다. 업은 애기 삼 년 찾은 격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가까이 있을 땐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북한산이 내게는 그런 존재이다. 정말 좋은 산인데도 쉽게 가지 못하고 다른 산을 먼저 꿈꾼다. 눈 덮인 북한산 등산로는 평소와 많이 다르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아이젠과 스틱을 받아내는 폭신한 눈으로 포장된 산길은 바윗길 느낌이 거의 없다. 새해엔 내 주변 가까이 있는 환경과 사람들의 다양하고 새로운 면을 좀 더 많이 느끼고 사랑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칼바위 정상에서의 풍경은 언제나 좋다. 십여 년 전 이곳으로 이사와서 처음 칼바위에 오를 땐 겁이 날 정도로 가파른 암벽으로 보였었다. 이제는 눈 덮인 바윗길도 전혀 긴장감 없이 오르내리는 걸 보면 매사가 상대적이고 마음 먹기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함의 저력은 생소한 이들에겐 어렵게 비치는 것을 상대적으로 쉽게 여기는 것에 있는 듯하다. 새해 첫 산행이니 백운대 정상까지 올라보기로 한다. 시장기가 느껴진다. 백운산장에서 점심을 사먹기로 하고 먹을 걸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따뜻한 보리차를 자주 마시니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오랜만에 올라보는 백운대 정상이다. 생각보다 춥지 않아 다행이다. 한 해를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백운산장에서 손두부와 막걸리 한 사발로 늦은 점심을 대신한다. 알프스 산장에 맥주와 치즈가 나그네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우리에겐 막걸리와 두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인파로 붐비는 백운산장이다. 손님으로는 나 혼자 산장 안에 있으니 산장다운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아무도 날 찾지 않는 외로운 이 산장에"로 시작하는 노래 <산장의 여인>을 흥얼거려본다. 우이동에 내려올 때까지 아이젠을 벗지 않았다. 모든 등로가 하얀 눈길이었던 것이다. 여섯 시간이 넘는 길이의 눈길을 걸었다. 도시에서의 눈길은 쉽사리 지저분해진다. 산에서의 눈은 자연 그대로 깨끗하다. 산 속의 깨끗한 눈길처럼 올 한 해가 두루 좋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1. 오랜만에 마이크로 렌즈를 사용해 칼바위 정상에서 잡아본 그림이다.
2. 대동문의 하얀 지붕, 영봉과 오봉의 자태가 의연하다.
3. 만경대를 돌아나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노적봉의 음지. 나목들이 눈이불 위로 솟았다.
4. 도봉산의 멋진 봉우리들이 하늘금을 이루고 있다. 오봉에서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까지.
5. 겨울에 칼바위 정상에 서면 북한산성의 성곽을 또렷히 볼 수 있다.
6. 산성길에 쌓인 눈이 그간의 적설량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여기부터는 폰카로 찍는다.
7. 만경대 우회로에서 백운대 가는 방향이다. 철난간이 없다면 아찔한 낭떨어지이다.
8. 오던 길을 돌아본다. 기온은 낮지만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10. 만경대를 돌아나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백운대는 우뚝 솟아있다.
11. 백운대 정상부의 쇠줄 난간. 겨울엔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12. 시인 신동엽길을 올랐다면 이곳이 마지막 피치를 끝내고 백운대 정상으로 올라오는 곳이다.
13. 일 년에 한 두 번씩은 다녔던 염초릿지와 약수릿지를 내려다본다.
14. 원효봉의 성곽이 북문을 지나 염초봉으로 이어지는 릿지길이 오후의 햇살에 빛나고 있다.
15. 백운대 정상에서 인수봉과 그 너머의 도봉산을 조망한다. 겨울의 설악산 느낌이 난다.
16. 손님이 없는 산장 안에서 막걸리 한 사발과 따뜻한 손두부로 늦은 점심을 대신한다. 어느 때보다 맛있다.
17. 산장 안에서 김서린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본다. 이런 풍경도 드물게 대하는 것 같다.
18. 칼바위 정상에서 만난 산님께 부탁해서 2013년 새해 첫 산행의 인증샷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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