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Anderl Heckmair가 쓴 <알프스의 3대 북벽>을 읽고난 후의 소고

빌레이 2011. 1. 5. 16:17

무엇이든 처음은 특별하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앞서지만 두고두고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처음 경험한 순간들이다.

등산에서 초등의 순간만큼 가슴 벅찬 업적은 없을 것이다. 다른 이의 인정을 받아서가 아니라 자기 만족감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알프스의 3대 북벽 중 가장 늦게 초등이 이루어진 아이거 북벽에 처음오른 헤크마이어가 직접 쓴 이 책은 정말 값진 기록이다.

영화 <노스페이스>의 배경이 된 아이거 북벽의 비극적인 도전사도 이 책 속에 온전히 들어있다.

 

마터호른 북벽과 그랑드조라스 북벽에 비해 가장 많은 비극을 안고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등정된 아이거 북벽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이 책은 독일인으로서 알프스의 산악가이드가 된 헤크마이어가 비교적 늦은 서른의 나이에

도전적인 알파인 등반에 뛰어들어 이룩한 위대한 등반 기록을 담고 있다.

헤르만 불이 출현하기까지 알프스를 주름잡던 이들은 윔퍼, 보나티, 캐신, 테레이, 헤크마이어, 하러 등이다.

알파인 등반가로서의 순수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당대 알프스 사나이들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헤크마이어의 겸손한 어조로 서술되어 있어 읽는 이들을 행복하게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다른 두 북벽과 달리 아이거 북벽은 바로 밑에 일류 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라우터부룬넨, 그린델발트에서 올라오는 등산열차가 만나 융프라우에 오르는 기차로 갈아타는 곳이 클라이네샤이덱이다.

바로 그 클라이네샤이덱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아이거이고 이 봉우리의 북벽은 정말 오만하게 보인다.

나는 겨울에 한 번 여름에 한 번 이 아이거 북벽을 직접 바라볼 수 있었고 그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 아이거 북벽에 도전하는 이들은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선수들 같았다.

클라이네샤이덱의 호텔 발코니에서 신문기자들이 망원경으로 이들을 지켜보며 등반 과정을 시시각각 기사화 했던 때문이다.

다른 산에서의 등반 활동과 달리 무상의 행위라는 알피니즘이 손상받기 쉬운 환경 때문에

세인들의 관심은 컸지만 가장 늦게 초등을 허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등방 현장에 임하는 등반가들에게 이러한 세인들의 관심은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헤크마이어는 잘 보여준다.

처음 오를 때 경쟁관계였던 헤크마이어의 파티와 하인리히 하러의 파티가 중간에 한 파티로 협력하여 이루어낸 초등 기록은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한다. 경쟁보다 협력함으로써 서로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 책 속에 있다.

헤크마이어가 초등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암벽 장비 위주로 준비한 다른 팀들에 비해

빙벽 장비를 철저히 준비하고 눈사태와 낙빙, 낙석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는 전문가적 식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후에 안데를 헤크마이어와 그 유명한 헤르만 불이 그랑드조라스의 워커 버트레스를 함께 오르는 얘기도 흥미롭다.

아이거 북벽 초등 후 20년 후에 등반가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헤크마이어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헤르만 불,

두 산악 영웅이 자일 파티를 이루어 그랑드조라스 북벽의 워커 버트레스를 등반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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