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고향 같은 월출산은 나주집에서 차로 30여분 거리에 있다. 초등학생 때 유두날 어머니와 함께 작은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맞고 피부병이 나았던 것이 월출산과 관련된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지 싶다. 중학생 땐 보이스카웃 대원으로 참석했던 야영 때 월출산을 다녀왔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향을 떠난 후에도 귀향할 때마다 자주 찾던 월출산은 지금의 북한산과 함께 내 삶의 한 자리를 굳건히 채우고 있는 존재다. 그런 월출산을 마음 통하는 악우들과 함께 다시 오게된 감회가 사뭇 남다르다. 암벽등반에 입문한 직후였던 십년 전 즈음에 사자봉 릿지를 친구들과 두 번 찾은 이후로 워킹 산행이 아닌 바윗길에 붙기 위해 월출산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창의 할매바위 등반을 마친 후 나주의 고향집에서 악우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에 월출산으로 향했다. 기범씨와 인연이 깊은 바자울산악회의 정성민 선생님께서 순천에서 몸소 달려와 주셨다. 광주바자울산악회는 오래전부터 월출산의 여러 바윗길을 개척하여 유지 보수해오고 있는 남도의 대표적인 산악회이다. 광주에서 오신 김주형님과 같은 산악회의 광주대 교수님까지 합류하여 정선생님을 포함한 세 분께서 이번 월출산 시루봉 암장의 바윗길을 안내해 주셨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월출산의 바윗길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계신 정선생님과 김주형님 같은 분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기에 우리 같은 후세대들이 안전하게 등반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바윗길 개척과 등반에 얽힌 지난 얘기를 맛깔난 남도의 사투리로 풀어내시는 정선생님의 입담을 간간히 들으며 등반하는 시간이 매우 뜻깊고 즐거웠다.
내가 암벽등반가들을 처음 본 것은 중학생 때 월출산 구름다리로 올라가는 등산로 중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곳이 바로 오늘 우리가 등반했던 시루봉 암장이었다. 그때 보았던 등반가들 중에 정선생님도 있었을 것이란 합리적인 추측을 우리의 대화 도중에 할 수 있었다. 지난 겨울의 명성산 석천계곡에 숨어 있는 비래폭포에서 우리팀 옆에서 빙벽등반하던 팀 속에도 정선생님이 계셨다고 하니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어떻게 해서든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는 게 우리네 삶인 것 같다. 정선생님 일행과는 최근에 리볼팅 작업을 마친 매봉 암장에서 가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내게는 행복어린 아련한 추억들을 곱씹어 볼 수 있었던 월출산 시루봉에서의 등반이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악우들과 함께 먹었던 홍어요리의 톡 쏘는 알싸한 맛처럼 개운한 월출산 등반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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