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이 우리 집에는 두 권이 있다. 한 권은 오래 전 사 둔 문고판이고 다른 한 권은 최근에 산 양장본이다.
하드커버의 고급 양장본은 본시 아들에게 읽히고 싶어 샀던 것이다. 요즘 학생들이 그렇듯 아들 녀석도 재미 없다고 읽지 않는다.
설 연휴 기간 동안 양장본으로 멋지게 나온 새책을 읽었다. 예전 문고판을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어찌 됐든 이번에 읽은 프랭클린 자서전은 예전과 달리 읽는 내내 매우 감동적이고 재미 있게 나를 사로잡았다.
미국 달러화 중 최고액권인 백달러 지폐의 모델이기도 한 프랭클린의 생애는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
독립전쟁 직전 미국 건립의 토대를 구축한 이가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그의 자서전을 읽고 있으면 1700년대의 미국과 유럽으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 생생하다.
오늘날의 미국이 왜 유럽보다 강하고 부유한 나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에서도 미국이란 나라의 저변에 흐르는 힘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지만,
프랭클린의 자서전에서 나는 미국의 좋은 측면이 발현되기 위한 기초가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프랭클린은 무엇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공동체가 좋은 모습으로 발전하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행복한 삶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프랭클린을 한 분야의 위인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는 인쇄 기술자로 시작해서 저술가, 사업가, 행정가, 교육가, 정치가, 발명가, 물리학자 등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무엇이 프랭클린을 이토록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을까? 그가 직접 쓴 자서전은 이 물음에 대한 해답과도 같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고 난 후 내가 생각해본 그 위대성의 근본은 다음과 같다.
우선 프랭클린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위인들보다 실용적인 사람이다. 항상 현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그에겐 있었다.
고매한 이론이나 정연한 논리보다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좀 더 편리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에 그의 주된 관심이 있었다.
생활에 유익한 발명품을 많이 만들었음에도 그는 특허를 전혀 걸지 않았다. 발명왕 에디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자기도 이전 사람의 발명품으로 편리함을 누리고 있으니 자기의 발명품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영화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도모한 대표적인 예에 불과하다.
프랭클린은 아무리 선하고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전면에 나서는 법이 별로 없었다.
좋은 취지로 기부금을 모금할 때 프랭클린이 전면에 나서면 그가 영웅시 되는 것을 대부분은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모금액이 잘 걷히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일은 프랭클린이 하면서 다른 사람이나 단체를 전면에 내세우면
기부금 걷는 일도 매우 쉬워진다는 원리를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요즘 읽고 있는 춘원 이광수의 <도산 안창호>에서도 볼 수 있는 위인들의 자세이다.
항상 겸손하고 정직함으로써 돈이나 눈 앞의 이익보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사로잡으려 했던 프랭클린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누구보다 도덕적이고 모범적이었던 그도 젊은 시절의 육체적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방탕한 시간을 보냈던 사실도 자서전에는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 책의 진실성을 의심치 않게 한다.
프랭클린이 일생을 멋지게 보낸 바탕은 타고난 근면성으로 매일 매일 성실하게 자신이 정한 덕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일상이다.
절제(Temperance)란 덕목을 실천할 행동 강령으로 "배부르도록 먹지 말자. 취하도록 마시지 말자"와 같이
실질적이고 구체성 있는 실천 내용들을 적어 놓고 매일 저녁 반성하며 자신을 훈련시킨 점은 아주 좋은 본보기이다.
그가 지키려 했던 열세가지 덕목은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이다.
각 덕목을 제대로 지켰는지 체크할 표를 만들어 한 주에 한 덕목씩 노력했던 그의 치밀함은 정말로 존경할만하다.
겸손의 실천 규칙으로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자"를 정한 것만 보아도 프랭클린의 높은 이상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나의 안식년 기간이 저물고 있다. 당장 오늘부터는 다음 학기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 작업을 실천해야 한다.
다시 연구와 교육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새로운 모습으로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그래서 약간은 설레이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좋은 본보기를 많이 보고 새겨 넣어야 한다.
프랭클린 자서전은 새 학기를 준비하는 내게 많은 힘과 용기를 준 책이다.
프랭클린의 삶은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도 아주 좋은 본보기이다.
얼마나 내 삶에 적용시켜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나태해진 나의 일상에 변화를 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내가 풀어야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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