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히말라야를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안나푸르나 산군의 품속에 안겨 9일 동안 거닐면서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뒤로하고 두 발로 걷는 단순한 몸짓으로 만나는 히말라야의 대자연은 저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한층 더 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오가는 산길 한 자락을 걷고 있는 듯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산과 등반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 산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충분히 먹고, 자고, 걸었던 단순한 패턴의 하루 하루가 꿈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 속에 많은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이라는 말도 결국엔 자연스러움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자연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물을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보고 삶의 지혜를 얻으라는 노자의 가르침일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제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삶이란 눈 앞에 나타난 현실이 좋든 싫든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눈 앞에 펼쳐진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광만으로도 복잡다단한 현실을 떠나서 하찮은 이성을 모두 내려놓고 순수한 감성만을 충전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히말라야의 산길에는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일상의 다짐마저도 잊게 해주는 힘이 내재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기실 네팔의 히말라야는 해외 트레킹 대상지 중에서 제 마음 속 목록에는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해외 산행이라면 이미 다녀온 적이 있어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유럽의 알프스, 캐나디언 록키, 미국의 요세미티를 한 번이라도 더 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었습니다. 치안이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해외에서 비위 약한 제가 고생했던 경험이 몇 차례 있기 때문입니다. 감명 깊게 읽었던 수많은 산서 속에 등장하는 위대한 등반가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한 번은 두 눈으로 봐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별 기대감 없이 떠났던 안나푸르나 트레킹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이번 트레킹을 갈무리 하고 싶어서 생각을 정리하는 이 순간에 무엇보다 그 좋은 날들을 함께 했던 일행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자 노력하시는 염사장님께 많은 지혜를 배웠습니다. 포카라 시내와 카트만두의 불탑을 거닐면서 나눴던 대화 속에서 염사장님의 진솔한 기업 경영 철학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만물박사처럼 모든 것에 해박하시고 등반 경력도 남다르신 이상무님과 유익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순간이 소중했습니다. 여러모로 능력 있는 두 분이 함께 이끌어 가시는 그 기업이 번창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분의 배려 덕택으로 트레킹 멤버들을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장인정신으로 무장된 자존감을 엿볼 수 있었던 이사장님 부부의 모습은 일행들 모두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성공한 사업가로서 이제는 무직임을 자랑하시듯 농담처럼 말씀하시던 이사장님의 여유로움이 부러웠습니다. 트레킹 내내 선두 그룹을 놓치지 않으시던 두 분의 체력에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지금까지 고생하셨으니 앞으로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트레킹 코스를 섭렵하시며 마음껏 즐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직장 선후배 사이로 두 분이 함께 오셔서 조용히 일행들과 동화 되셨던 안선생님과 박부장님이 계셔서 마음이 편했습니다. 저와 같은 나이로 얘기가 잘 통했던 안선생님은 편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유일한 40대였음에도 가장 과묵하셨던 박부장님은 듬직한 인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방음이 전혀 안 되던 지누단다 롯지의 바로 옆방에서 본의 아니게 두 분의 대화를 엿듣던 순간이 지금도 떠올라 웃음짓게 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 동안 다녀오시고 아프리카의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정상까지 밟으셨던 박여사님(뷰티박)의 내공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풍부한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 이면의 네팔과 히말라야의 참모습을 담아내려는 시선이 좋아 보였습니다. 네팔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은 일행들 모두의 귀감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트레킹 내내 밝은 인상으로 일행들을 즐겁게 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첫날 저녁부터 일행 중 가장 먼저 저와 통성명을 나눴던 영화배우 같은 박사장님과 알게 된 것 역시나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까닭인지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고 읽은 책도 유사하여 둘 사이의 대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오갔던 것 같습니다. 함께 할 자리만 마련된다면 친구 되어 밤새워 얘기꽃을 피우고 싶은 상대가 바로 박사장님 같은 분이랍니다. 트레킹 마지막 날에서야 폐암 수술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일행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박사장님 덕택에 우리의 트레킹은 갑자기 휴먼드라마로 한 단계 격상되었습니다. 김동률의 노래 <출발>을 선물하셨던 낭만적인 사모님께서도 조만간 깨끗한 시야의 히말라야가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때 되면 한 가족처럼 식탁에 둘러 앉아서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겼습니다. 트레킹 내내 함께 걸었던 분들이 한없이 좋았기 때문에 저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히말라야에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레어 달뜬 상태로 저의 알량한 등반 관련 지식을 설파했던 순간이 낯 뜨거워집니다. 부족함 많은 저를 다들 너그럽게 받아주셔서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을 유쾌한 추억으로 간직하게 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 얻은 저마다의 유익한 에너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 모두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입니다.
▲ 트레킹의 정점인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모든 것이 일품이었던...
▲ MBC에서 ABC로 향하는 길 중간에서... 트레킹을 같이 했던 멋진 분들과 함께...
▲ 트레킹 일정 내내 우리를 잘 지원했던 가이드 빠담과 부가이드 빔에게도 고마움을...
▲ 네팔 산간마을의 정취도 느끼면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 누리는 호사에 감사함이...
▲ 다울라기리가 잘 보였던 고라파니에서... 미국의 고산등반가 마틴을 우연히 만났던 곳.
▲ 돌이켜보면... 풍요의 여신이라는 안나푸르나의 뜻에 걸맞게... 모든 것이 더없이 풍성했던 트레킹이었다.
▲ 나마스테... 네팔의 인사말로 함께 했던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우리 9명이 9일 동안 걸었던 안나푸르나-푼힐 트레킹 여정.
'해외트레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 트레킹] 그레이스톤스에서 브레이까지 - 2018년 7월 19일 (0) | 2018.07.22 |
---|---|
따뜻했던 히말라야의 산간 마을이 그립다 (0) | 2017.12.04 |
[안나푸르나 트레킹 9 : 지누단다(1780m) ~ 시와이(1380m)] - 2017년 11월 19일(일) (0) | 2017.11.25 |
[안나푸르나 트레킹 8 : 밤부(2310m) ~ 지누단다(1780m)] - 2017년 11월 18일(토) (0) | 2017.11.25 |
[안나푸르나 트레킹 7 : ABC(4130m) ~ 밤부(2310m)] - 2017년 11월 17일(금) (0) | 2017.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