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에서 출판한 한승원씨의 소설 <초의>를 이틀에 걸쳐 읽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중간보고서를 쓰느라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일을 마친 후 감기몸살이 또 어김없이 찾아왔다.
감기몸살 동안엔 전공과 상관없는 책을 읽는 습성이 있다.
이번에도 이틀간 맡은 강의 외에는 소설 <초의>를 읽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기에 충분한, 오랜만에 맛보는 진한 감동을 전해주는 소설이었다.
풀옷의 선승 초의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차를 칭송한 <동다송>의 저자라는
사실만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설 <초의>는 단번에 초의의 삶으로 나를 빠져들게 만들었다.
원래 좋아하던 소설가이기 때문에 한승원씨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그렇지만 이토록 큰 감동을 안겨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초의의 탄생지가 나주 삼향이고, 해남, 강진, 영암 등의 지명이 익숙해서
소설의 무대가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왔다.
시서화 삼절뿐만 아니라 스님으로서 갖추어야할 모든 것을 갖춘 초의,
그런 천재 초의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인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과의
만남은 진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대하는 문학 작품은 나를 쉽게 감동시킨다.
아마도 몸과 함께 마음도 한없이 여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초의>를 읽는 동안 여러번 눈물을 글썽였다.
초의 할아버지의 애틋한 손자 사랑에, 초의에 대한 정약용의 한없는 신뢰에,
죽을 때까지 참다운 우정을 나눈 초의와 추사의 교제에,
아낌없는 아가페적 사랑을 초의에게 헌사한 기생 이화의 삶에,
그리고 스승인 벽봉과 제자인 소치와의 관계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차에 대해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지식은 이 소설의 덤이다.
이십대의 젊은날 나는 제3세대 한국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이청준, 김승옥, 문순태, 황석영, 이문열, 조세희, 송기숙, 전상국, 한승원 등의
소설은 최고의 찬사가 아깝지 않은 주옥 같은 작품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라도의 한을 뼈속 깊이 새긴 작가가 바로 한승원이다.
한승원씨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산초당에 가본 적이 있다.
그곳에 가면 다산과 추사의 현판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소설 <목민심서>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은 후 찾은 곳이다.
그때의 감동은 다른 여행지에서 느낀 것과는 사뭇 달랐다.
성경을 알고 예루살렘을 여행했을 때 느꼈던 감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해남 대둔산의 대둔사와 일지암을 간다면
그곳에 서린 초의선사의 배냇향 어린 체취 때문에 취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차를 마셨다. 물을 많이 마시라는 의사의 권고도 있었지만
차 한잔 홀짝거리면서 읽는 소설 <초의>는 참 잘 어울렸다.
우리 다도연가에 딱 맞는 책 <초의>를 이 가을에 자신있게 권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고혁명>을 읽고 (0) | 2009.05.26 |
---|---|
문학과 수학 (0) | 2009.05.26 |
수락산과 천상병 시인 (0) | 2009.05.26 |
<닥터 노먼 베쑨> (0) | 2009.05.26 |
<피터 드러커 자서전>을 읽고 (0) | 2009.05.26 |