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페(Saas-Fee)에서 체르마트(Zermatt)로 이동하는 날이다. 우리에게는 트레킹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옮기는 이삿날 같은 마음이다. 사스페 숙소에서 일행들과 함께 정오에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조식 직후에 체크아웃 하고 짐을 맡겨 놓은 후 가벼운 차림으로 사스페 마을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사스페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어느새 6일째가 되었지만, 처음 도착한 바로 다음날부터 연속적으로 짜여진 일정의 트레킹을 소화 하느라 정작 마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여유시간을 갖지는 못 했었다. 우리 일행 외에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동양 사람도 보기 드물었던 사스페는 여전히 고요하고 한적한 알프스 산골마을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애완견과 함께 양지바른 언덕길을 느리게 산책하는 현지 어르신들의 모습 속에는 험준한 설산과 위압적인 빙하로 둘러싸인 주변 풍경과는 대조적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사스페의 전경이 발 아래로 굽어보이는 전망 좋은 벤치에서 언젠가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스페와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체르마트와 사스페는 모두 빙하에서 발원한 깊은 계곡의 끝자락에 자리한 막다른 산악마을이다. 사스탈 계곡과 체르마트 계곡은 스탈덴(Stalden) 지역에서 만나 하나가 되어 비스프(Visp) 방향으로 흐른다. 비스프에서 체르마트까지는 등산열차가 있으나, 사스페까지 가는 기차 노선은 아직까지 개설되지 않았다. 우리는 사스페에서 버스를 타고 스탈덴사스(Stalden-Saas) 역까지 내려와서 다시 체르마트로 올라가는 등산열차를 탔다. 예정대로라면 1시간 남짓에 기차가 체르마트 역에 닿았어야 했는데, 공사중이었는지 장크트니클라우스(St. Niklaus)에서 테쉬(Täsch)까지 모든 승객이 기차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테쉬에서 체르마트까지는 다시 기차로 이동했다. 무거운 여행용 캐리어를 들고 오르내려야 하는 수고로움이 더해졌다. 체르마트 역에 도착했을 때의 첫 인상은 한적했던 사스페와 사뭇 달랐다. 기차역에서 언뜻 본 중앙 거리는 홍대나 명동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 것처럼 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히말라야에 있는 아마다블람과 마차푸차레와 함께 세계 3대 미봉으로 꼽히는 마터호른의 상징성을 등에 업고 유명한 관광지로 성장한 체르마트의 면모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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