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는 한번쯤 가고싶은 산으로 나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아 가볼 수 없었던 밀양의 천황산과 재약산에 다녀왔다. 친구의 산악회 회장님의 근무지가 밀양이어서 일 년에 한 번씩 그 부근의 산을 탄다고 한다. 마침 시간이 허락하여 나도 합류하기로 한다. 금요일 밤 친구의 차에 몸을 싣는다. 내게는 밀양도 처음이고, 영남알프스도 처음이다. 새벽 두 시쯤에 밀양 얼음골 부근의 숙소에 도착한다. 생각보다 먼 거리다. 산악회장님께서 산행계획에 대해 설명하신다. 영남알프스 풍경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천황산과 재약산, 그리고 사자평을 볼 수 있는 코스이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여덟 시 반쯤 된 시각에 산에 든다. 표충사에서 보면 붓끝처럼 보인다는 필봉이 첫번째 봉우리다. 다소 가파르긴 해도 오를만한 산길이다. 필봉에서의 조망은 훌륭하다. 표충사 경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반대편에 위치한 매바위의 절벽미도 훌륭하다. 필봉부터는 완만한 오르막의 능선길이 이어지니 걷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여유롭게 오른다. 표충사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필봉, 삿갓봉, 천황산, 재약산을 잇는 마루금이 말발굽 모양으로 이어진다. 초겨울 나목들은 찬란한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다.
천황산 정상에 서니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산줄기가 거의 다 보이는 것 같다. 말안장 모양이 확실한 간월재의 억새밭도 제법 선명하게 다가온다. 정상부의 따스한 억새밭에 앉아 다소 진행 속도가 느린 산악회 회원들을 기다린다. 삼십여분을 기다리니 일행들이 도착한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남긴다. 일행들은 시간 관계상 점심 식사 후 바로 표충사로 하산하겠다고 한다. 건너다보이는 재약산과 사자평도 보고싶은 마음이 강하여 잠시 일행들과 작별하고 재약산으로 향한다.
천황산과 재약산 사이의 억새밭인 천황재에 내려서니 해남 두륜산의 오심재가 떠오른다. 두 고개가 어딘지 닮아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재약산 정상에서 걸오온 길을 조망해본다. 천황산 오르는 길은 광주 무등산의 서석대 오르는 길과 닮아 있는 듯하다. 재약산 아래로는 드넓은 사자평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산 정상부에 이처럼 광활한 평원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다분히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풍광 때문에 영남알프스란 이름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재약산에서 사자평 초입이라 할 수 있는 고사리분교터에 이르는 내리막 길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적조암으로 향하는 길을 가다가 돌아와 표충사 이정표를 따르기로 한다. 초행길이고 일행과 약속한 하산 시간이 있어서 이정표가 확실한 코스를 타기로 마음을 바꿔먹은 것이다. 층층폭포로 내려서는 가파른 계단길부터 시작된 하산길은 계곡미가 으뜸이다. 직벽에 가까운 절벽들이 이어지고 깊게 패인 협곡을 흐르는 계곡물을 내려보며 걷는 길이 훌륭하다. 약속된 하산 시간만 아니면 여유롭게 풍광 즐기며 천천히 걷고 싶은 길이다. 표충사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내려오지 않은 일행들도 있으니 다행이지 싶다.
표충사 경내의 넓은 안마당에서 걸어왔던 능선들을 되짚어본다. 붓끝처럼 오똑한 필봉부터 천황산과 재약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서서히 어둠에 잠기고 있다. 여덟 시간 동안 부지런히 걸었던 육신의 노곤함이 그리 싫게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만난 영남알프스 산정의 시원스러움이 기분 좋은 뿌듯함으로 남아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1. 재약산에서 돌아본 천황산. 억새밭 사이로 줄을 그은 것처럼 새겨진 등산로가 보인다.
2. 필봉에 오르는 길에 좌측으로 펼쳐진 매바위의 직벽도 멋지다.
3. 필봉은 표충사에서 올려다보면 붓끝처럼 뾰족하다.
4. 필봉에서 천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걷기에 아주 좋다.
5. 나목들 사이로 가야할 천황봉 정상부가 선명하게 보인다. 하늘은 청명하고 나뭇가지는 하얗게 빛난다.
6. 필봉에서 천황봉 중간의 삿갓봉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본 산너머 마을 풍경.
7. 천황산 정상 직전의 이정표. 영알 루트는 능동산으로 이어진다.
8. 천황산의 멋들어진 정상석. 우측 상부에 말안장 모양의 간월재가 선명하다.
9. 천황산 정상부의 억새밭에 앉으니 바닥이 온돌처럼 따뜻하다. 표충사 계곡 너머 겹겹의 마루금들이 인상적이다.
10. 재약산 오르는 길에 돌아본 천황재. 내게는 해남 두륜산의 오심재를 연상시킨다.
11. 바람 때문인지 비스듬히 누워있는 표지판. "하늘억새길"이란 이름이 좋아보인다.
12. 재약산은 드넓은 억새평원과 멋진 바위들을 함께 품고 있는 드문 풍광을 간직한 산이다.
13. 사자평을 내려다보는 암반 위에서 만세 한 번. 세찬 바람 때문인지 얼굴이 부었다.
14. 사자평은 생각보다 광활하다. 재약산 정상부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그 모습이 이채롭다.
15. 재약산에서 고사리분교로 이어지는 하산길.
16. 층층폭포 앞의 출렁다리. 폭포의 절벽미도 으뜸이다.
17. 층층폭포부터 표충사에 이르는 계곡길은 천천히 풍광 즐기며 다시 한 번 걷고 싶은 길이다.
18. 표충사에서 올려다본 재약산과 천황산 능선. 구름에 잠겨있는 것이 아마도 눈이나 비가 내리고 있는 듯.
19. 처음 만난 영남알프스에서 초겨울의 맑은 날씨와 함께 시원스런 풍광을 만난 것에 감사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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