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춘원 이광수가 쓴 <도산 안창호>

빌레이 2011. 2. 8. 20:15

초등학교 때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 그때 보았던 위인전 중에서 큰 감화를 받은 기억은 별로 없다.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업적을 위주로 쓰여진 위인전집의 책들을 서로 돌려가면서 읽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판사에서 적당히 기획된 전집이었으니 그다지 가치 있는 책들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학시절 이후로 읽었던 전기나 자서전은 좋은 책일 경우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함석헌 선생이 번역한 <간디 자서전>, 선생이 직접 쓴 <간디의 참모습>은 모두 훌륭한 글로 기억된다.

전기문으로는 <닥터 노먼 베쑨>, 수학자의 삶을 다룬 <힐버트 전기>, <폴 에어디쉬의 삶> 등이 감동적이었다.

자서전류로는 <프랭클린 자서전>, <피터 드러커 자서전>, 체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등이 지금 내 머리 속에 좋았던 책으로 떠오른다.

 

춘원이 지은 <도산 안창호>는 위에서 열거한 좋은 위인전 중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책이다.

국사 시간에 어렴풋이 배웠던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사 속에 나타났던 안창호 선생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산 선생의 사상이 무엇인지, 그의 발자취가 어떠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도 춘원의 책을 읽기 전에 도산 선생에 대해서 아는 바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내가 안창호 선생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때는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의 미국이 있게 한 실질적인 인물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아닌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우리 나라의 근대사에서 프랭클린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은 이승만이나 김구가 아닌 안창호 선생일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춘원이 쓴 <도산 안창호>란 책을 단숨에 읽고난 지금, 이러한 나의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프랭클린과 안창호는 닮은 점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도산 선생의 위대성 중 가장 빛나는 대목은 실질적이었다는 점이다. 구호만 외치는 선동가를 선생은 가장 싫어하셨다.

무실역행(務實力行)은 진리에 힘쓰고 행동에 힘쓴다는 의미로 안창호 선생이 일생 동안 실천했던 덕목이다.

선공후사(先公後私), 지공무사(至公無私)는 민족의 행복과 이익을 먼저 생각한 삶의 태도로 선생의 일생 자체였다.

선생은 신민회, 대성학교, 흥사단, 동명학원 등의 단체를 조직하였지만 전면에 나서는 법이 없었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흥사단이란 조직이 지속될 수 있는 힘은 이 단체를 정치적 모임이 아닌

국민 수양을 위한 단체로 만들었던 안창호 선생의 혜안에서 발원한 것이다.

 

안창호 선생은 우리 민족 개개인이 거짓 없는 사람, 조화성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

독립운동 당시 투쟁가나 모략가는 많으나 조화가는 아주 적었던 것을 많이 아쉬워 하셨다.

청년 교육에서는 덕(德)체(體)지(智)라 하여 지를 가장 나중에 두었다.

덕이 없는 자의 지는 악의 힘이 되고, 건강이 없는 자의 지는 불평 밖에 되지 못한다고 하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건전한 인격과 그 건전한 인격들로 된 신성한 단결이 우리 민족을 힘 있게 만든다고 하셨다.

 

<도산 안창호>를 읽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춘원 이광수의 글재주가 매우 뛰어난 때문이다.

일제 말기의 친일 행적과 육이오 때 납북된 점 때문에 춘원의 우수한 글과 문학작품 자체도

우리 사회에서 많이 왜곡된 시선으로 평가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춘원이 얼마나 통찰력 있고 멋진 글솜씨를 가졌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어찌됐든 춘원이 쓴 <도산 안창호>는 정말 멋진 글이다.

도산 선생의 진면목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강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